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4

2001.03.08

‘주사제 제외 파동’ 은 복지부 ‘작품’

‘연 3000억원 절감’ 재정 들먹이며 분위기 조성 … 지난해부터 주사제 제외 준비 혐의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02-15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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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제 제외 파동’ 은 복지부 ‘작품’
    정말로 불편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번 국회 보건복지위의 주사제 제외 ‘파동’을 지켜보면서 지울 수 없는 의혹이다.

    의약분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 없는 정책이 국민을 또 한 번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지난해 의료계 3차 파업을 거치는 동안 ‘의약분업은 국민 불편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일반 의약품의 낱알 판매까지 금지한 보건복지부가 이번에는 ‘국민이 불편하다’며 주사제를 분업에서 제외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2월22일 보건복지위의 약사법 개정안 심의에서 주사제 제외에 찬성한 의원들의 가장 큰 근거는 국민의 불편. 병원에서 약국으로, 다시 병원으로 ‘뺑뺑이’ 돌아야 하는 국민 불만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

    정말로 그럴까. “시민단체에 접수되는 불만의 대부분은 의약분업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 경실련 이윤정 간사는 처방전을 받는 것이 일상화하면서 주사제에 대한 불만은 그 안에 묻혀 버렸다고 설명한다. 이는 복지부의 의약분업 관련 국민불편 사항 신고에서도 증명된다. 전체 불편사항 신고 중 주사제에 대한 불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4.9%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조직적인 국민적 저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불편하단 말인가.



    “진짜 불편했던 것은 보건복지부 관리들일 겁니다. 계속되는 병원협회와 제약업체의 설득 작업, 그리고 의사 출신 의원의 압력, 게다가 장관의 등쌀까지….” 보건복지위의 한 의원은 이번 ‘주사제 제외 파동’을 복지부가 일으킨 한편의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론만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가 전하는 내용은 이렇다.

    “1월9일 약사법 개정 5차 기초 소위원회 때까지만 해도 주사제 제외는 거론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월11일 6차 소위에서 ‘주사제 분업에 따른 주사제 원외 처방료와 조제료 추가 재정부담이 3000억원에 달한다’는 복지부 차관의 돌연한 발언에 의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사제 제외 파동’ 은 복지부 ‘작품’
    올해 의료보험 재정의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던 의원들은 차관의 고백에 충격을 받는 한편으로 추궁을 계속했다. “그럼 주사제 원외 처방료와 조제료를 삭감하면 되지 않습니까” “진료 수가는 의사단체와 보험자 단체간 계약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조정할 수가 없습니다.” 의원들의 몇 번에 걸친 다그침에도 차관의 대답은 확고했다. 삭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보건복지위 기초소위는 이날 격론 끝에 ‘재정부담’을 이유로 주사제 제외를 전격 결의했다. 이때부터 복지부는 ‘주사제 제외하면 연간 3000억원 절감’이란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고, 이는 곧바로 활자화하거나 전파를 탔다. 하지만 복지부 차관의 말은 뒤늦게 ‘거짓말’로 드러났다. 1월31일 법제처가 민주당 의원실의 질의에 “국회의 승인이 있으면 이의 삭감이 가능하다”고 답한 것.

    복지부의 유권해석은 복지위의 최종 심의 바로 2시간 전인 2월22일 오후에야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삭감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됨“이었다. 결국 주사제 포함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복지부의 처방료와 조제료 삭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이런 사실이 의원회관에 알려지고 대한약사회의 주사제 조제료 포기 선언이 이어지자, 복지부와 주사제 제외에 찬성한 의원들의 논리에서 ‘재정부담’ 이야기는 쏙 빠져 버렸다.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는 주사제를 분업에서 제외하는 대신 강력한 주사제 억제책을 내놓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방향으로 급속하게 선회한 것.

    “부끄럽지만 속았습니다. 법제처 해석이 있은 뒤 복지부 관리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위에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또 다른 민주당 복지위 소속의 한 의원은 이 모두가 복지부가 짜놓은 한 편의 시나리오였다고 말한다. “복지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주사제 제외를 위한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3월1일 차광 주사제의 분업 포함을 위한 시한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복지부는 이번 기초소위와 복지위의 주사제 제외 결정을 예견했다는 듯,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개정 작업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복지부는 지난해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끊임없이 주사제 분업 제외를 요구해 왔다. 특히 최선정 보건복지부장관의 주사제 제외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소신’은 복지부 관리들조차 불만이 많을 정도. 처음으로 ‘주사제 제외’ 목소리를 낸 사람도 다름 아닌 최장관이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주사제 제외는 나의 소신’ 발언으로 파란을 일으킨 그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마다 주사제 제외를 화두로 삼았다. 심지어 지난 2월2일 민주당 고위 당정 회의에서도 주사제 제외 소신론을 피력하다 남궁석 정책위의장에게 “이 따위로 하려면 의약분업 때려치워라”는 혹독한 추궁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사실 최장관의 주사제 분업 제외 주장은 오래된 이야기다. 지난 98년 5월 복지부 차관 시절 의약분업 추진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면서도 이같은 주장을 펼쳐, 당시 분업 기초안에서 주사제를 제외하는 ‘파워’를 보이기도 했다.

    일단 상임위에서 주사제를 분업에서 제외하는 데 성공한 복지부는 2월24일 기다렸다는 듯 주사제 오-남용 방지대책을 내놨다. 진료과목별로 의사들의 주사제 처방 빈도가 높은 의료기관은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이를 점수화해 점수가 높은 의료기관은 진료비를 삭감하겠다는 게 방지책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이런 방지책은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짜깁기식 처방으로 일관됐다는 시민단체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항암 주사제 등 경구용 약품으로 대신 할 수 없을 때나, 응급 상황을 제외한 모든 주사제 처방을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점수제로 일부 의사를 처벌한다고 주사제 처방률이 낮아질까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무엇보다 건강심사평가원의 주사제 처방 심사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그는 “어차피 주사제 사용 억제가 목표라면 일차적으로 의약분업으로 주사제 사용을 억제하고, 이와 병행해 별도의 억제책을 시행해도 주사제 처방률이 떨어질까말까한 실정”이라며 “복지부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대체 의사들의 주사제 원외 처방료를 대폭 올려 보험재정에 부담을 준 사람이 누굽니까. 최장관의 ‘소신’은 맹목적인 ‘집착’일 뿐입니다.” 주사제 분업 제외 추진이 의약분업을 후퇴시키는 조치라고 지적하는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8월10일 취임 사흘 만에 주사제 원외처방료를 무려 45.97%나 인상한 최장관이 지금 와서 재정 부담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주사제 제외안이 3월로 연기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의약분업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약사회는 곧바로 의약분업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3월4일 약사법 불복종 전국약사대회를 시작으로, 주사제 제외안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5일부터는 의사들의 처방전을 일체 받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의약분업 이전 상태로 돌아가겠다는 것. 약물 오-남용을 막자면서 주사제는 괜찮고, ‘먹는 약’(경구용 약품)은 안 된다는 식의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약사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의사들 또한 복지부가 던져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놓치려 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대립은 자칫 ‘제4차 의료대란’을 빚을 우려마저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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