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2000.06.15

대낮 교차로서 ‘돈내놔’ 강도 득실

영부인 승용차 도난, 대법원장 집도 털려…“재물은 나누어 갖는 것” 죄의식 없어

  • 입력2006-01-04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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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낮 교차로서 ‘돈내놔’ 강도 득실
    남미 최대의 도시 브라질의 상 파울루시(인구 약 1500만명)가 극심한 강도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총기 소유가 허용되고 있는 이곳에서는 대낮에도 시내 중심가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중인 차량을 대상으로 한 권총 강도가 빈발할 정도로 치안 부재 상황이 심각하다. 치안 당국은 범죄 다발지역에 경찰 순찰차를 상주시키는 등 범죄 예방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범죄 발생률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지난해 상 파울루의 유력 일간지 ‘ESTADO SAO PAULO’지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체 400명의 응답자 중 300명이 넘는 77.8%가 최소 한 건의 강도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 전엔 길가에 세워놓았던 대통령 부인의 승용차마저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대법원장은 자택에 도둑이 들었으나 범인을 잡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의 피해도 예외일 순 없다. 2개월 전 교민 밀집 상업지역 부근에서 차를 몰고 가다 신호 대기 중이던 한 한국인 사업가는 오토바이를 탄 권총 강도의 요구에 불응했다가 총을 맞고 숨졌다. 또 지난달 중순엔 총으로 무장한 7, 8명의 떼강도가 63명의 교민이 모여 결혼식 피로연을 갖고 있던 한국인 단란주점에 침입, 1만 달러 상당의 금품을 탈취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운행중인 차를 막아서 금품을 뺏고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를 납치한 뒤 현금 카드로 예금을 인출, 도주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은행에서는 현금카드 1일 인출 한도액을 300헤알(한화 약 18만원)로 한정하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강도 때문에 못 살겠다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잇따를 법하지만 의외로 파울리스타(상 파울루 사람을 지칭하는 브라질어)들은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는 듯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곳 강도들은 피해자가 요구 사항에 순순히 따라주면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색다른 행각을 벌이는 강도들도 적지 않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집을 털고 나오던 강도가 강탈한 돈의 일부를 우유값으로 아기 엄마에게 주고 나오는가 하면, 식당을 턴 떼강도들이 여성들의 핸드백은 건드리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차량 운전자를 권총으로 위협해 금품을 뺏은 뒤 불과 5분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권총자살한 강도가 있는가 하면, 강도 피해자가 점심값이 없다고 하자 일부를 되돌려주고 가는 등 낭만적인(?)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추어 강도가 많은 것도 상 파울루 범죄세계의 특징 중 하나. 초보 강도가 많다는 사실은 돈이 궁색한 사람이면 누구나 강도로 돌변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렇듯 쉽게 사람들이 강도로 표변할 수 있는 데는 재물에 대한 하층민들의 독특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곳의 빈곤층은 브라질 북부 미개발 지역에서 직업을 찾아 상경한 혼혈인들이 대다수다. 이들에겐 강도나 도둑질을 통해 금품을 강탈하는 행위가 단지 많이 가진 사람의 재물을 ‘나눠 갖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슈퍼마켓이나 옷가게 등에서는 물건의 약 5∼10% 정도를 손님들이 슬그머니 훔쳐간다. 이들이 물건을 훔치다 현장을 들키더라도 주인들은 물건만 되찾을 뿐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혹 신고한다 해도 없는 사람이 좀 나누어 쓰려는데 있는 사람이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기 십상이어서, 오히려 번거롭기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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