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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

목에 건 금메달, 사라진 몸무게

레슬링 영웅 장창선 6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피 말리는 계체량 승부, 연맹기록은 ‘부전승’

  • 최창신 세계태권도연맹 상임고문 ampa45@naver.com

목에 건 금메달, 사라진 몸무게

목에 건 금메달, 사라진 몸무게

시상대 맨 위에 선 장창선. 1966년 6월 18일 미국 톨레도에서 열린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우승해, 우리나라 모든 경기 종목을 통틀어 첫 세계선수권자가 됐다. 동아DB

장창선. 1960년대 중반 이 나라를 온통 들었다 놓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유명한 레슬링 선수였다. 64년 일본 도쿄올림픽 은메달에, 66년 미국 톨레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금메달.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레슬링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이런 너스레가 필요한 걸 보니 세월의 강이 어지간히 흘렀나 보다. 반세기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야 ‘장창선’을 논할 수 있게 됐다.
1966년 6월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펼쳐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장창선은 규정이 허용한 마지막 단계를 일본 가쓰무라 야스오와 동률을 이뤄, 결국 체중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금메달을 따냈다.
계체량 승부는 세상이 다 아는 일. 금메달 주인공이 매우 극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국제레슬링계에서 널리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후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면 레슬링 강국의 선수들은 코믹한 제스처를 쓰면서 사우나에서 필사적으로 땀을 빼고 우승한 ‘미스터 장’은 어디 있느냐며 보디랭귀지로 안부를 묻곤 했다. 특히 소련 선수들이 많이 물었다고 한다.
장창선과 가쓰무라의 체중 경쟁은 불꽃 튀기는 실제 경기보다 더 피를 말리는 싸움이었다. 다행히 먼저 경기를 끝낸 장창선은 가쓰무라가 미국 리처드 샌더스와 건곤일척(乾坤一擲)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펼치는 시간에 사우나에 들어가 “차라리 죽고 싶다”는 절규가 터져 나올 만큼 목숨을 건 땀 빼기를 해야 했고, 그만큼의 시간이 없었던 가쓰무라는 밀실에서 양팔에 주사기를 꽂고 피를 뽑아냈다는 소문이 돌 만큼 처절한 경쟁이었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몸무게가 덜 나갔던 장창선의 승리. 그런데 이 대목이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항상 시원스럽지 못한 점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장창선과 가쓰무라의 체중 차가 정확히 얼마였는가’였다. 아무도 몰랐다. 적어도 한국 안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3인 동률, 체중으로 바뀐 메달 색깔

목에 건 금메달, 사라진 몸무게
먼저 장본인 장창선의 기억. “내가 52.4kg, 가쓰무라가 52.5kg쯤이나 됐을까.” 100g 정도 차이인데 확실치 않다는 이야기다. 언론인 조동표는 ‘레슬링 풍운록’에 장창선이 52kg, 가쓰무라가 52.2kg으로 200g 차였다고 썼다. 장창선의 기억과 다르다.
가장 정확한 증인은 계체량이 실시된 의무실에 한국 측 대표로 들어갈 수 있었던 단장 하경대와 국제심판 이정기 두 사람인데, 하 단장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정기 심판도 미국에 거주하다 별세했다. 그들이 생존해 있다 해도 근소한 체중 차를 기억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다음으로 믿을 만한 증인은 장창선과 사우나에 같이 들어가 지켜주고 시종 함께 다녔던 동료인 김익종 연합세계레슬링(UWW·옛 국제레슬링연맹) 이사.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계체량이 진행될 때 어디 있었습니까.”
“의무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 문 밖에 서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황을 설명해주십시오.”
“일반적으로 장창선과 가쓰무라 두 선수만 체중 비교를 한 줄 아는데, 아시다시피 장창선과 가쓰무라는 이미 3차전에서 비겼고, 장창선과 샌더스도 마지막 6차전에서 극적으로 비긴 데다, 가쓰무라와 샌더스마저 비기게 되니 3인이 동률이 됐죠. 그래서 셋이 불가피하게 체중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첫 번째 계체량에서 샌더스는 다른 두 선수보다 현격하게 무거워 (57kg이던가) 3위로 정해졌고 장창선과 가쓰무라는 두 차례씩 더 저울에 올라 ‘근소한 차’로 순위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두 사람의 체중 차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아마 그건 당시 주로 사용하던 저울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가마’ 단위의 쌀, 보리 같은 곡류와 사람 등 제법 무거운 대상을 잴 때 사용하는 이른바 ‘쌀저울’의 모양과 기능을 알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이, 밴텀 등 각 체급의 한계 체중에 드는 선수를 가려내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저울이 없지만, 선수끼리의 미세한 몸무게 차이를 알아내는 기능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아! 어째서 긴 세월 동안 아무도 이 저울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요. 계체량을 실시하던 의무실에 극히 제한된 인원만 입장시켰기 때문이겠군요. ‘근소한 차이’면 됐지, 굳이 두 선수의 체중 차이를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이 바로 이해되네요.”
이로써 300여 년 동안 수학계의 숙제로 남아 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마침내 그 해답을 찾은 것처럼, 장창선이 가쓰무라를 누른 정확한 체중 차이에 관한 해답이 얻어진 셈이다. 정확한 숫자상의 차이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목에 건 금메달, 사라진 몸무게

1966년 7월 5일 미국 톨레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한 장창선이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동아DB

UWW는 ‘부전승’으로 기록

그렇긴 해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제대로 정확하게 정리가 돼 있으면 좋았을 텐데 과연 UWW는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당시 계체량 업무는 세계연맹 공인 닥터 스트롬백이 주관했으니 뭔가 특별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궁금중이 자꾸 증폭됐다. 나중에 재앙이 튀어나온다 해도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여러 국제경기연맹 관계자들과 다양하고 폭넓게 교류하는 서정강 세계태권도연맹(WTF) 실장에게 부탁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좀 지체되긴 했으나 자세한 답변이 왔다.
“당시 장 선수 경기기록은 다음과 같다”면서 1차전부터 6차전까지 기록을 정확하게 보내고 “7차전은 부전승(Bye)”이라고 밝혔다. 은근히 기대하기로는 ‘계체량으로 우승자가 가려졌다’는 내용과 함께 공인 닥터 스트롬백의 서명이 담겨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부전승’이라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즉각 2차 질문을 보냈다.
“플라이급은 마지막 단계에서 동률을 기록한 선수들끼리 체중 비교를 통해 챔피언을 가렸다. 이것에 관한 기록이 있는지 찾아봐달라.”
절묘하게도 2015년 섣달 그믐날인 12월 31일 회신이 왔다. 필자의 질의에 성실하게 답변하기 위해 1960년대 중반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을 찾아내 자문까지 받았으나 “몸무게가 더 가볍거나 더 무거운 것을 가지고 승자와 패자를 결정한 기록이 없다”면서 옛날에 사용하던 6벌점제 경기방식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하르트무트 잔트너(Hartmut Sandner)라는 이름의 기록담당 책임자가 보낸 편지였다. 벌써 반세기 전 일이니 아무리 UWW 관계자라도 정확한 기록이 없으면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UWW는 모든 기록 관리를 직접 하지 않고 1993년부터 독일에 있는 전문회사에게 용역을 줘 처리하고 있다 한다. 답장을 보내준 잔트너도 그 회사 직원이었다. 그러니 반세기 전의 세부적인 사항은 더욱 모를 수밖에.






주간동아 2016.01.20 1022호 (p70~71)

최창신 세계태권도연맹 상임고문 ampa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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