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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 참사 2주기

우리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숲 가꾸고, 전시 기획하고, 안전 매뉴얼 제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우리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우리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김성남 기자

‘사람들은 사건을 광속으로 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저서 ‘내릴 수 없는 배:세월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말하다’에 이렇게 썼다. 오늘 수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그만 잊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살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기억하고, 더 많은 이가 기억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이도 적잖다. 최근 전남 진도군 임회면에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한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무를 심는 사회적 기업 트리플래닛은 지난해 4월 진도 팽목항에서 4.16km 떨어진 대지에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1년 만에 그곳에 숲을 조성했다. 4월 9일 열린 완공식에 참석한 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은 김 대표에게 “지난 2년 동안 좋은 데를 갈 수도, 좋은 걸 먹을 수도 없었다. 먼저 간 아이의 동생에게 그게 늘 미안했다. 그런데 이제는 남은 자식의 손을 잡고 올 데가 생겼다”며 “조만간 도시락이랑 배드민턴채를 들고 이 숲에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부모님이 내게 ‘고맙다’고 하는데, 그 마음에, 미소에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현재 이 숲에 선 은행나무는 300여 그루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새긴 ‘ㅅ’자 모양 ‘기억의 벽’도 놓였다. 올가을이면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304개의 주름을 잡은 이 벽 반사면에 노란 은행나무 숲 풍경이 따스하게 담길 것이다. 김 대표는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오랫동안 세월호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무를 심었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마치 ‘노란 손수건’처럼 나부끼며, 희생자들의 귀환을 꿈꾸던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주기를, 그리고 쉼 없이 생장하는 나무의 생명력이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꼭 304그루를 심으면 한 그루 한 그루가 희생자들을 상징해 혹시 한 그루라도 고사할 경우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될까 봐, 나무 수량을 특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이 뜻에 공감했다. 김 대표는 “완공식에 오신 다른 가족들도 ‘많은 나무 가운데 서 있으니 오랜만에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 숲이 애초 바람처럼 세월호 추모의 상징인 동시에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고 했다.





“세월호 기억은 더욱 장대하고 강건해져 결코 잊히지 않을 것”

우리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김 대표가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14년 5월부터라고 한다. 그 무렵 ‘오드리 헵번의 아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김 대표에 따르면 당시 한국은 세월호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으로 격랑에 휩싸여 있었다. 사고 초기 충격과 슬픔이 가시면서 ‘세월호’라는 이름이 정치적 갈등 위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다. 김 대표는 그런 상황을 보며 처음 사고를 목격했을 때보다 더 큰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때 미국에서 e메일이 온 거죠. 자신을 ‘오드리 헵번의 첫째 아들이자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헵번재단) 설립자’라고 소개한 발신인은 ‘한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 대재앙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할 숲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트리플래닛에 그것을 위한 기부금을 내겠다고 하더군요.”

김 대표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니 ‘션 헵번 페러’라는, 자신에게 e메일을 보낸 인물이 실제로 헵번재단을 대표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의미 있는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와 수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김 대표와 트리플래닛 직원들은 모두 그의 제안이 진심임을, 나아가 이 프로젝트가 헵번재단뿐 아니라 트리플래닛과 구성원들에게도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저희는 직원이 6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예요. 평균 연령도 28세 정도고요. 환경을 지키려면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일해왔죠. 잘하는 거라고는 나무 심는 것, 숲 만드는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바로 그 일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김 대표의 말이다. 그는 “먼 훗날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전까지 우리를 짓눌렀던 무력감이 사라지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곧 숲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전남도와 진도군 관계자들을 만나 대지를 확보하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뜻을 전했다. 유족들의 동의를 얻은 뒤엔 이 숲을 좀 더 의미 있게 조성하고자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순식간에 3000여 명의 개인 또는 단체가 2억여 원의 ‘마음’을 보탰다. 세월호 침몰 당시 진도에 임시로 설치한 기지국을 관리하려고 머물렀던 SK텔레콤 직원들이 관련 수당 전액을 내는 등 뜻깊은 성금이 이어졌다. 건축가인 양수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재능기부로 ‘기억의 벽’을 설계했다. 여기에 헵번재단이 기부한 5000만 원을 더해 1년간 가꾼 결과물이 ‘세월호 기억의 숲’이다. 김 대표는 “숲 완공식 때 3대째 리본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시민이 노란색 리본을 보내오고, 과자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시민이 참석자들에게 제공할 과자를 구워주는 등 곳곳에서 많은 이가 따뜻한 마음을 보내왔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떠올렸다.

4월 초 방한해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식에 참석한 페러는 그 자리에서 “이 숲은 시간이 갈수록 더 굳세어지고 장대하게 자라나 절대 약해지거나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바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는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건 사람들에게 ‘잘못을 반복하지 마라. 또 다른 아이가 희생되지 않게 하라’고 얘기하기 위해서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더 큰 숲을 이루면 우리가 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더 굳건하고 아름답게 그 일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충분히아파하고 충분히애도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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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2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바로 그날, 예술을 통해 이 배와 그 안에 탔던 이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한 인물이다. 4월 16일 경기도미술관에서 시작하는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 사월의 동행’을 통해서다.

경기도미술관은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경기 안산시 단원고와 900m 떨어져 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분향소)와는 대지를 공유하는 상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정부가 인근에서 가장 주차장이 넓고 시민의 접근이 쉬운 경기도미술관에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하는 게 맞다. 이에 따라 경기도미술관 직원들은 지난 2년간 매일 분향소를 지나 출퇴근을 했고,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지난해 4월 13일 경기도미술관에 부임한 최 관장은 처음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여기 올 때까지 분향소가 미술관 안에 있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취임 후 사흘 만에 세월호 1주기 추모식이 열렸는데,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슬픔에 목이 멨어요.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예술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2주기 때는 꼭 추모 전시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최 관장의 얘기다. 당시는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 등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다(30쪽 기사 참조). 공공미술관이 앞장서 ‘세월호 추모’를 거론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진심은 통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건 ‘정치행위’가 아니라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은 당대의 삶, 당대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는 데서 출발하잖아요. 우리 미술관은 바로 그것을 담아내려고 존재하는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본 거죠. 경기도미술관 학예실장을 비롯해 다른 직원들도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조언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문학계와 음악계 등에서 세월호 추모시, 추모곡 등이 쏟아지는 반면, 미술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을 거론하면서 “전시회를 연다 해도 참여 작가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왜 경기도미술관이 세월호 추모전을 해야 하는지’ 세상에 말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동안 미처 듣지 못했던 수많은 작가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경기도미술관이 나서줘 고맙다’ ‘그동안 발표할 기회가 없었을 뿐, 혼자 꾸준히 세월호 관련 작업을 해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최 관장은 “순식간에 100점이 넘는 전시작이 모였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많은 작가의 세월호 관련 작품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6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이렇게 많은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감상을 한데 모은 것이다. 설치미술가 조소희 씨는 304명의 기도하는 손을 촬영한 작품 ‘봉선화 기도 304’를 내놓았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304명의 손 모델은 모두 경기도미술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한 이들이다. 가지런히 모은 이들의 손톱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붉은색 봉선화물이 들어 있다.

최정화 작가는 거대한 검은 꽃을 형상화한 ‘숨 쉬는 꽃’을 선보였다. 공기 주입기를 통해 꽃잎이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게 하는 방식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표현한 작품이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경기도미술관 앞뜰에 있는 총천연색 설치작품 ‘꽃꽂이’를 노란색 천으로 친친 감싸기도 했다. 이를 통해 봄꽃이 만발한 미술관이 숙연한 분위기로 뒤덮였다.

전시작 중에는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의 빈방과 유품을 찍은 기록사진 ‘아이들의 방’처럼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작품도 적잖다. 최 관장은 “관객에게 전시작을 설명해야 하는 도슨트들이 몇몇 작품을 볼 때마다 울음을 터뜨려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세월호 사건을 돌아보고 충분히 아파하는 것, 더불어 충분히 애도하는 것은 우리가 이 고통을 딛고 새로 출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가, 이 자리에 모인 작품들이 그 계기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게 최 관장의 바람이다.



“기억하고, 실천하라”

우리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3월 창간된 격월간 잡지 ‘오래 살고 볼 일이다’의 세 주역 윤상준, 민경환, 심준우  씨(사진 왼쪽부터)는 ‘써니아일랜드’라는 디자인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이들이다. 기획, 디자인, 광고, 마케팅 등의 업무를 하는 이들이 ‘안전’을 테마로 한 잡지를 만들게 된 바탕에는 세월호 사고가 있다. 심준우 써니아일랜드 대표는 “나와 윤상준 실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은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구지하철 참사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졌던 경험도 있다. 이 때문에 함께 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며 막연하게나마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을 높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생각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은 쏟아졌고, 늘 바빴다. 그렇게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미뤄두고 있을 즈음,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참담한 안전사고였다. 수많은 어린 생명이 수장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민경환 이사(마케팅커뮤니케이션 총괄)를 비롯해 직원 7명 모두가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그해 7월 일러스트가 담긴 팸플릿 형태의 안전 매뉴얼 ‘오래 살고 볼 일이다’를 세상에 냈다. 물놀이 안전을 테마로 한 이 팸플릿은 텍스트 형태로 유통되는 각종 안전관련 정보를 한눈에 알기 쉽게 정리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윤상준 실장은 “사실 우리 사회에 정보는 차고 넘친다. 배 위에서 하면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은 뭔지, 구명조끼를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같은 정보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그 정보들이 사람의 눈에 잘 띄는 방식으로, 그리고 위험에 처한 순간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즉 ‘how to say’를 고민했다. 딱딱한 정보를 재미있게 가공해 흥미를 유발하되, 진지함을 잃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마침 안전사고로 온 나라가 거대한 슬픔에 잠겨 있을 때라 더욱 그 선을 찾는 게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민경환 이사는 “각자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초과근무와 야근을 하는 사이사이, 아이디어 회의와 작업을 이어갔다. 거의 보름 동안 기획회의를 하고, 모든 구성원의 생각을 모은 뒤 한 달 정도는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한 것 같다. 마침내 결과물이 나왔을 때 무척 뿌듯했다”고 밝혔다.

써니아일랜드는 이 팸플릿을 무료로 제작, 배포했다. 안전 관련 단체와 협회, 유치원과 학교 등의 신청을 받아 발송해주기도 했다. 이 모든 작업을 직원 7명이 직접 했지만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놀이 안전을 테마로 한 팸플릿(여름편)이 산불 편과 레저 편 등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격월간 잡지에까지 이르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는 등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안전정보’를 전해줘야 할 사회적 이슈는 끝없이 나타나고 있고, 이때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를 만들어내는 데 직원들이 점점 더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심 대표의 얘기다. 민 이사는 “디자인스튜디오는 주로 기업을 상대하는 이른바 B2B(business to business)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일반인과 교류가 많지 않다. 그런데 ‘오래 살고 볼 일이다’를 만들면서 우리가 많은 분에게 관심을 받고 응원도 받게 됐다. 우리 회사 페이스북 등으로 들어오는 피드백을 보면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이가 많다”고 했다.

이에 따라 써니아일랜드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프로젝트를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하고자 지난해 오세이프(OSAFE·Only Safety)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해상안전’을 주제로 한 잡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창간호 역시 오세이프 이름으로 나왔다. 자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안전정보도 제공한다. 윤 실장은 “이 작업을 계속하면서 우리가 ‘사람을 살리는 디자인’의 한국적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좀 더 전문성을 기르고, 기업과 단체 등의 지원도 받는다면 좋은 디자인을 통해 사회 전반의 안전도를 높이고 싶다는 꿈이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세월호 사고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한 이 세상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심 대표의 말이다.  







주간동아 2016.04.20 1034호 (p32~35)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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