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국제

천연가스 대박 맞은 이스라엘

에너지 강국으로 급부상, 터키와 관계 정상화 숨은 공신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7-11 17: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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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아탄’(Leviathan·고대 히브리어, 영어로는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 41장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다. 욥기에서는 이 괴물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고 묘사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에서 개발 중인 해저 천연가스전에 레비아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이파에서 서쪽으로 130km 떨어진 해역의 수심 1500m에 자리 잡은 이 가스전에선 실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 가스전에서는 미국 노블에너지가 이스라엘 회사 데렉 등과 공동으로 해저지역을 탐사한 끝에 2010년 12월 처음 천연가스가 발견됐다. 지금까지 이 가스전의 가스 매장량은 6200억㎥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세계 최대 해저 가스전 가운데 하나이자 지중해에선 최대 규모다. 2000년 이후 발견된 천연가스전의 매장량 중 최대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다. 이 지역에는 6억 배럴 규모의 원유도 매장돼 있다. 말 그대로 자원빈국인 이스라엘 처지에선 ‘괴물’을 발견한 셈이다.

    이것 말고도 이스라엘은 지중해에서 매장량 2500억㎥로 추정되는 타마르 가스전, 283억㎥의 마리-B 가스전, 200억㎥의 달리트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레비아탄 가스전에서 남동쪽으로 49km 떨어진 타마르 가스전은 2009년 발견돼 이미 생산에 들어갔다. 타마르 가스전에서 채굴된 가스는 길이 150km의 가스파이프라인을 통해 남부 아슈도드로 운반되고 있다. 이스라엘 재무부는 타마르 가스전 개발 덕에 앞으로 25년간 4500억 셰켈(약 137조6000억 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타마르 가스전의 하루 천연가스 생산량은 이스라엘 전체 하루 필요량의 40%에 달한다. 



    자원빈국에서 수출국으로

    이스라엘은 그동안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모든 에너지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이 때문에 에너지를 확보하는 게 안보적으로도 중요한 과제였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에너지를 수입할 수 없던 이스라엘은 주로 이집트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2011년 재스민 혁명 이후 중동 테러조직들이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가스파이프라인을 파괴해 공급에 지장이 생긴 데다, 자체 가스 사용량이 급증한 이집트도 수출이 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에너지 사정이 한층 심각해진 것.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중해 해저 가스전을 본격적으로 개발, 생산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타마르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로 국내 수요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는 데다, 다른 가스전에서도 천연가스가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레비아탄 가스전이 본격 가동하면 공급이 수요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가스전의 매장량만 이스라엘이 향후 100년간 쓸 수 있을 정도. 유발 슈타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장관은 이보다 매장량이 4배나 많은 해저 가스전을 지중해 연안에서 탐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블에너지는 2019년부터 레비아탄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천연가스 매장량의 60%를 내수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40%를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에너지 빈국에서 강국으로 변신할 꿈에 젖은 이스라엘의 행복한 고민거리는 가스를 어느 나라에 어떻게 수출하느냐는 것. 현재 대상국으로 떠오르는 국가는 터키, 요르단, 이집트를 비롯해 그리스가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국가는 단연 터키다. 터키는 그간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의 55%, 석유의 30%를 수입하며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러시아 가스 수입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최근 러시아와 갈등이 격화됐다. 대립의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11월 터키 F-16 공군 전투기가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Su-24 전폭기에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한 사건. 러시아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산 일부 상품 수입 금지, 터키로 향하는 전세기 운항 금지, 자국 여행사들의 터키 여행상품 판매 중단, 비자면제협정 중단, 터키인의 노동계약 연장 금지 등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내렸다.

    또한 자국 남부와 터키를 연결하는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운송 비중을 낮추고자 2014년부터 ‘터키 스트림’ 건설을 추진해왔고, 터키도 이를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추가로 공급받거나 대금을 할인받는 등 이점을 기대했다. 러시아의 강력한 보복 조치를 견디지 못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결국 러시아 전폭기 격추와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전혀 생산되지 않는 터키는 비슷한 사례가 다시 발생할 경우 에너지 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등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작업에 나선 이유다.



    결국 모세의 혜안?

    터키가 눈을 돌린 국가는 이스라엘. 그러나 양국관계는 지난 6년간 사실상 외교적으로 단절된 상태였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2010년 5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터키 구호선을 급습해 터키인 9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터키는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귀환케 하고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양국은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3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슈타이니츠 장관과 비밀리에 회동하면서 관계 개선 계기가 마련됐다. 양국은 6월 27일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은 2000만 달러(약 230억 원)를 터키 유족들에게 보상하고, 터키는 이스라엘의 통제에 따라 구호물자를 가자지구에 전달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대(對)이스라엘 공격을 중단하도록 터키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양국관계의 정상화를 성사한 일등공신은 바로 천연가스다. 양국은 레비아탄 가스전에서 터키까지 540km의 해저 가스파이프라인 건설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터키는 천연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이스라엘도 확실한 수출 대상을 확보하는 윈윈(win-win) 거래다. 이스라엘은 터키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이란을 견제하는 등 주변국과 새로운 협력도 추진할 수 있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천연가스를 지렛대 삼아 이집트, 요르단과 관계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천연가스는 인구 800여만 명에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는 선지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나올 때 길을 잘못 들어 석유가 풍부한 곳 대신 천연자원이 없는 땅으로 갔다는 유머가 있다. 결국 모세는 길을 제대로 찾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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