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2

2016.01.20

안보

“방산비리 척결” 외쳐도 ‘전관’이 웃을 수 있는 이유

원가업무 아웃소싱으로 방사청 출신 퇴직자들 개입 가능성 더 커져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1-15 18: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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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피아, 법피아, 군피아…. 이런 조어들에는 ‘전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재직 경력과 그로 인해 형성된 인맥, 그리고 ‘선배’로서의 존재감 등을 이용해 부당하게 현직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방위사업 전반을 관할하는 방위사업청(방사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산 절감’을 앞세운 방사청 업무 아웃소싱 정책이 전직 방사청 공무원·군인들의 영향력 행사를 방관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사청이 원가업무에 대한 아웃소싱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당시 방사청은 “무기체계의 원가 부풀리기는 방산업체보다 하도급업체(방산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의 납품가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며 더욱 철저한 원가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검증 인력 부족과 제도 미흡으로 하도급업체까지 원가검증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제한 사항이 많다”며 이를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아웃소싱하면 객관성·투명성 증대”

    방사청이 한 경제연구소에 의뢰해 2011년 9월 발표한 ‘방위사업의 원가업무 아웃소싱 방안연구’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방산업체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검증 범위 확대가 가능하게 되어 그동안 방산업체에서 일방적으로 하도급 납품가를 결정함에 따른 유착 비리를 원천 봉쇄할 수 있으며, 원가 부풀리기 및 원가비리를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방사청은 “원가 절감 효과는 물론 방산원가의 객관성·투명성 증대가 예상되며, 방산원가에 대한 대국민 신뢰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2012년 8월부터 원가업무 아웃소싱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으로 2011년 9월 원가업무 아웃소싱 방안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종합경제연구원을 포함한 2개 기관이 ‘ATS-II 후속함 추진기’ 등 5개 사업에 대해 원가검증을 실시했다. 이후 원가업무 아웃소싱은 2013년 35개 사업, 2014년 60개 사업으로 점차 확대됐다.
    현행 방위사업 원가관리체계 하에서는 원가를 얼마나 높게 평가받느냐가 업체의 이익과 직결된다. 사업 예산에서 기업 이윤율을 일률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와 같이 방사청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업체의 이윤을 철저히 깎고 있는 상황에서는 원가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수익을 내거나 심지어 몇몇 경우 손실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나 다름없다.
    현재까지 방사청으로부터 원가업무 아웃소싱을 받은 업체는 회계법인, 그리고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등으로 등록된 연구원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들 법인 상당수가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업무도 수행한다는 데 있다. 만약 방사청으로부터 특정 사업에 대한 원가업무를 수주해 진행 중인 민간기관이 해당 사업과 연관된 기업에게 동시에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다면 과연 공정한 원가검증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기자의 질의에 방사청 공보장교는 “그렇게 되면 안 될 텐데 (그런 경우를 예방하기 위한) 내용이 있는지는 확인을 안 해봐서 모른다”고 답했다.



    방사청 로고 박힌 명함 쓰는 퇴직자까지

    방사청 출신 퇴직자들이 방사청의 원가업무 용역을 수행하면서 방산업체에 대한 컨설팅도 수행할 경우는 또 어떨까. 실제로 이러한 기관이 존재한다. 한국방위사업연구원(연구원)이 대표적이다. 방사청 인터넷 홈페이지와 비슷한 모양새(심지어 ‘희망의 새 시대’라는 박근혜 정부 캐치프레이즈까지 달고 있다)의 홈페이지(dapi.re.kr)는 연구원이 ‘국방전력 및 방위사업 분야에서 수십 년간 정직하게 근무하였던 최고의 방산 전문가와 관련 분야 학계 및 업체의 고급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대한민국의 튼튼한 국가안보와 자주국방력 건설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임무에 임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연구원은 2013년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현재 등기임원 6명 가운데 4명이 방사청 출신으로 확인됐다. 박원동 이사장은 육사 34기로 국방부 방위감사관 등을 역임하고 소장 예편 후 방사청 한국형헬기(KHP) 사업단장을 맡았다. 최광복 원장은 육사 36기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사령관 비서실장, 합동참모본부 기무부대장, 기무사 보안처장 등을 역임했다. 강모 이사는 방사청 계약관리본부 팀장, 표준관리부장, 방산기술통제관 등을 역임했다. 장모 이사는 육군3사관학교 출신으로 방사청의 전신인 국방조달본부에서부터 방사청 팀장을 거쳐 해외방산업체의 서울지사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전모 이사는 공군 군수관리본부장과 국방부 획득정책관실 등을 거친 예비역 준장이다. 등기에 따르면 연구원은 수익사업으로 ‘방위사업 물자의 원가계산이나 인증, 검증 업무’를 비롯한 각종 용역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그중에는 ‘방위사업 관련업체 컨설팅 업무’도 포함돼 있다.
    방사청이 시범사업 이후 본격적으로 방위사업 원가계산을 민간기관에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것이 2013년 5월이다. 연구원 설립 시점은 같은 해 2월 말. 연구원 등기사항의 설립 목적에서 수익사업으로 가장 먼저 원가계산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방사청이 본격적으로 원가계산을 아웃소싱한 것과 연구원의 설립 시기가 맞물리는 것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연구원은 설립 이후 원가검증 용역과 관련 연구 사업들을 방사청으로부터 수차례 수주했다.




    다른 민간기관의 경우, 원가업무를 수행하는 특정 사업에 연관된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맡을 때만 문제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방사청 출신 퇴직자가 대거 포진하고 있는 곳. 업체들이 사업 진행과 관련해 ‘전관’으로서 방사청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연구원 소속의 한 전문위원은 방사청 현직자가 아님에도 방사청 직원 명함과 동일한 디자인(방사청 로고까지 새겨진)의 명함을 업체 측에 제시한 것이 확인됐다.
    연구원 관계자는 기자의 질의에 “우리는 업체와 방사청의 중간에서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적절한 원가를 찾아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간’이라는 지위가 반대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나쁜 쪽으로만 바라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며 “연구원의 방사청 퇴직자는 대부분 (공무원, 군인)연금을 받고 있어 돈 문제는 없는 사람들이다. 돈보다 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답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원가업무는 방사청의 고유 업무인데 방사청이 인력 부족 등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민간에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사청에서의) 오랜 경력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과거 재직 경험에 따른 ‘영향력’을 이용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면서 “업체들도 원가 산정 방식이 자신들에게 너무 불리하게 돌아가 절박하기 때문에 그런 영향력을 찾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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