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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수지 논란

무역수지 집착하다 경제 망친다

무리한 정책 동원 땐 부작용 ‘불보듯’…경제 전문가들 “금리 올려서라도 경기 조절 필요”

무역수지 집착하다 경제 망친다

무역수지 집착하다 경제 망친다
매달 1일을 앞두고 산업자원부 등 무역 관련 부처에는 늘 비상이 걸린다. 이날 지난 한달 동안의 통관 기준 무역수지 통계, 즉 수출과 수입의 성적표가 발표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올해 무역수지 목표치로 내세웠던 흑자 12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출입 관련 부처들 사이에서는 부쩍 한숨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역수지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한 나라의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를 통해 어느 정도 외화가 들어오고 나갔는지를 따지는 척도다. 70년대 이래 수출주도형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에서 무역수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체제일수록 무역수지의 중요성은 커지게 마련.

그러나 최근 무역수지 흑자 여부를 놓고 한 달 단위로 울고 웃는 정부가 벌이는 곡예를 보고 있노라면 흑자 120억 달러 무역수지 목표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묻게 된다. 적지 않은 경제 전문가들도 청와대 등이 나서서 120억 달러 흑자 목표달성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정부가 단순한 목표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미 정부 내에서도 올해 안에 무역수지 흑자 12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산자부나 재경부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120억 달러는 ‘목표’가 아니라 단순한 ‘전망’일 뿐이라며 한 발 빼고 있다.

올 한해 무역수지 추이를 보면 정부의 이런 분위기는 쉽게 이해가 간다. 올해 들어 5월까지 누적된 무역수지 흑자는 불과 21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21억 달러라는 흑자폭마저도, 5월 무역수지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13.7억 달러라는 두자릿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들어 무역수지는 4월까지 5억 달러 안팎의 소폭 흑자에 머물다가 5월 들어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철강제품 등의 가격 상승에 힘입어 두자릿수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산자부 내에서 예상했던 15억~16억 달러 흑자에는 못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1월 무역수지가 4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나타내자 모든 언론과 연구소 등은 26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흑자 기조가 무너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당시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적자 반전이나 흑자폭 축소 등을 놓고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부품 소재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대일 무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수출입 구조를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최근 수출입 환경은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없어지면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완전 개방에 가까울 정도로 수입장벽이 무너졌다. 덩달아 국내 소비수준도 크게 올랐다. 성장에 따르는 수입증가, 즉 수입의 탄력성이 크게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내 경기와 무역수지는 더욱 떼려야 뗄 수 없는 함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정책 당국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중앙대 홍기택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지금처럼 인위적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는 총수요가 방만하게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결국 콜금리를 일부 올려서라도 경기를 어느 정도 조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수입 억제를 위해 계획하고 있는 에너지 소비절약 캠페인은 이제 과거사로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반면, 정부는 아직까지 기업구조조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무역수지 흑자기조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거나 적자로 돌아서게 되면 자본이 유출되고 주가가 하락해 기업들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해서도 정부쪽 시각은 민간과 다른 편이다. 권오규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각종 경기 선행지수들을 분석해 볼 때 경기 상승 국면 자체가 빠른 속도로 진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지표들 중에는 산업용 전력 판매량이나 고속도로 자동차 통행량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올해 1·4분기에 전년 대비 16.8% 증가한데 비해 4월의 경우 8.5% 증가하는데 그쳤고 고속도로 자동차 통행량의 경우 1·4분기에 전년 대비 14.5% 증가했었으나 4월에는 9.7%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하반기 들어 경기가 둔화되면서 수입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3월 중 산업생산도 1, 2월에 비해 10% 이상 줄어든 바 있다.

물론 총수요 관리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되면 성장률이 둔화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실업 문제가 다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역수지 성장 물가 등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거시경제의 균형이 파괴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역수지 흑자를 목표로 무리하게 정책 수단을 동원하게 되면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나타났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던 것. 그동안 무역업계에서는 환율이 떨어질 기미만 보이면 ‘수출 경쟁력 상실’을 내세우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수출업계에서는 대략 1100원대의 환율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산업연구원 신현수 수석연구원은 “환율 변수에만 의존하게 되면 결국 핵심 기술개발 등 정작 중요한 조치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무역수지가 개선되지 않은 채 대외적 여건 호전에 따른 일시적 착시 현상에 휘말리지 말라는 충고다.

외환 위기 이전인 95∼97년 3년간 누적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에 이르는 등 국제수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정부는 원화가치를 절하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물가 안정을 고려해 오히려 환율을 낮춘 적이 있다. 원화 가치를 절하하면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 그러나 환율 인하에 따라 무역수지는 급격히 악화되고 말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외환 위기를 불러오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책 당국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건드리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970년대 전세계가 원유 파동을 겪을 때 중동 산유국들은 엄청난 국제수지 흑자를 누리면서 석유 재벌들이 베벌리힐스의 저택들을 사들였다. 80년대 들어서는 일본이 국제무역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를 사들이고 미국 경제의 상징인 록펠러센터마저 손아귀에 넣었다. 모두 엄청난 국제수지 흑자 덕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동 산유국들은 후진국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인들의 소비는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국제수지 흑자가 선진 경제의 척도인 ‘삶의 질’을 그대로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무역수지 흑자 목표치를 놓고 논란을 거듭할 때마다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2000.06.15 238호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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