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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뉴프런티어|②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데이터 경영 도입한 ‘프로 건설맨’

자동차에서 손 떼고 화려한 변신중 … 자산 운용사 설립, 향후 행보 주목

데이터 경영 도입한 ‘프로 건설맨’

데이터 경영 도입한 ‘프로 건설맨’
1962년 생. 일반적인 대기업의 연공서열에서 38세의 나이는 기껏해야 고참 과장 정도에 해당하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똑같은 나이에 총자산 4조원 규모에 2300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정회장을 일반적인 대기업 회장, 또는 현대가(家)의 ‘몽’자 돌림 형제들 중 한 명으로만 볼 수 없는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경영 일선에 나선 ‘몽’자 돌림의 다른 사촌들과 달리 마흔이 채 안 된 젊은 나이라는 것과 현대자동차에 지난 88년 대리로 입사해 96년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자동차 경영에만 몰두해온 ‘자동차맨’이 어느날 갑자기 건설 경영자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이유는 인간 정몽규의 인생 행로 물길을 180도 바꿔놓은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그의 변신이 가능할 것인지 숨죽여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정회장은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영향을 받아 고교 시절부터 책갈피에 포니 자동차 사진을 끼워 넣고 다닐 만큼 ‘준비된’ 자동차맨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 경영 도입한 ‘프로 건설맨’
실제 정몽규 회장의 취임 이후 현대산업개발에는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대표적 굴뚝산업으로 분류되는 것은 건설업 분야에 자동차 시절의 경험을 접목해 과학적인 데이터 경영의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와 KPS(Knowledge Portal System·정보공유 시스템)를 도입한 것. ERP 시스템은 영업, 회계는 물론 공사 자재, 재고 등 경영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전부서에서 실시간으로 각종 경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빠르고 투명한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이지만 건설업의 특성상 이를 도입하고 있는 국내 건설업체는 전무한 형편.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심지어 일선 공사현장에 투입되는 철근의 숫자와 시멘트 분량까지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설업 경험이 전무한 정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을 맡자마자 이런 실험에 나선 데는 자동차 경영 방식과 전혀 다른 ‘주먹구구 방식’에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측 관계자의 설명.

“자동차 사업이야말로 정확한 원가 계산을 기초로 ‘투입 대 산출’의 사이클이 정확한 사업 분야로 꼽힌다. 부품을 얼마만큼 증대시키면 아웃풋이 얼마만큼 나오는 식이다. 이러한 사이클이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정회장이 건설 분야를 경험하면서 ‘주먹구구식 경영’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서 건설업은 그 성장 추세 못지않게 불투명한 경영방식으로 인해 수많은 의혹의 시선을 받아왔다. 과거 그룹 체제에서 건설업체는 비자금 조성의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자재를 1t 사용하면 1.5t 사용한 것으로, 인부를 50명 썼으면 100명이 참여한 것으로 과다계상해서 ‘블랙 머니’를 조성하는 수법이 주로 건설업체를 통해서 이뤄졌다. ‘건설업체가 망하면 주인 없는 도장이 한 가마니씩 나온다’는 말이 나돈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정회장이 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한 뒤 조직에 불어넣은 데이터 경영은 건설업체가 수행했던 이러한 기능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 자재, 인력, 비용 등의 각종 경영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 부서에서 공유되는 시스템 하에서 ‘빼돌리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 말하자면 ‘돈을 퍼부어가며 돈줄을 막아버리는’ 작업을 정몽규 회장은 진두지휘한 것이다.

‘정몽규 방식’의 건설 경영은 사외이사 영입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정회장 취임 후 주총을 앞두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춘 경영학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외이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자 이 교수는 이미 다른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기로 했다는 점과 아직도 투명 경영이 부족한 건설업에 회계 전문가가 들어가면 골치만 아플 것이라는 등의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회장은 “내가 당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며 사외이사 허락을 얻어냈다는 것.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도 이러한 정회장의 경영 방식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회계나 관리 분야는 업무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자재 관리 등 다른 분야에서는 일거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적 경영 혁신의 효과는 머지 않아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회장이 이러한 경영 실험을 어디까지 밀고나갈 수 있는지를 전망해보기 위해서는 정 회장 개인의 스타일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회장은 스포츠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를 즐기는 대부분의 재벌가 오너들과 달리 ‘들이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운동량이 부족하다’며 골프보다는 오히려 몸으로 부딪치는 격렬한 운동을 더욱 선호한다고. 최근에는 산악자전거(MTB)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깥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회장은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철인3종 경기에 직접 참가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참가한 이 대회에서 누가 이기는지 내기를 걸 정도로 정회장은 스포츠 분야에서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아온 한 관계자는 이를 정회장의 성장 환경과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독자로 자라난 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홀로 서야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대한 경쟁 심리도 생겨나게 되고 강한 승부욕이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측근들에 따르면 세심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정회장이 최근 들어서는 아이들과 함께 운동한 이야기 등, 가족들 이야기를 가끔 입에 올리기도 한다고. 정주영가(家)의 가족들이 그의 대선 출마 등을 통해 언론에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정몽규 회장 주변의 가족은 그동안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정회장은 지난 91년 현대자동차 상무 시절 결혼해 현재 준선, 원선, 은선 등 아들만 세명을 두고 있다. 부친인 정세영 회장은 맏딸을 노신영 전 총리 집안에 며느리로 보내고 맏아들 몽규씨는 보험사 사장 출신의 기업인 집안과 혼사를 치르게 했다. 현대산업개발 회장 취임 후 정회장은 성북동 집으로 임원들을 불러 여러 차례 저녁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보인 부인의 모습 역시 전형적 현모양처 스타일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 한 관계자는 “정씨 집안에서 며느리들이 별다른 대우를 못 받는 사실은 (큰집이나 작은집이나) 별로 다른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정회장의 여동생, 그러니까 정세영 회장의 1남2녀 중 막내인 유경씨는 현재 현대산업개발 I 타워사업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도 정회장은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무리 오너 회장이라고 해도 마흔도 안 된 동안(童顔)의 최고경영자가 건설업 분야에서 수십년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일단 정회장은 술을 모른다. 한 측근은 “최근에는 그나마 주량이 많이 늘어서 주종을 가리지 않고 한 잔까지는 하는 것 같다”고 전하기도. 고려대 동문으로 재계 내에서도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태원 ㈜ SK 회장이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소줏잔을 기울이고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임을 감안할 때 정회장의 자기 관리는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현대자동차 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한 관계자는 “몽규 회장은 그런 의미에서 ‘능구렁이’가 되기보다는 다소 뻣뻣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모범생’이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회장과 절친한 고교 동창인 한 현대 관계자는 이를 정회장의 유학 경험과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회장의 이력서에 나와 있는 ‘옥스퍼드대 정치학 석사’는 사실상 정치학이 아니라 ‘제왕학’(帝王學)이라고 한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정치경제철학’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이 학위과정은 각 분야 여러 명의 교수가 한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실제적으로는 ‘글로벌 리더의 덕목을 가리키는 제왕학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정회장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는 것.

정회장은 이 외에도 얼마 전부터 2∼3개월에 한번씩 경영학을 전공하는 젊은 교수들과 만나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30대 후반∼40대 초반의 교수들과 격식을 떠나서 토론 모임을 갖는데 토론의 주제는 건설업, 벤처 등 업계 동향은 물론이고 어떨 때는 육아문제까지도 논쟁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이 모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정회장은 고집이 세고 다소 보수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처음에 가졌던 선입견과는 달리 대단히 박식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고집이 세고 보수적이라는 점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늘 귀기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으로 비친다.

정회장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 것은 주변 인사들이 정회장에 대해 언급할 때 정세영 명예회장에 대한 ‘효심’을 빼놓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물론 아들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선대 경영인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도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해야 하는 최고 경영자의 입장에서 명예회장에 대한 ‘효심’이 그를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정 회장의 이러한 자세는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구, 정몽헌 형제간에 눈꼴 사나울 정도로 험하게 벌어졌던 3부자의 집안싸움과 비교되면서 시중에서 묘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 사실. 특히 정몽구 회장과의 ‘삼촌-조카간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패한 정세영, 정몽규 라인을 따라 현대산업개발로 이삿짐을 함께 쌌던 인사들이라야 이방주 사장, 김판곤 부사장 등 몇몇 임원에 불과할 뿐 아니라 비서들까지 합쳐봤자 채 20명이 안 되는, 귀양 치고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귀양 행렬이었기 때문이다.

정회장을 따라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산업개발로 옮긴 한 관계자는 “자동차 시절에는 길거리를 지날 때 굴러다니는 자동차만 보이다가 건설회사로 옮겨오고 나서 2개월이 지나서야 길거리 공사장만 눈에 띄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작 ‘귀양’ 심정으로 보따리를 싼 정몽규 회장이 어떤 심정일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회장이 생소한 분야를 헤쳐나온 과정들만 지켜보면 ‘건설맨’으로의 변신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인다. 그리고 정회장이 최근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고 벤처 투자를 확대하는 것을 볼 때 또 한번의 변신을 모색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색의 결과가 언제쯤일지, 그의 나이 불혹(不惑)일지 또는 지천명(知天命)일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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