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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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아니 뮐ㅆ·ㅣ… 삼성은 지금

철저한 ‘엎드리기’ 내실 관리 충실…전문경영인 대거 포진 치밀한 의사결정도 한몫

  • 입력2005-12-26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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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13일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오찬을 겸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 있게 말문을 열었다.

    “그룹의 전 계열사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올 1·4분기 중에만 이미 2조원 이상의 이익을 냈습니다.”

    IMF의 긴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고 있는 다른 그룹 입장에서는 입이 딱 벌어질 일이다. 제2금융권 등으로부터 이미 자금을 회수당하고 있던 현대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에 만난 현대의 한 고위 경영진은 기자에게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솔직히 현대와 삼성의 격차가 이처럼 큰 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삼성은 삼성, 현대는 현대’라고 생각했지요. 어느 면에서는 현대식 경영이 시대적인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달라진 겁니다. 그것도 순식간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재벌그룹 현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자 ‘삼성식 경영’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가 경영권 분쟁에다 자금난까지 겹쳐 완전히 ‘구시대의 상징’으로 전락한 반면에 막대한 이익에다 구조조정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서는 ‘역시 삼성’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의 경영실적은 내용적으로도 건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1·4분기 당기순익 2조2000억원은 반도체뿐 아니라 TFT-LCD, 휴대폰, 전자부품, 금융 등 전업종에서 기록한 것이다. 반도체 호황만으로 대규모 이익을 실현했던 1995년에 비해 수익구조가 훨씬 안정화됐다는 얘기다.

    이런 대규모 흑자는 반도체 정보통신 금융 등 주력사업 부문의 경쟁력이 대폭 향상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작년의 경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 제품은 모두 12개였다. D램과 S램, TFT-LCD, 모니터, 브라운관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 제품은 9개나 된다. 다른 그룹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삼성의 기업가치는 국내 최고다. 삼성은 올 4월1일 현재 총자산 67조원으로 현대의 88조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 5월31일 현재 삼성그룹 상장사 시가총액은 65조8000억원인 데 비해 현대는 20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삼성의 3분의 1 수준이다. 삼성의 5월말 현재 시가총액은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1997년 말에 비해 9배나 늘어난 것이다. 증권거래소 전체의 시가총액이 3.7배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삼성의 기업가치는 놀랄 정도로 향상됐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현대는 1997년 말에 비해 고작 4.6배 늘어났다.

    삼성이 이처럼 IMF 관리체제 아래서 돋보이기 때문에 ‘삼성은 위기에 오히려 더 강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IMF 관리체제와 함께 재벌개혁을 국정과제로 삼고 출범한 현 정부는 삼성에는 부담으로 받아들여졌다. 삼성은 여기에 총수의 ‘와병’이라는 또다른 위기를 맞기도 했다. 대내외적으로 3대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삼성은 그러나 이런 위기를 탈출하는 과정에 ‘삼성식 경영’, 즉 전문경영인들이 치밀하게 움직이는 ‘관리의 삼성’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우선 IMF위기는 삼성에 오히려 더 내실 있는 그룹 경영구조를 갖추는 계기가 됐다. IMF 직후 재벌에 주어진 지상명령은 구조조정이었다. 이를 위해 각 그룹들은 외자유치와 계열사 정리, 부채비율 축소에 나서야 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삼성식 경영’이 빛을 발한 것은 여기에서였다. 스스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신속히 움직인 것이다. 삼성중공업 창원공장을 매각했고 유화 항공기 발전설비 등을 모두 정리했다. 그룹의 최대 역점사업 중 하나였던 승용차부문도 떨어냈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IMF 위기를 그룹 거품빼기 계기로 최대한 활용했다.

    삼성은 ‘반 재벌 정부’ 출범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엎드리기’로 일관했다. 더욱이 삼성은 승용차사업 진출로 과잉중복투자의 원조처럼 인식되면서 IMF 원죄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과 ‘불가근 불가원’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삼성이지만 원천적으로 현 정권과는 가까우려야 가까울 수도 없는 관계다. 현 정권 출범은 삼성에 다른 어떤 위기보다 강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철저히 고개를 숙이고 내실 다지기에만 집중했다. 대우처럼 말로만 외자유치를 한 것도 아니고, 현대처럼 몸 불리는 기회로 삼지도 않았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군말 없이 따랐다. 그 결과 지난해 창립 61년 만에 처음으로 전 계열사가 흑자(6조5000억원)를 냈고, 그 여세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것은 삼성만의 컬러,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치밀함,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의사결정과정 등은 삼성식 경영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힘의 한가운데에는 수년 동안 다듬어진, 잘 관리된 전문경영인들이 포진해 있다. 총수가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이다. 물론 삼성 내에서 이건희회장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러나 자동차사업 철수 과정에서 보듯 총수에게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있다.

    현대와 대비되는 삼성의 또다른 특징은 형제간 재산분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삼성과 제일제당쪽이 노골적으로 대립한 적도 있고, 삼성생명 등 일부 기업의 지분정리는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분쟁이 외부로 드러날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자상속이라는 한국적 현실에서 3남이 그룹 대권을 이어받았음에도 현대처럼 2세들간의 재산권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은 미리미리 대비한 때문이다. 제일제당 한솔 신세계 등으로 분리해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한 것이다. 고 이병철 창업주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구나 삼성은 2세간 재산분할은 물론이고 이제 3세로의 승계작업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지난 4년여 동안 이뤄진 치밀한 상속작업의 결과 삼성의 핵심 계열사 지분은 이미 3세인 이재용씨에게 넘어간 상태다. 이재용씨는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최대주주로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설립한 인터넷 분야 등 신규 사업도 대부분 재용씨 몫으로 출자됐다. ‘굴뚝산업’ 지분은 물론 차세대 사업까지 재용씨에게 몰아놓은 것이다. 다른 재벌의 부러움을 살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변했다. 능력 검증 없이 경영권을 세습하는데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삼성식 경영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평가는 아직은 유보적이다.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성과는 대단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바깥보다는 안에서 강하다’ ‘1등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 등 삼성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결국 삼성이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삼성식 경영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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