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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기획|처가살이혼 늘어난다

“이젠 장모님 없이는 못 살아요”

노주석씨의 처가살이 6년 일기…“아이 양육 등 결코 후회 없는 탁월한 선택”

“이젠 장모님 없이는 못 살아요”

“이젠 장모님 없이는 못 살아요”
대교방송 뉴미디어팀 팀장 노주석씨(37)는 6년째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6년 전에는 아이 양육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가신세를 졌지만, 두 아이가 웬만큼 자란 지금도 처가살이를 고집한다. 지금까지 장인 장모님 품에 살면서 받아온 것을 이제는 되돌려 드릴 차례이기 때문이다.

누가 아이를 맡아 줄 것인가?

1994년 늦은 가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가슴을 잔뜩 웅크리게 하는 어느날 아내는 나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제 걱정 마, 의정부(처가)로 가기로 했어.” 가슴을 억눌렀던 집채만큼 큰 무엇인가가 단숨에 훌훌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애를 태웠던 것을 생각하면 거리로 뛰쳐나가 만세를 외쳐대도 모자랄 듯했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 보름 정도 남겨둔 아내는 양손 가득 배를 잡은 채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 뒤에는 또 다른 고민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처가살이를 시작하는 나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 근무하던 나는 결혼과 동시에 주말부부가 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내가 결혼 6개월 만에 임신을 했을 때 기쁨도 잠시, 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돌볼 것인지를 놓고 걱정이 앞섰다. 서울 도곡동 본가에서는 이미 큰형님의 아이를 키워주고 계셨기 때문에 말도 꺼낼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우려의 말만 되풀이하셨다. 장모님께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꿀맛 같은 1년

아이를 돌봐줄 든든한 후원자인 장모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첫아이가 태어났다. 장모님은 아내의 산후조리에서부터 갓난아이를 목욕시키고 우유 먹이는 일, 우리 부부의 식사문제까지 해결해 주셨다. 1년여간 꿀맛 같은 처가살이의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

처가살이를 시작함으로써 아이의 양육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우리 부부는 날개를 단 듯했다. 아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직장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더욱이 경제적으로도 생활비나 양육비를 대폭 줄일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아파트를 장만했다. 특히 아이들을 성심껏 돌봐주시는 장모님과 늘 감싸주시는 장인어른이 우리에겐 너무도 든든한 울타리였다.

생활비도 두 집 살림을 합쳐놓으니 우리가 부담해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군것질거리나 가끔 온가족의 외식비용 중 일부를 부담하는 데 그쳤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형편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이같은 편리함과 풍요 속에서도 남모르는 고민과 갈등은 있었다. 우선 나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것은 친가 부모님의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느냐는 것이었다. 애써 키워놓았더니 처가살이하면서 눈칫밥 먹고 사는 것 아니냐는 눈길로 보셨다. 물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누차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캐묻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어지간하면 어미 들여앉히고 직장 가까운 곳에서 살면 어떠냐”는 말씀도 간간이 하셨다. 아내 역시 동서들로부터 그같은 말을 들었는지 친가에 다녀오면 풀이 죽었다.

그러나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맞벌이나 나의 처가살이는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친가에 간다. 그런데 그때마다 작은 다툼이 발생했다.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옛날, 먼 곳으로 시집간 딸이 친정나들이를 손꼽아 기다리며 들뜨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아내를 볶아댔던 것이다. 사실 친가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만큼은 나는 완전히 해방되곤 했다. 아이들 돌보는 일은 물론 어렵게 대해야 할 어른도 없고 아내의 잔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파에 누워 잠을 자거나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생각할수록 달콤했고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아내의 고충

장인 장모님은 사려가 깊고 마음이 넉넉하신 분들이다. 때문에 처가살이를 하는 나의 입장을 많이 배려해주셨다. 먹고 입고 자는 것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나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밥 먹을 때면 꼭 새로 반찬을 놓아주거나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 꼭 일어서서 손님 맞듯이 대해주시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마치 한식구가 아닌 손님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곤란했던 것은 육아문제였다. 장인 장모님에겐 첫손자였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챙겨주셨다. 나는 버릇이 나빠질 것을 염려해 억제하고 통제하는 아빠가 돼야만 했다. 아이 교육문제로 장인과 의견이 엇갈리는 날이면 그날 밤엔 부부 사이도 서먹해졌다.

친정에서 사는 아내 역시 무조건 편한 것은 아니다. 남들은 친정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골치 아픈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우선 나와 처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남몰래 애쓴다. 혹시 내가 서운함이나 소외감이라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수고를 덜어주려고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그런 관계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 장모님께 그런 것도 못해주느냐고 핀잔을 듣게 되고, 식사 후에는 설거지하는 일이라도 거들어야만 한다. 또 처가 대소사도 챙겨야 하니 따로 사는 것보다 아내의 일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아내가 가장 마음 아파한 것은 먹는 것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남편을 챙겨주고 싶어도 혹시 자기 신랑만 위한다고 부모님이 섭섭해하실까봐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장모님은 내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아내는 중간에서 내가 혹시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하는 눈치다. 나 역시 장모님이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런 일로 마음 상하고 힘들어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서 정작 아이의 고통은 무시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큰아이는 행동이 거칠고 과격한 면이 있어 팔 다리 머리를 모두 한 번씩 꿰매고 깁스도 했을 뿐만 아니라 늘 상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의 처가살이에서 가장 큰 적은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 처가살이하는 것을 측은히 여기는 눈길, 만날 때마다 “이젠 그만 나올 때 되지 않았니?”라는 질문과 “힘드시겠어요”라는 인사….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그렇고, 설명을 해도 굳이 부정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쩌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서려 하면 “그래, 저 친구는 일찍 들어가야지”라는 수식어가 뛰따르지만 굳이 인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개운치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아내 역시 내가 밖에서 그런 눈길을 받는 것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눈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선과 사고에 대해 무관심하다. 가부장적인 낡은 가치관에 얽매일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바꾸고 합리적이라면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처가에 사는 것을 후회해본 적 없고, 분가해 사는 사람을 부러워해본 적도 없다. 아이들 양육문제를 장인 장모님께 부탁드린 것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과 함께 이를 허락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을 잊은 적도 없다. 얼마나 든든한 후원자고 훌륭한 가족인가.

게다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정부에서 서울로 이사하기로 했을 때 장인 장모님께서 기꺼이 따라주셨다.

내년이면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입학한다. 이만하면 육아의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다. 주변사람들의 말대로 이젠 분가해도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돌보아주신 장인 장모님을 두고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또 그렇게 사랑하는 손자들과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모셔야 할 차례다. 지금까지 장인 장모님의 품에 살면서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릴 차례다. 행여 한 아파트에 살기 불편하다면 바로 옆 아파트를 세내서라도 같이 살고 싶다. 가끔씩 혼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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