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건강

툭하면 ‘뿡’ 악취에 가슴앓이

사회생활 지장 초래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정확한 원인 몰라 완치 불가?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7-12 1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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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이민지(23·가명·여) 씨는 휴학 후 1년째 집에 틀어박혀 있다. 병원과 집을 오갈 뿐 친구는 전혀 만나지 않는다. 영화관이나 독서실, 학원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도 가지 않는다. 자신이 ‘냄새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인 이씨는 수시로 방귀를 뀌는 증상으로 3년째 고생하고 있다. 방귀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심지어 인식조차 못 했는데 방귀가 새어나오는 경험을 자주 한다. 이씨는 버스나 강의실에서 주변 사람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자리를 옮기면 자기 때문인가 싶어 멀리 도망가고 싶다. 증후군을 치료하려고 내과에 다니며 약을 먹고 운동도 하고 있지만 통 낫지를 않는다. “연애, 취직 준비는 사치다. 내겐 냄새 제거가 제일 큰 숙제”라는 이씨는 집 안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돼가고 있다.



    설사, 변비보다 가스 참기 더 힘들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란 대장내시경으로 확인되는 이상 질환은 없지만 수시로 설사, 변비 등 배변장애나 복통, 복부 팽만감 등이 반복되는 만성질환이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대장과 소장 양쪽에 원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과민성장증후군’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 증후군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장 감각의 과민성 증가, 장운동의 비정상적 변화,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주요 증상에 따라 설사형, 변비형, 복통형,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진행되는 혼합형 등으로 나누는데 대한민국 성인의 10~20%가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약 155만 명에 이른다.



    환자들은 이 증후군을 치료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식이요법, 운동, 자세 교정, 스트레스 관리는 물론 식사 속도까지 조절한다. 식이요법으론 탄수화물, 콩, 탄산음료, 유제품, 카페인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고 장내 소화 개선 식단인 ‘저포드맵(Low FODMAP)’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박동균 가천대 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너무 차갑거나 맵거나 짜거나 카페인 함량이 많은 식품은 장을 자극해 설사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먹어서 별문제가 없는 음식은 굳이 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금지해야 하는 식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 정신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설사를 멈추는 지사제, 변의 양을 증가시키는 완하제 등을 처방하기도 한다.

    만성적인 설사, 변비, 복통은 고통스러운 질환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더 괴로워하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방출되는 가스다. 가스는 설사, 변비에 비해 원인 파악과 치료가 힘들기 때문이다. 최창환 중앙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개인적 진료 경험으로 보면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가스 과다 배출을 고민한다”며 “가스는 설사, 변비에 비해 약효가 낮고 치료도 어렵다. 항생제나 유산균을 처방하지만 절대적 치료방법은 아니며, 대변을 지릴 정도가 아니라면 괄약근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원인을 밝히는 검사방법이 없고 질환이 평생 가는 경우가 많아 의사, 환자 모두에게 골치 아픈 증상”이라고 말했다.

    배에 가스가 차는 현상은 장내 세균 구성이 비정상적일 때 발생한다. 최창환 교수는 “장에는 가스를 증가 또는 감소시키는 세균이 있다. 이 세균이 너무 많거나 부족하면 가스가 다량 생성된다”며 “예를 들어 음식물이 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세균에 의해 발효되면 가스가 생기는데, 생성된 가스 중 일부는 장벽에 흡수되고 흡수가 안 된 가스는 장을 팽창시켜 불편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변비가 있는 경우 대변이 장에 오래 머물러 악취가 나는 가스가 생성되기도 한다. 가스는 변비, 설사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이들 증상 없이 과다 배출만으로 고민하는 환자도 많다.



    ‘별것 아니잖아’ 가벼운 주위 반응에 절망

    이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가스 배출을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가스실금’이다. 가스실금은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많은 환자가 ‘요실금’에 빗대 이 표현을 쓴다.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10대 청소년은 물론 한창 사회활동을 할 20, 30대 청년도 가스실금으로 괴로워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가스실금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카페가 따로 있을 정도. 이 카페 회원 수는 7500명이 넘는데 게시판에는 ‘가스실금 때문에 미치겠다’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우리끼리 모여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10, 20대 회원들의 글이 넘친다.

    가스실금은 환자의 정신적 문제로 확대된다. 사람들 앞에서 방귀를 뀌는 민망한 상황이 두려워 타인과 대면하지 못하고, 이것이 다시 스트레스를 유발해 가스실금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취업준비생 김모(30)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험기간마다 설사를 했는데, 이것이 과민성대장증후군 가스실금으로 악화돼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대입 재수생활을 할 때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배에 가스가 가득 찼다. 예전엔 배에 힘을 주면 배출이 조절됐는데 언젠가 그것마저 힘들어져 강의실에선 늘 뒷자리나 구석자리를 택했다. 대학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 입시학원을 다닐 땐 3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의 내내 가스를 참기 힘들었다. 화장실에서 배출하고 오면 1시간은 버틸 만한데 3시간 동안 참기는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점점 심각해져 나 자신이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가스실금 환자 가운데 일부는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난다고 느끼는 ‘환취’를 겪거나, 반대로 냄새가 나는데 정작 자신은 그 냄새를 못 맡는 문제를 겪는다. 이들에게 더욱 힘든 것은 “별것 아니다”라는 주위의 반응. 의사가 “냄새가 안 나는데 본인이 착각하는 거다. 마음을 편히 가져라”고만 조언하거나, 가족이 “소화불량인가 보네” 하고 가볍게 넘기면 더욱 절망스럽다는 것. 3년째 가스실금으로 고통받는 정모(24·여) 씨는 “정신과에 다니며 항불안제를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코를 막거나 주변을 둘러보는 주위 사람들의 행동에 굉장히 민감하다. 내가 냄새나는 사람이고 사람들이 나를 기피할 거라는 생각이 모두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현재로선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완벽하게 예방, 치료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환자는 치료를 위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창환 교수는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는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증후군 치료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도 정작 자기 몸에선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습관과 통원 치료를 병행하면 꾸준한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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