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2000.06.15

반토막에 또 반토막 “될 대로 돼라”

심리적 지지선 붕괴 때 분노·우울증·현실부정 등 다양한 반응… 심할 경우 자살 등 극단 행동

  • 입력2006-01-04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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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토막에 또 반토막 “될 대로 돼라”
    요즘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다. 종잡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변수들에 의해 종합주가지수가 수십 포인트씩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천당이야 몇 번이라도 가면 좋지만 지옥을 경험하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게다가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끝없는 주가추락의 심연을 경험하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극심한 흔들림을 몇 번 겪고 나면 어느새 ‘심리적 지지선’이 흔들리고 깨져나간다. 인간이란 예측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완만한 하강곡선을 걷는 것보다 요즘같이 출렁이는 파동장세가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

    신문의 주식전망을 보면 흔히 ‘심리적 지지선’이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지수를 방어하고 싶은 욕구가 모여 있는 가상의 선을 뜻한다. 이게 무너지면 투매현상이 벌어지고 시장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인생살이에서도 마음의 지지선이 무너지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공황상태가 찾아온다. 물론 그 양태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또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나름대로 설정한 지지선이 여러번 무너지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식시장의 ‘심리적 지지선’이 몇 번씩이나 처참하게 무너졌으니(최근 상반기 주가동향 950-900-800-700 포인트…) 이런 상태에서 투자자들의 반응은 크게 현실부정-분노-우울증형으로 나뉠 수 있다.

    ●`현실부정(否定)형:“곧 좋아질 거야” “이건 아주 일시적인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야, 이건” 등으로 자기 최면을 걸면서 현재의 장세를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도대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계산하려 하지 않고, 매일 들여다보던 신문이나 주식정보사이트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현실을 인식하는 게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분노형:자신이 투자를 결정하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고, 종국에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차마 그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고 자책할 수 없어 외부로 포화를 돌리는 경우다. 그중 일부는 정부경제정책 미국증시상황 등 외적요인을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또다른 일부는 증권사 객장에 찾아가 항의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보다 원초적인 행동을 하고 증권사를 고소하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무조건 “엄마 때문이야!”라고 떼를 쓰듯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우울증형:가장 흔한 타입으로 앞서 얘기한 분노의 화살을 자기 자신을 향해 쏘아 심한 우울증과 패배감에 빠져든다. 이들은 ‘내가 왜 주식을 시작했나’하는 후회감과 ‘너무 욕심을 부려서 벌을 받고 있는 거야’ 라는 죄의식, ‘이제 나는 끝장이야’와 같은 절망감이 엄습해 주체할 수 없는 나락에 빠진다. 투자실패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과도하게 자책하며, 특히 자신이 투자한 종목만 운이 없어 계속 떨어진다는 초조함에 사로잡힌다. 그런 우울증이 오히려 무모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빚을 내서라도 손해를 만회해 보겠다고 덤비거나 자살을 기도한다. 둘 다 자신을 파괴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벌하려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통제불능상태에 빠지는 것일까.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주식과 자신을 동화(同化)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투자를 시작하면 공부도 하고 정보를 분석해서 나름대로 법칙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특히 ‘관심종목’의 몇몇 회사에 대해서는 더욱 애착을 가져 그 회사 상품만 사거나, 언론을 통해 그 회사의 문제점이 드러나면 마치 자신의 회사처럼 열심히 변호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데도 주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는 ‘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였는데 왜 이 모양이야’라는 불만을 품는다. ‘하다 못해 강아지도 정성을 쏟으면 주인을 알아본다는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심리상태다.

    그래서 보유주식이 하락하면 자신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자존심도 상한다. 이런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주식은 당신이 소유자라는 걸 모른다”라는 서양 격언이다.

    다음으로 투자와 도박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둘을 구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투자는 수익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도박은 이익을 내는 과정의 즐거움과 짜릿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로는 건전한 주식투자를 한다지만 어느새 수익보다는 ‘위험’과 ‘스릴’을 즐기게 된다. 마치 빠찡꼬를 하듯 기계적으로 사고 파는 일을 반복한다면 이미 그 단계에 온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상은 마음 한구석에 상한가의 ‘짜릿함’이나 한 종목만 잘 고르면 단숨에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술적 환상이 있다.

    이런 상태가 깊어지면 어느새 사고 파는 행위자체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고, 실패하면 후회하면서도 금세 다시 사고 팔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은 장세가 좋지 않을 때 손절매 한 뒤 관망하는 전략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더 큰 손해를 본다.

    이것이 주식중독의 징후들이다. ‘큰 한판’에 자꾸 집착하고 위험한 종목에 뛰어들어 강한 자극을 원하며 손해를 보면 ‘다음 번에는 잘될 거야’라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손해를 보면 볼수록 더욱 열심히 매매에 열중해 현실을 잊으려 한다.

    이런 초기 증세가 나타나면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주식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한다. 최근의 투자손실은 전반적인 하락장세 때문이지 ‘나’의 투자실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와중에도 수익을 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여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전반적인 하락장세에서는 손해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 혼자만 재수 없게 걸려들었다는 생각은 버린다. 이것이 첫단계다.

    둘째, 작년 1년 동안 상승장이 있었다면 하락장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갖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식은 주식일 따름이다. 주가하락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거나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주식은 어차피 본질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는 시장이다. 100% 안전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 투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두번 실패를 경험하게 마련이고, 실패를 두려워하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혹시 아직까지 ‘대박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 먼저 현실적인 손실률을 정하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미련 없이 팔아 후회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주식매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마다 한번씩 참았다가 다음날, 혹은 그 다음날 매매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매매간격을 넓혀본다. 그 다음날 주가변동을 보면서 늦게 들어갔다고 후회할 수 있겠지만 6개월, 1년 단위로 본다면 분명 효과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위험한 종목에 투자를 하거나 빠른 회전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면 잃어도 될 만한 10% 내의 돈을 가지고 도박성 주식매매의 금단을 해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자신만의 ‘심리적 지지선’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종합주가지수 몇점’으로 표현되는 지지선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이루어진 ‘지지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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