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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히트상품 한국’

“변한 모습을 적극 알려라”

외신기자들이 본 한국… 정책 신뢰도, 투명성 아직 개도국 이미지

  •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변한 모습을 적극 알려라”

“변한 모습을 적극 알려라”
한국에 상주하는 외국 언론은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투명한 창(窓)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정치, 경제, 그리고 한국인의 의식과 정서를 속속들이 알 리 없는 외국인들은 각종 외신을 통해 한국의 단면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외신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외국에 알리는 외신기자들 역시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6월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외신들도 긍정적인 보도들을 많이 내보냈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도대체 바뀐 것이 뭐냐’는 보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특유의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문화를 외신들이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요?”

-도쿄신문(東京新聞) 고미요지(五味洋治) 서울지국장. “한국 사람들은 자산 매각 협상에서 왜 이것을 매각해야 하는지부터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협상의 경우 부처간에도 인식의 편차가 있어요. 또 기업인들은 자산 매각에 대해 ‘오 마이 베이비’(Oh my baby!) 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레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거친 협상자’(tough negotiator)라는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락스미 나카르미 아시아위크 서울지국장.

외신기자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IMF 사태를 계기로 상한가를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이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서울에 집중되었고 한국인들이 IMF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외국인들의 호평을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외자 유치와 자본시장 전면 개방을 내세운 정부 역시 외국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해 이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곧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여러 방면을 통해 이를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변한 모습을 적극 알려라”
그러나 외신기자들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개혁작업의 부진과 남북정상회담 후속작업 미비 등으로 인해 최근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제 분야의 경우 많은 외신기자들은 “기사의 주제가 IMF 사태 초기 서울역 앞 노숙자에서 눈부신 경제회복 노력으로 돌아서더니, 최근에는 다시 급증하는 실업자 대책 등으로 유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캐서린 리 기자가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유럽국가들에 ‘잠재적 투자자’나 ‘소비시장’으로서 한국의 위상은 너무 작고 거리도 먼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재벌경제’의 이미지는 또다른 걸림돌이죠. 국제사회는 (개혁과정을 통해) 한국의 기초가 튼튼해지리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여기저기 수선하는 수준에 그친 것에 대해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아직 기대를 버린 건 아니지만요.”

외신에 몸담고 있는 한국인 기자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심재훈 시니어 라이터도 “그동안 외신들의 논조는 한국이 경제 위기를 구조적으로 치유하기를 바랐던 것이었는데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최근 정부의 개혁이 실망스럽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IMF 관리체제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내 금융기관이나 각종 자산 매각 협상이 진행중이어서 이 과정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경제정책이나 경제 관료들에 대해 자연스런 이미지를 형성하게 마련. 이는 OECD 가입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투명성은 아직 개도국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이 글로벌 시장의 우등생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외신기자들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김성희 서울특파원은 “협상이 잘못되면 담당 관료가 목이 달아나거나 책임추궁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어떤 관료가 자기 자리를 걸고 최선을 다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정책 집행에 대해 정부가 이렇게 나서서 책임을 묻는 것은 외국인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이러한 불안이 자꾸 정부의 보장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관료들을 못 믿겠으니 대통령을 만나려 하고, 대통령을 만나야만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외신기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김대통령은 오랜 야당생활을 통해 외신을 상대해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 지도자보다 외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잘 활용하는 편이었다. 김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각 부처에 외신대변인 제도가 생기고 외신들에 대한 취재 편의가 제공되면서 한국을 다루는 외신의 분량이 늘어난 것도 이를 증명한다.

“변한 모습을 적극 알려라”
그러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국인의 시각으로 전해야 하는 이들 외신기자가 ‘한국 알리기’와 관련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은 관료들의 폐쇄성이다. 뉴스위크지의 이병종 서울특파원은 “한국의 정부 관료들을 만나면 무언가를 이해시키려 하기보다는 ‘우리 시각을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한국이 과거의 고정적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TBS(東京放送) 서울지국장을 맡고 있는 츠가와 타카후미(津川卓史) 기자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전쟁이나 70,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떠올리지 않고 테헤란밸리와 PC방을 떠올리게 된다면 이는 아주 의미있는 발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마다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일본의 경우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이제 정치-사회적인 분야에서 동대문시장, 성형외과, 미용 등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일본계 특파원들의 지적이다. 도쿄신문(東京新聞) 고미요지(五味洋治) 서울지국장도 “더이상 광화문이나 한복 등을 통해 한국을 홍보하려 하기보다는 ‘변화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라디오 도이체 벨레(Radio Deutsch Welle)의 로날드 마이나르더스 기자는 한국인의 조급증이 한국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독일은 동방정책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통일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햇볕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려고 안절부절하는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는 독일인들에게 ‘한국인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한국 제품이 믿을 만하지 못한 건 아닐까?’하는 의심으로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대부분의 외신기자들은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민주화와 전통문화, 분단현실과 남북관계 등을 꼽았다. 반면 IMF 이후 경제개혁 과정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더욱 많았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만큼 국가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틀에 발목잡혀 있다는 말이다. ‘과거’를 털고 세계 속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신기자들의 인식부터 돌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20~21)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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