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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히트상품 한국’

문화홍보도 ‘감동’의 전략으로

前 해외공보관이 본 현주소… 세계적 수요 가진 전통공연물·전시 사업 개발해야

  • < 김준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전 주미공보공사 >

문화홍보도 ‘감동’의 전략으로

문화홍보도 ‘감동’의 전략으로
우리나라에서 정부차원의 국가 이미지 홍보는 1970년대 문화공보부에 해외공보관을 창설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조직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그나마 지금은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과 문화관광부 해외문화원으로 그 기능이 나뉜 상태다. 지난 30년간 정부의 대외홍보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적어도 파리, 스톡홀름, 뉴욕, 워싱턴 등 세계 각국의 대외홍보 일선에서 필자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80년대 프랑스 미디어들이 한국을 다룬 기사에서 가장 빈번히 나타나는 키워드가 있었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시아의 작은 경제 강국’(la Coree du Sud, la petite puissance en Asie)이라는 설명이 붙었고 프랑스 언론에 ‘김대중’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 민주화의 챔피언’(Kim Dae Jung, champion de la democratisation de la Coree du Sud)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한마디로 적어도 프랑스 미디어에서 80년대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가지의 개념으로 요약된 것이다.

필자가 파리에서 일하던 80대 전반만 하더라도 프랑스 신문들은 한국에 관한 기사를 상당히 많이 싣는 편이었다. 1주일에 1∼2 건은 심층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KAL기 격추, 아웅산 테러 등 잇단 사건으로 한국은 일본보다도 더 자주 다루어졌다. 당시 영향력이 급부상한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아시아 담당 기자 파트릭 사바티에씨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에서 프랑스 신문의 관심도는 중국, 일본, 그 다음은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성장하는 한국경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문화홍보도 ‘감동’의 전략으로
그만큼 유럽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와 정치쪽에 편중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홍보는 취약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스톡홀름 공보관 시절 스웨덴 TV에는 제3세계 국가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필자는 서울에서 보내온 한국 영화 필름을 스웨덴 국영방송에 내보내려고 방송국에 찾아가 프로그램 담당자를 만났다. 방영료도 안 받고 필름을 공짜로 제공하겠다는데 그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담당자는 물론 환영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방영하기 어렵다는 회답이 돌아왔다. 다시 방송국을 찾아가 담당자를 만났다. 방영 불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영화가 기초적인 제작 수준조차 미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동시녹음도 아니고, 카메라 작업이나 편집 몽타주 수준 모두 아마추어 이하라는 것이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80년대에는 정부가 해마다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에 관한 학술서적을 영어로 번역 출판한 뒤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 도서관에 배포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1987년 해외공보관 문화교류부장 재직 당시 이 사업의 동기를 알고 아연했던 경험도 있다. 이 사업의 발단은 70년대 어느 해 국회 문공위원회 소속 위원들의 해외시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세계 유명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도서관을 둘러보았는데 아시아 관련 서가에 중국과 일본에 관한 서적은 무수하게 많은데 비해 한국에 관한 서적은 불과 몇 권밖에 안 되더라는 것. 더욱 쇼킹한 것은 김일성 전집 등 북한에서 출판된 영문 서적보다도 한국 관련 서적이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의원들은 귀국한 뒤 문공위원회에서 문공부장관에게 호통을 쳤다. 해외홍보를 어떻게 했기에 그 모양이냐는 것이었다. 그해부터 당장 한국학 영문 번역 출판사업에 매년 수억원씩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그러나 학술 저서는 ‘하면 된다’는 한국적 논리로 생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학에 관련된 우리말 학술 서적을 단시일에 무조건 영문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민족주의 주관(主觀)이 강한 우리나라 한국학 저술들을 영어로 옮겨 놓으면 객관적인 입장에 선 외국 학자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한국학 영문 저술은 영어 사용국 학자가 하나의 전문 분야에 수십년씩 매달려야 비로소 가능한 학문적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름 있는 외국 출판사들은 우리나라 학술서적의 영문 출판을 위한 상담조차 거절하는 형편이다.

오래 전부터 노벨 문학상을 목표로 정부가 문예진흥원을 통해 한국 문학의 영어 및 프랑스어 번역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를 위해서는 영어 또는 프랑스어 사용 문학도가 어떤 한국 작품에 미쳐 수십년을 매달려야 한다. 그 다음에는 외국 유명 출판사 편집자의 전문적 판단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원작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 작품 연구에 미칠 수 있는 외국인 문학도를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한국 문학 번역 출판을 결정할 외국 출판사도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차원의 해외홍보는 주로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다. 대중적 의사소통의 흐름은 오피니언 리더를 매개로 일반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는 매스컴 이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가장 가시적인 효과는 대중을 직접 만나는 공연과 전시 사업에서 크게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러시아의 발레, 이탈리아 오페라, 프랑스와 영국의 연극과 같은 세계적 수요를 가진 전통 공연물을 갖고 있지 못하다. 1991년 문화부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경축 행사의 하나로 9월25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10억원대의 예산을 들여 준비한 전통 음악과 무용 공연 ‘천년의 소리’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뉴욕 문화원장이었던 필자는 카네기 메인홀 단 1회 공연을 위해 객석 2700여석을 메우는 데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전통 음악과 무용은 세계 무대에서 객관적인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사업은 다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추진한 최대 규모의 미술전시회는 ‘한국미술 오천년전’이다. 1979년 5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부터 시작하여 시애틀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리고 캔자스시티 넬슨 미술관을 끝으로 1981년 6월까지 만 2년에 걸친 한국전통미술의 미국 순회전이었다. 국립박물관의 국보급 미술품을 거의 총동원한 이 전시회는 적어도 규모면에서는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2년간 7개 도시에서 수십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한 만큼 효과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98년 말 워싱턴에서 일본 정부가 후원한 ‘에도 전(展)’을 보면서 우리의 ‘한국미술 오천년전’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1994년 한국 정부가 지원한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18세기 한국미술전’과 직접 비교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친 에도(江戶) 300년의 전통 미술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18세기 조선왕조 미술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필자는 ‘에도 전’의 학문적 배경과 전문 학예기술에 압도되고 말았다. 물론 미국 내 일본 미술 큐레이터 숫자가 연대 병력이라면 한국 미술 큐레이터는 1개 분대 병력에 불과하다. 그런 현실에서 한국 미술전에 일본 미술전과 똑같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전시 전략이다. ‘18세기 한국미술전’은 미술사 측면만 강조했지만 ‘에도 전’은 전통미술을 통하여 그 시대 일본 사회 전반을 생생하게 복원해내고 있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해외 전시 사업을 통한 전통 사회와 문화 홍보는 현대 국가 이미지 홍보를 위한 전략 아래서 추진되어야 한다. 필자는 ‘에도 전’의 그런 전략적 큐레이팅에 감탄한 것이다. 국가 이미지 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이다.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22~23)

< 김준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전 주미공보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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