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3

2001.03.01

“생명과학은 이제부터 시작”

기능유전자 서열정보 확보·질병 유전자 규명 등 남은 과제 산더미

  • < 이대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입력2005-02-14 14: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생명과학은 이제부터 시작”
    생명과학의 ‘빅뱅’이 일어났다. 인간게놈과 생물게놈 30여종의 해독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사회에 던져진 최대의 충격이자 선물이다. 그 결과 생명의 정보가 넘치고 넘친다. 지금까지 인류가 확보한 모든 지식과 정보량보다 많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유전정보의 바다’에 푹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지경이다. 인간 DNA설계도에 들어가 그 구조와 기능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호사 또한 누리게 됐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최우선 과제는 현재 99%의 완성도를 가진 인간게놈 지도를 조속히 종결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모든 기능유전자 서열정보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 기능유전자 정보로부터 추가적인 게놈 해석이 가능하고, 해당 단백질을 유전공학적으로 제조하여 그 구조와 생체기능을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능유전자 정보는 바로 산업적인 활용이 가능해 지적재산권 확보 차원에서 경쟁이 치열한 부분이기도 하다.

    게놈정보는 DNA 내에 나열돼 있는 4종의 유전문자(염기)의 서열로 표시된다. 즉 …GCCATTGAGGAGTCAA…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30억개의 염기서열을 맨눈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 그래서 컴퓨터에 저장한 뒤 분석해야 한다. 기술선진국들이 우선적으로 게놈정보의 DB 구축과 전산해석능력을 앞다퉈 확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례로 미국 셀레라사의 전산해석능력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데, 한국의 슈퍼컴퓨터보다 100배 정도 빠른 속도의 슈퍼컴퓨터를 2대나 갖고 있고 자체 DNA DB(데이터 베이스)와 높은 수준의 분석프로그램까지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게놈정보를 담아놓을 DB조차 없고 이를 해석할 분석프로그램을 개발할 능력 또한 걸음마 수준이다.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게놈정보에 담긴 생로병사의 신비를 찾아가는 기능해석 작업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1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생명과학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선 의약계에서는 질병의 원인유전자들을 집중적으로 찾고 있다. 특히 암과 당뇨병처럼 복합 유전요인 질환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험생쥐와 고등동물의 게놈정보는 인간게놈의 기능을 해석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등동물의 게놈정보와 유전자 구성이 사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은 이제부터 시작”
    질병유전자와 관련하여 진행중인 연구의 한 사례로 생쥐 유전자의 기능정지(knock-out) 연구가 있다. 게놈 내 한 유전자를 손상시키면 생체의 모습이나 기능상 변화가 외부로 나타나므로 그 유전자의 생체기능을 역추적하는 실험이다. 이렇게 특정 유전자가 결손된 생쥐들은 특정 유전병의 모델실험동물로서 유전병과 의약개발에 필수적인 실험재료로 쓰이고 있다.

    일단 질병유전자가 규명되면 해당 유전자와 관련된 치료제 개발이나 유전자치료에 착수하는 것이 그 다음 과제다. 유전자를 환자에게 도입하여 유전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하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유전자의 생체 내 도입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 현재 사람에게 무해한 바이러스를 DNA에 연결한 생체도입이 시도되고는 있지만 아직 위험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게놈정보간 비교연구 역시 생체기능 해석뿐만 아니라 질병유전자의 추적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준다. 현재 사람간 게놈정보 비교에서 발견되는 단일염기변이(SNP)는 평균 1250염기당 1개 꼴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개인별 유전정보의 차이는 약 0.1%다. 이 SNP정보는 질병의 원인 규명과 함께 인류기원과 진화과정까지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편 인간게놈에는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유전자가 233개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연관이 없는 유전자는 단 1%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생물과 연관된 유전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많은 유전자들을 다른 생물로부터 취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의 게놈을 ‘이기적 게놈’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이런 유전정보의 비교분석을 통해 인류진화의 경로를 소상히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인간게놈 정보의 공개로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인간 유전자 수가 ‘애기장대’라는 잡초와 비슷한 수준이고 초파리보다는 기껏 2배 가량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생체기본 구성과 그 작동원리가 유사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현재 유전자가 차지하는 영역은 전체 게놈정보 중 1.1%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나머지 98.9% 내에는 추가적인 유전자와 함께 다른 암호체계의 유전정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령 왜 나는 부모의 모습을 닮았는가, 사람은 원숭이와 달리 왜 서서 걸어다니며 왜 사고하는 존재인가 등 많은 문제들이 유전현상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구조적인 정보와 고유행동까지 유전적 현상이라 본다면 게놈정보 안에는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유전정보가 내재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다른 암호체계를 가진 유전정보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없다.

    여하튼 인간게놈 연구를 통해 DNA분석기술과 전산해석기술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게놈정보의 기능해석 연구에 착수하려다 보니 현재의 기술 및 분석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연구수단의 근본적인 혁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세포를 들여다보면서 구성물들의 구조와 기능을 바로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기술혁신을 위해 새로운 학제적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DNA칩이나 항체칩 같은 새로운 분석장치도 나오겠지만, 보다 한 차원 높은 생체기능 분석기술과 실험장치는 게놈정보의 기능해석에 선결조건이 되는 셈이다.

    생체에는 현대과학으로 이해하기 힘든 생체기능들이 많다. 두뇌기능, 항상성, 면역기능, 번식기능, 생합성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러한 생체기능에 관련된 DNA설계도를 통해 ‘생체모방기술’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한 예로 생합성과 대사기능을 생각해 보자. 우리 몸은 섭취한 음식물을 재료로 수많은 생체구성물을 상온, 상압 조건 하에서 간단하고 빠르게 합성하고 있다. 사용하는 용매는 물 하나뿐이고 부산물이 없는 환경친화적인 제조공장이다. 대장균의 경우 다른 세포로 분열하는 데 불과 30분밖에 안 걸린다. 30분이면 생체 구성물을 모두 제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의 화학지식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초능력이다. 또 생체는 대사과정을 통해 생체부품의 생산은 물론 열에너지와 전기에너지 등을 동시에 만들어 생명현상을 가동한다.

    이런 초능력적인 생체기능을 활용할 방안이 없을까. 가능하다. 미생물 게놈을 보면 세포의 1차 구성물이 2000∼3000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모든 효소와 단백질을 만들어 생합성기구를 시험가동해 볼 수 있다. 바로 이같은 접근이 바이오산업의 핵심기술인 효소공학과 대사공학의 연장이다. 머잖아 생합성 체계를 활용한 정밀화학산업의 대체기술이 등장해 21세기 바이오산업을 구현할 것이다.

    인간게놈 정보의 완성은 생명과학의 꽃을 활짝 피울 것임엔 틀림없다. 인류사회는 인간 자신이 밝힌 DNA설계도 덕분에 좋든 싫든 커다란 변혁을 맞게 된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