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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노이로제’ 걸린 슈퍼 아메리카

아랍계 무장세력 반미감정 고조 ‘호시탐탐’ … 국가보안국 검토 등 대책마련 부심

‘테러 노이로제’ 걸린 슈퍼 아메리카

‘테러 노이로제’ 걸린 슈퍼 아메리카
미국이 아랍계 무장세력의 테러 공격에 떨고 있다. 언제 어디서 미국인들이 폭탄테러에 희생당할지 모른다. 80년대 말 소비에트연방이 분해된 뒤 지금껏 막강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은 없었다. 그런 미국이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전세계 크고 작은 무장조직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 아랍계 무장세력들은 그들의 투쟁을 지하드(jihad), 즉 ‘거룩한 싸움’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를 신의 부름을 받은 전사들로 여긴다.

반미감정에선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이 무장집단과 연계된 국가에 미국이 취해온 조치는 일회적 폭격 또는 경제제재 정도다. 국제연합(UN)의 이름을 빌린 이런 규제도 반미 무장집단들의 투쟁의지를 삭히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로 아랍계의 반미감정은 더 악화된 상태다. 미국은 앞날에 있을 미 본토에서의 테러공격에 대비해 국무위원급을 우두머리로 한 국가보안국의 신설을 모색 중이다.

테러국에 대한 제재도 효과는 별로

‘테러 노이로제’ 걸린 슈퍼 아메리카
최근 들어 두 건의 테러 관련 재판이 전세계의 눈길을 끌어왔다. 팬암 여객기 폭파사건(1988년)과 그 10년 뒤 일어난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 두 곳의 미 대사관 폭파테러사건(1998년)이 그것이다. 스코틀랜드 상공을 날던 뉴욕행 팬암 여객기를 폭파해 270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으로 지목된 리비아 정보기관원 바세트 메그라히가 네덜란드에 설치된 스코틀랜드 특별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300명의 희생자를 낳은 미 대사관 폭파사건에 대한 재판은 아프리카에서 붙잡아온 4명의 용의자들을 상대로 뉴욕에서 이제 막 시작됐다.

이 두 사건은 △폭탄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해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사실상 최대 피해자가 미국 국민이며 △미국의 주도 아래 테러범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꼽히는 국가들(팬암 폭파사건은 리비아, 대사관 폭파사건은 아프가니스탄)이 각기 국제연합(UN)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팬암기 폭파사건으로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진 피고인이 정말로 범인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리비아측의 주장대로, 사건의 정치적 성격에 영향을 받은 재판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재판에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58)가 범행을 지시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리비아의 절대 권력자 카다피의 지시 없이는 비행기 폭파 같은 예민한 사건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란 막연한 의심뿐이다. 카다피와 미국은 오랫동안 신경전을 펴왔다. 1986년 당시 미국 레이건 정권은 베를린 시내 한 카페에서 터진 폭탄으로 2명의 미군이 사망한 데 대한 보복으로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었다. 그때 카다피의 딸을 포함, 수백명의 리비아 시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팬암기 사건은 말하자면 위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리비아 쪽의 테러행위라고 미국은 못박아 왔다.

팬암기 사건이 터진 뒤 리비아가 용의자의 법정 인도를 거부해오자, 지난 1992년 유엔은 리비아에 대해 석유 관련 장비와 무기 금수, 국제선 여객기 취항금지, 외교적 제한조치를 포함한 제재조치를 결의했다. 2년 전 리비아 측이 공정한 재판을 약속받고 범인을 넘긴 이래로 이 제재조치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리비아는 “재판이 끝났으니 제재를 완전히 풀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제재를 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피해자 가족들은 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40억 달러의 소송을 걸어놓고 있다.

반미주의를 내걸고 아랍세계의 맹주를 꿈꾸어온 카다피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러 반군조직들을 지원해왔다. 리비아 안에 일종의 혁명학교를 설치해 ‘성전에 참여할 전사’들을 길러냈다. 비전투원인 시민들의 손목을 마구 잘라 악명이 높은 시에라 리온의 반군조직 혁명연합전선(RUF) 지도자 포데이 산코, 그 자신 반군 출신으로 대권을 잡은 라이베리아 찰스 테일러 대통령도 90년대 초 카다피의 혁명학교에서 함께 훈련을 받은 이들이다. 아랍세계의 반미 혁명학교는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 2000년 봄 미 국무부의 관련 보고서가 “테러리스트 중심지가 중동에서 남아시아로 옮겨갔다”고 규정한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이웃 파키스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중심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으로 2억5000만달러의 재산가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이란 인물이 있다.

현재 미국은 빈 라덴을 체포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다. 1998년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을 동시에 폭탄 테러해 2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았고, 지난해 10월에는 미 구축함 코울을 자살 폭탄배로 충돌시켜 17명의 미군 희생자를 낸 테러공격의 총연출자로 꼽힌다. 그에게는 코소보 전범으로 낙인찍힌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와 마찬가지로 500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아프리카 미 대사관 폭파사건이 터진 뒤 클린턴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근거지를 폭격했지만, 그를 잡지는 못했다.

빈 라덴은 지난 90년 무렵 알 카이다(우리말로는 근거지)라는 이름의 무장조직을 만들었다. 주축은 소련군에 맞서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전한 아랍인들, 특히 수니(Sunni) 아랍인들이다. 극단적인 회교원리주의를 내걸고 정부군을 상대로 내전을 벌여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5%를 장악한 탈리반 정권은 빈 라덴의 강력한 후원자다. 이로 인해 유엔안보리는 지난해 12월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무기금수를 비롯한 경제제재를 결의한 바 있다.

빈 라덴이 지향하는 것은 글로벌 지하드(global jihad), 즉 전세계적인 회교성전이다. 이를 위해 회교 극단주의 무장조직들이 손을 잡고 그들이 ‘비 이슬람적’(non-Islamic)이라 여기는 아랍국가들을 전복시키고, 회교국가들로부터 서방세력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신의 뜻에 따른 이 종교전쟁에 참여했다가 죽는 사람은 ‘순교자’가 된다. 투쟁대상은 부패한 아랍 세속정부와 이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서방국가들, 특히 미국이다. 1998년 ‘유대인과 십자군과 맞서는 성전을 위한 세계회교전선’ 이름으로 나온 한 문건은 시민과 군인을 포함한 미국인들과 그들의 동맹자들을 죽이는 것은 ‘회교도의 의무’라고 못박고 있다. 아프리카 미대사관 폭탄테러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그러나 당사자인 빈 라덴은 이 사건을 총지휘했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빈 라덴이 운영하는 테러리스트 양성학교들이 있다. 빈 라덴은 지금까지 지역적인 목표에 매달려 투쟁해온 전세계의 ‘신성한 전사들’을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그의 혁명학교에서 교육시킨 다음 그 자신의 해석에 따른 전투적인 회교율법에 따라 모든 회교도들이 투쟁하는 국제적인 조직을 결성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 CIA(중앙정보국) 분석으로는 알 카이다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모두 12개의 캠프를 설치해 5000명 가량의 전사를 양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전세계 50개국으로 흩어져 하부조직을 구축 중이란 분석이다. 이곳에서는 폭탄 조작법부터 사상훈련까지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캠프에선 신경가스를 포함한 화학무기 훈련을 실시중인 것으로 미 CIA는 보고 있다.

빈 라덴의 직할조직인 알 카이다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미 CIA도 그저 수백명 또는 수천명으로 애매하게 추산할 뿐이다. 다만 풍부한 자금력에 바탕한 잘 짜인 정예조직이란 점은 인정하고 있다.

중동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아시아권의 말레이시아, 필리핀 회교반군들에 라덴은 우상에 가까운 존재로 알려진다. 투쟁논리는 회교성전이라는 매우 고전적인 것이지만, 빈 라덴의 투쟁방식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CD-롬에 폭탄제조 기술을 담아 보낸다든지, 위성통신을 이용한 이른바 인터넷 성전(e-jihad)을 벌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서로만이 알 수 있는 일정한 인터넷 암호와 해독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테러 목표와 공격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빈 라덴은 지난해 자신의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송출되는 위성통신을 미 CIA가 감청한다고 판단하자, 조직원에 보내는 지시는 대부분 암호화한 문서를 인터넷 통신으로 띄우는 방식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20억개에 이르는 웹 사이트에서 이들의 문서를 추적하고 또 풀어내기란 제아무리 CIA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한때 빈 라덴 밑에서 알 카이다의 간부로 일하다가 공금횡령 사실이 들통나는 바람에 미국으로 망명해 현재 뉴욕에서 막 시작한 아프리카 미 대사관 폭파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나선 인물이 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빈 라덴은 장기적인 테러계획을 세우고 조직원을 1~2년 앞서 현지에 보내 신분을 위장한다는 것이다. 빈 라덴 조직에서는 이를 ‘잠수함’으로 부른다. 빈 라덴은 중동지역에서 그가 목표한 대로 미국세력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미국인들을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필자가 중동 현지에서 확인한 사실이지만, 최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로 친이스라엘 노선의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감정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빈 라덴은 무엇인가를 준비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물론 그 공격목표는 미국인이 될 것이다.

테러리즘에 관한 미국의 신경과민은 최근에 나온 한 보고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 상원의원 게리 하트(민주당)와 워런 루드먼(공화당)이 중심이 된 ‘21세기 미 국가안보위원회’는 미 국방성의 의뢰를 받아 지난 2년 동안 국가안전 장치에 대한 초당적인 점검을 해왔다. 이를 토대로 위원회는 최근 ‘국가안보를 위한 청사진:변화를 위한 당위’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 영토와 시민에 대한 테러리즘의 위협이 심각하고 또 늘어나고 있다는 시각 아래, 보고서는 이와 관련한 미 정부기구의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대외정책기구들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려는 상황과 맞물려 나온 이 보고서는 “상당한 개혁이 없이는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 정부기관에 국무위원급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가보안국(National Homeland Security Agency)의 신설을 건의했다. 국가보안국에서 테러 관련 사건의 예방과 대응을 전담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특히 국제테러리즘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미국 시민과 미국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다음 4반세기 안에 일어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주간동아 2001.03.01 273호 (p54~56)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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