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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법’ 갈수록 누더기 꼴

법무부, 영향력 축소 우려 … 시민단체 “알맹이 빠진 겉치레 법안” 강력 반발

‘인권위법’ 갈수록 누더기 꼴

‘인권위법’ 갈수록 누더기 꼴
민주당이 지난 1월14일 국회에 제출한 국가인권위원회법안(약칭 인권위법)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누더기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인권위법은 국가보안법, 반부패기본법 등과 함께 3대 개혁입법 중 하나로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처리, 정부의 인권 정책에 대한 권고, 인권 교육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민주당이 이번 회기 내 입법화를 서두르고 있는 법안.

77개 인권-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위원회’(약칭 공대위)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민주당에 사기-기만당했다”고 표현했다. 공대위는 앞으로 단식농성, 교수 등의 항의성명 발표, 규탄 집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민주당안을 철회한다는 방침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안에 대해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통령이 인권위원(위원장 포함 11명)을 임명토록 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인권위의 기본적인 위상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인사청문회와 국회동의를 거쳐 인권위원을 임명해야 인권위원들에게 확실한 도덕적-법적 위상이 확보된다고 주장해왔다. 연세대 헌법학과 허영 교수도 “형식적인 임명권은 대통령이 가져도 실제적인 인선권은 국회가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법’ 갈수록 누더기 꼴
인권위원에 대한 명예훼손 면책권이 삭제된 점도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불러온 핵심원인 중 하나다. 공대위가 지난해 11월 펴낸 ‘국가인권기구 설치를 위한 자료집’은 면책특권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권위는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은 물론 대기업 등 사회적으로 강력한 세력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조사해 공개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고 있다. 인권침해의 공표란 그 당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의미하기에 명예훼손 면책권이 없을 경우 인권침해 조사기능은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

또 수사, 재판 및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 다른 법률에 정한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사안에 대하여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은 “이런 사안을 신속-공정하게 조사, 시정하라고 인권위가 만들어진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인권위의 존재 의의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밖에 ‘증인 또는 참고인에 대한 조사’ 항목의 삭제, ‘시행령 제-개정시 법무부 장관과 협의’ 등의 항목도 문제가 많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한다.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것” “시행령의 대상이 되는 광범위한 사항에 대해 법무부가 기득권 보호를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

공대위는 지난 12일 오후 성명을 통해 “민주당 법안의 왜곡과 훼손은 인권단체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저선을 이미 완전히 넘어섰다”며 “이대로 간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단체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법무부 오병주 인권과장은 “민주당이 제출한 인권위법은 법무부보다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법안”이라며 “인권위를 국가기구로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과장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민주당과 협의-조정을 거쳤기에 법안의 대체적인 골격에 대해 큰 이견은 없다”고 말해 민주당안에 법무부측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음을 시사했다.

1998년 인권위법과 관련한 당정협의가 시작된 이래 인권위법은 숱한 변화를 겪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기구냐 민간기구냐’에 대한 논란이다. 시민단체들은 처음부터 인권위의 국가기구화를 주장해 왔다. 새사회연대 이대표는 “인권위를 민간기구로 하면 법무부 산하기관이 될 것이 분명하고 이렇게 됐을 경우 우리 현실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법부무측은 처음부터 “국가기구로 하면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다”며 “민간기구로 해야 방대한 공무원 조직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위가 만들어지면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주된 쟁점이 돼 ‘기본적으로 검찰을 혼내는 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법무부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결국 3년여를 끌어오던 이 문제는 2월8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인권위는 국가기구로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인권위는 국가기구로 한다’는 것 하나를 결정하는 데 3년이 걸린 것.

사정이 이랬으니 협의과정에서 법안이 겪은 변화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법안 마련에 실무 역할을 한 민주당 정책위 박상엽 전문위원은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법안 내용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한 예가 인권위원장과 상임위원 숫자를 둘러싼 줄다리기. 애초 위원장 1명에 상임위원 1명을 주장했던 법무부에 맞서 민주당은 위원장 1명에 상임위원 3명을 주장했다. 이것이 김경한 법무부 차관과 정위원이 대표로 참석한 당정협의에서 위원장 1명에 상임위원 2명으로 절충됐다. 그러나 김정길 법무부 장관이 끝까지 위원장 1명에 상임위원 1명을 고집해 결국 위원장 1명에 상임위원은 2명 이내라는 어정쩡한 절충으로 법안이 마련된 것.

인권위법이 이처럼 ‘누더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위상 약화를 우려한 법무부측에서 워낙 강하게 로비를 전개했고 민주당이 초기에는 시민단체들의 손을 들어줄 듯하다가 실제로는 법무부측의 입장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영향력 축소를 염려한 법무부측은 청와대, 당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등 엄청난 로비를 펼쳤다”고 전했다.

인권위법이 최종적으로 어떤 모양새를 띨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과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 등 여야 의원 95명이 인권위 상임위원 숫자를 늘리는 등 시민단체 의견을 보다 많이 반영한 ‘95인 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고, 한나라당도 별도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법사위가 열리는 2월20∼27일 동안 최대한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민주당안’이 세 개 법안 중 가장 ‘보수적’인 안이어서 최종 확정되는 입법안에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할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세대 법학과 허영 교수는 “이왕 만들려면 내실 있게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인권위원들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면책특권 등 확실한 신분보장을 해야 하며 수사권을 확실히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3.01 273호 (p10~11)

  • <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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