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2000.06.15

책 속으로 떠나는 유럽여행

  • 입력2006-01-10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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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떠나는 유럽여행
    수년전 로마에 갔을 때 여행안내자의 말이 걸작이었다. “제발 이탈리아 여행은 젊을 때 하세요. 나중에 효도관광 올 생각하지 말고.”

    웬만한 박물관 한 곳 둘러보는 데에도 며칠씩 걸리는 방대한 역사의 현장에서 최소한 꼭 필요한 것이 튼튼한 다리다. 발품 파는 일조차 귀찮기만 한 사람에게 명승고적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러나 진짜 갖춰야 할 여행장비가 있다면 아는 만큼 느끼는 ‘안목’이다.

    필론이라는 여행작가는 독서를 “영혼의 눈으로 보는 행위”라고 했다. 실제 여장을 꾸리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고 유럽을 일주할 수 있다. 또한 독서여행은 폐허의 잔해 속에서 실존의 흔적을 발견하게 해준다. 그냥 몸만 떠난 사람들은 폐허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 돌아올 뿐이다.

    클라우스 헬트의 ‘그리스·로마 철학기행’과 마리온 기벨의 ‘로마 문학 기행’은 이처럼 ‘영혼의 눈’을 뜨게 해주는 새로운 여행안내서다. 유럽식 문화유산답사기라 하겠다.

    저자인 헬트 교수(독일 부퍼털 대학·철학)는 “고대문화의 여러 사건이나 발전과정, 도시와 사원, 건축물과 예술작품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신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면서 “이 책의 목적은 바로 그런 사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리스·로마 철학 기행’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초기로부터 기원후 6세기 고대후기까지 고대사상을 두루 섭렵하면서 그 시대 대표적 유적지를 찾아가는 형식을 취했다. 저자가 첫 여행지로 이오니아 문화의 중심지이며 부유한 항구도시였던 ‘밀레투스’를 찾은 것은 이곳이 서양철학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6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서양철학의 원조격인 세명의 사상가가 이곳에서 살았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이들은 만물의 원칙을 찾아가다 ‘원소’라는 개념을 발견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에게 자연과학자로 각인됐지만, 기원전 5, 6세기 유럽에서는 철학과 과학이 통합돼 있었다. 또 ‘역사’라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 헤로도토스는 밀레투스 남쪽에서 100km쯤 떨어진 할리카르나소스에서 태어났다.

    이런 식으로 델포이, 올림피아, 에피다우로스, 아테네, 펠라, 로마, 폼페이, 알렉산드리아, 이스탄불까지 여행을 마치면 서양문화의 정신적 배경을 윤곽이라도 그릴 수 있게 된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지적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라틴-희랍문화 전문필자로 활약하고 있는 마리온 기벨의 ‘로마 문학기행’을 읽고 나면 역사 속의 인물들이 훨씬 생생하게 살아난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세네카 등 로마를 대표하는 문사들이 떠난 여행길을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키케로와 토론을 벌이고, 호라티우스의 사비느 농장에서 ‘서울쥐 시골쥐’ 같은 옛날 이야기를 듣고,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를 부른 오비디우스가 태어난 도시를 방문해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추억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카톨루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까지 로마 인물들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그 인물들과 관련된 장소에서 시작해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간 역사와 사회를 함께 소개했다.

    조금 있으면 여름휴가철이 시작된다. 해외여행, 특히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들을 꼭 한번 읽고 떠나기를 권한다.

    그리스·로마 철학 기행/ 클라우스 헬트 지음/ 최상안 옮김/ 백의 펴냄/ 607쪽/ 1만5000원

    로마 문학 기행/ 마리온 기벨 지음/ 박종대 옮김/ 백의 펴냄/ 479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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