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2

2016.01.20

사회

미소 시위 ‘효녀연합’이 궁금해!

대표·조직체계 없는 단체, 개인에게 시선 집중…“예쁜 여성 이미지, 영웅화 부담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1-18 10: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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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예쁜 그대를 응원합니다.” “젊은 친구의 용기가 참 기특하네요.”
    2016년 1월 6일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칭찬 세례를 받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대한민국효녀연합’(효녀연합)의 홍승희(26·여) 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수요집회)에 참여한 홍씨는 손팻말을 들고 미소를 지은 모습으로 한 시위대 앞에 서 있었다. 손팻말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당일 수요집회에는 ‘어버이연합’ 등 일부 시민단체가 참여해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베 정권의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했고 효녀연합은 이에 맞대응했다.
    반대편 시위대 앞에서 밝게 웃는 홍씨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엔 효녀연합 계정이 개설됐다. 1월 14일 현재 효녀연합과 홍씨의 페이스북 계정은 각각 좋아요 수 1만3700여 개, 폴로어 수 2만1000명이다. 이어 ‘효녀연합과 뜻을 같이한다’는 취지로 페이스북엔 ‘효자연합’ ‘오빠연합’ ‘누나연합’ ‘커피연합’까지 등장했다.



    ‘행위’보다 ‘개인’에 집중된 관심

    하지만 이 단체는 공식 대표도, 조직체계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를 포함해 청년예술가 단체에서 활동하던 젊은이 8명이 참여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홍씨는 “나는 효녀연합 대표가 아니며 손팻말을 들어서 주목을 받은 것뿐이다. 효녀연합의 향후 활동 계획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홍씨는 1월 13일에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알리는 춤 퍼포먼스를 했지만 “효녀연합이 아닌, 개인으로 참여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여론은 실체가 없는 효녀연합 대신 홍씨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는 대학 및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해오다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예전부터 인권과 평화 같은 보편적 가치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가치를 좀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형태로 알리고자 예술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세월호 참사 이후”라고 말했다.
    홍씨는 자신이 효녀연합의 상징처럼 비춰지자 언론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1월 12일로 예정돼 있던 ‘주간동아’와 인터뷰를 당일 취소했다. 13일 수요집회 현장에서 만난 그는 “위안부 관련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자 했는데 나의 개인사가 더 부각되고 있다. 메시지는 사라지고 ‘여자 홍승희’의 이미지만 소비됐다 사라질까 봐 우려스럽다”며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가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적 코드라는 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론이 홍씨에게 부담을 준 이유는 그의 과거 이력이 조회되면서부터다. 통합진보당 당원이었고 재판을 받은 적이 있으며 지난해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1인 시위로 ‘광화문 청순녀’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그를 규정지은 것은 ‘젊고 예쁜 개념녀’라는 꼬리표였다. 홍씨에 대한 인터넷 기사 댓글에는 외모 칭찬 내용이 유난히 많았다. ‘미인이면서 할 말도 하는 개념녀’ ‘얼굴이 예쁜데 마음씨도 곱다’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홍씨의 친언니로 강원 춘천시에서 인문학 카페 ‘36.5도’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는 1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효녀연합을 응원한다면서,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곱네”라는 말이 대다수다. 그 예쁘다는 일상적이지만 지독한 시선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위안부는 일본으로부터의 폭력 이전에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적 시선과 태도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효녀연합이 유명해지자 행위의 본질은 가려지고, ‘사회운동을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에만 열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여성조차 남성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재현되고 남성의 성적 대상화가 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오빠연합’과 같이 ‘예쁘고 착한 효녀연합을 지키겠다’는 취지의 단체가 생긴 것이 그 예”라고 지적했다.
    효녀연합에 대한 반응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어버이연합’ 등 기성세대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성난 목소리로 주장하는 대신 미소를 띠며 시위한 것에 감동했다는 반응이 많다. 1월 13일 수요집회에서 만난 대학생 조소영(22·가명) 씨는 “사회 갈등을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시위였다”고 평가했다. 효녀연합을 지지한다는 이현동(57) 씨는 “시위대 앞에 선 홍씨의 미소는 반대 세력의 차가운 마음을 녹일 법하다. 순수한 청년들의 평화로운 시위가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갈등 허물려면 갈 길 멀어

    하지만 효녀연합에 대한 냉대의 시선도 여전하다. 어버이연합 관계자는 “홍씨는 가식적이다. 우리와 평화롭게 대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를 ‘꼰대’(보수적인 어른을 지칭하는 말)로 생각하며 비웃고 있다. 그는 단지 영웅이 되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효녀가 아니다. 홍씨의 아버지가 홍씨에게 ‘취직도 안 하고 왜 쓸데없이 시위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자기 아버지 말도 안 따르는 사람이 무슨 효녀연합을 만들었나. 그리고 홍씨가 시위할 때 입고 나오는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는 일본 조총련계 학교 교복과 똑같다. 좌파인 통합진보당 출신이고 사상이 의심스럽다. 그가 1인 시위를 하면 우리도 옆에서 반대 시위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씨는 안타까운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효녀연합의 이름이 어버이연합에 대한 풍자적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을 조롱한 적은 없다. 시위 때 입은 의상은 일제강점기 위안부를 비롯한 소녀를 상징한 것이다. 무엇보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나의 부친과 생각이 비슷하기에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버이연합 대 효녀연합의 대결구도로 해석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는 효녀연합을 따라 여러 연합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지만 아직 진정성 있는 연대 활동은 많지 않다. 홍씨는 “1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진행한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무효 선언 관련 플래시몹에 효자연합이 동참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효녀연합의 ‘미소 시위’는 긍정적인 영향을 계속 끼칠 수 있을까.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효녀연합이 세대, 이념 간 갈등을 넘으려고 한 시도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도 “상호 불신이 워낙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한 번의 미소 시위가 화해로 이어질 순 없을 것이다. 평화를 이루려면 앞으로도 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효녀연합을 모방하는 여러 연합이 화해와 공존을 확산한다면 좋겠지만, 세간의 관심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관철하는 움직임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부분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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