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2016.01.13

경제

나라 살림, 저물가에 운다

가계부채 증가, 소비심리 위축, 국내 수입물가 41개월 하락세…실물경제 활력이 관건

  •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limhj9@hri.co.kr

    입력2016-01-11 16: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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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경기 침체와 저인플레이션 현상은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통화정책 이외 다른 요인이 중·장기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쳐 상황을 악화할 가능성이 만만치 않다는 것.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인구고령화, 글로벌화 등 대내외 여건이 변화하는 와중에 저물가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내 물가 동향이나 인플레이션 구조 변화의 배경, 저물가 지속에 따른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먼저 국내 물가의 전반적 동향을 살펴보자. 일단 추세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공급 요인의 기여도가 낮아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시적인 공급 충격의 영향을 제거한 추세 인플레이션은 2000~2007년 평균 3.1%, 2008~2011년 3.1%, 2012~2015년 1.6%로 하락하고 있다. 대표 물가지수인 소비자물가는 2012~2015년 평균 1.4%로 추세 인플레이션을 밑돌고, 특히 공급 요인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2011년 2.3%p에서 2014년 0.1%p로 크게 낮아졌다. 수요 요인의 기여도가 이 기간 0.2%p에서 0.1%p로 하락한 것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크다.
    이러한 최근의 물가상승률은 1990년 이후 다른 경기 둔화 국면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이전의 다른 경기 저점 기간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3.4%, 경제성장률은 평균 2.8%였지만 2014년 4분기부터 2015년 3분기 사이 소비자물가가 평균 0.6% 상승했고 경제성장률은 평균 2.4%였다(그래프1 참조). 그 덕에 최근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물가 안정 목표의 하한선이던 2.5%보다 낮게 유지될 수 있었다.



    달라진 인플레이션 구조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인플레이션 구조 자체가 변화한 것 아니냐는 추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먼저 수요 측면부터 살펴보자.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 폭과 평균소비성향이 2010년 이후 추세적으로 하락하면서 가계소득 기반이 약화됐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은 1990~99년 연평균 3.0%, 2000~2008년 2.3%, 2009~2014년 2.1%로 증가율 폭이 꾸준히 하락했다. 가계 평균소비성향 역시 2010년 77.5% 이후 2014년 72.9%로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가계부채 증가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국내 금리하락으로 이자상환비율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소비여력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주식가격이 정체되고 시가총액에서 내국인이 보유하는 비중 역시 꾸준히 하락하고 있어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주식가격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1년 2200선에 근접했지만, 2015년 현재 2000선 내외에 머물고 있다. 시가총액의 내국인 보유 비중은 2008년 71.3%에서 2014년 65.9%로 떨어졌다.
    공급 측면에서도 징후는 심상치 않다. 일단 국내 물가상승률이 선진국 평균 수준과 비슷하게 움직였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물가상승률은 금융위기 이후 오름세가 낮아졌고, 특히 2012년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상승률이 더욱 떨어졌다. 2010~2015년만 놓고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선진국 1.6%, 한국 2.2% 수준이다. 여기에 대형 유통기관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고 전자상거래가 증가하면서 유통 단계가 축소된 것이 국내 시장에서 경쟁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식료품과 교통 가격이 하락하면서 최근 2년간 전체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2013~2014년 소비자물가는 평균 1.3% 올랐지만 식료품과 교통 물가는 각각 0.6%, -1.1% 상승률을 기록했을 뿐이다. 여기에 국제원유 가격 안정과 하락이 겹치면서 국내 수입물가가 떨어졌고, 이 역시 소비자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2015년 말 현재 상반기 말 대비 59.8% 하락한 상태로, 그에 따라 국내 수입물가는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2012년 6월부터 2015년 말까지 41개월 동안이나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험은 그나마 감소

    상황이 이쯤 되면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염려해야 한다는 그간의 우려가 현실화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만도 하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최근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위험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는 1990년대 ‘매우 낮음’ 수준을 유지하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점차 높아지긴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보통’(0.3 이상~0.5 미만)에서 ‘낮음’(0.2 이상~0.3 미만)으로 하락하는 상황이다. 2015년 1분기의 경우 디플레이션 발생 위험이 ‘보통’에 해당하는 0.36으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지만, 2015년 3분기 현재 ‘낮음’인 0.27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다른 구조적 요인이다. 미국의 셰일오일 및 원유 수출 재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원유 공급량 확대, 중국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원유 수입량 감소 등으로 저유가가 지속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흔히 국제유가가 10% 변동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총 0.50%p 변동(2010년 산업연관표 기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그래프2 참조). 이러한 상관관계를 고려하면  향후 국내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물가상승률은 낮은 수준을 지속할 공산이 크다.
    이처럼 국제유가가 낮은 수준에서 장기간 지속된다면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원유 수출국의 경기 부진이 계속돼 세계 실물경기 회복세도 제한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정유 및 화학, 조선 부문의 수출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경제에서 저유가는 결코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물론 장바구니 물가는 떨어질 수 있겠지만, 반대로 자산가격 하락과 채무 부담 증가, 가계소비 부진, 기업 투자 위축 등이 이어져 실물경제 전체의 활력을 제약하는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가 제한적으로 상승할 수 있지만, 이제 장기적으로는 저물가-저성장 체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이러한 흐름이 생산성 둔화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진다면 저성장 기조는 고착화할 공산이 크다. 유망 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작업이 급선무인 이유다. 국제유가 하락과 원화절상에 따른 제조업 기반 약화 우려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인 성장둔화 가능성에 대응해 정책당국이 완화적 금융정책이나 해외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국내 경기 성장세를 제고하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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