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2

2016.01.20

사회

고발은 짧고 고생은 길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유명무실…신분 노출로 보복성 해고, 징계 뒤따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1-18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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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의 호루라기.’ 공익제보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익제보란 조직 구성원이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리나 부정을 외부에 알려 공공의 이익과 알 권리를 실현하는 행위다. 공익적 목적이 명확하지만 제보를 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다. 다수의 침묵 속에서 홀로 양심선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소신과 용기를 갖고 진실을 알리지만, 이후 해당 조직의 보복과 사회적 고립으로 ‘후폭풍’을 맞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인권시민단체 호루라기재단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내부고발자의 50% 이상이 고발 이후 1년 동안 자살 충동 등 정신적·신체적 질환을 겪었다. 73%는 가정불화가 있었고, 67%는 생계 유지가 힘들거나 배우자의 경제활동으로 생활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년 1월부터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공익제보자의 인권을 지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보자들은 해당 조직에서 해고 및 징계를 당해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이들을 지켜주는 법은 거의 유명무실하다.



    “후회는 없지만 권할 순 없어”

    전경원(46) 서울 하나고 교사는 공익제보 후 ‘우수 교사’에서 ‘문제 교사’가 됐다. 전 교사는 2015년 8월 하나고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합격생 명단이 조작됐음을 발견했고 이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결과 하나고의 입시 부정이 있었음이 드러났다”고 발표해 전 교사의 제보가 사실임을 밝혔다.
    하지만 전 교사는 제보 직후 학교 방침에 따라 담임교사에서 교과목(국어)만 가르치는 교사로 전환됐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불안하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2015년 12월 교사평가에서는 낙제점을 받아 특별연수 대상이 됐다. 동료·학부모 평가점수가 5점 만점에 1점대로 극히 낮게 나온 것이다. 전 교사는 “점수가 낮게 나온 항목은 동료나 학부모가 수업 참관을 해야 평가할 수 있는 분야였는데, 참관 없이 낮은 점수가 나와 이해가 안 된다”며 “제보 전까지는 좋은 교사로 인정받았다. 2014년 10월 우수교사 표창을 받았고 하나고 개교준비위원으로서 교가를 작사하는 등 학교 발전에 기여했는데, 제보 후 학교에선 왕따가 됐고 학부모들로부터 ‘사퇴하라’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복성 조치를 받아도 ‘제보’와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법적 구제가 힘들어 학교의 징계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2012년 2월 KT의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 조작’을 언론에 제보한 이해관(53) 씨는 “고발은 짧고 고생은 길다”고 말했다. 이씨는 KT에서 해고된 뒤 아직 복직하지 못한 상태다. 이씨는 “KT는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뽑는 전화투표가 국제전화’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론 국내전화였다”고 주장했고 수사 결과 이씨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씨는 2012년 3월 정직 2월의 징계 처분 후 출퇴근에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지사로 전보조치됐다. 같은 해 10월 KT는 이씨의 병가 신청을 불승인하고 끝내 해고조치했다. 대법원은 KT의 전보조치를 무효로 판결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KT가 이씨를 해고하자 ‘보복조치’로 규정하고 해고를 철회하라는 취지의 2차 보호조치를 명령했지만 아직 이씨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씨는 “내가 한 행동에 후회는 없지만 남에게 공익제보를 권할 자신은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서다. 내부고발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공익신고자들이 처한 딜레마”라고 말했다.



    경제적 피해 구제책 마련해야

    2012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43) 전 주무관은 해직된 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은 고발자이기도 하지만 조직 내부비리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유죄 및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복직할 수 없었다. 그는 “해직 후 10개월 동안 무직으로 지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워낙 차가워 재취업이 어려웠다”며 “나는 가담 당시 조직의 말단 직원이었고 부정행위의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법



    원에서 그 부분을 고려하고 내부고발을 한 점을 인정해 선처해주길 바랐는데 해직 이후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내부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공저)을 쓴 박흥식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공익제보자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 해직, 감봉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공익제보자들은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각오로 내부비리를 고발하지만, 실직 등으로 가족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공익제보자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펀드가 잘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민단체가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향후 더 체계적으로 발전해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이 공익제보자의 신원을 완벽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공익제보자가 양심선언을 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신분 노출에 따른 피해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공익제보 직후 제보자가 누군지 내부에 알려진다”며 “공익제보자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그들의 신원 비밀을 보장하는 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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