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4

2021.11.12

‘박원순 대못’ 뽑는 오세훈, ‘철의 카르텔’ 깬다

[이종훈의 政說] “그들만의 리그 바로잡아야” vs “개인 셈법 따른 정치 행보”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1-11-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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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 [지호영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지호영 기자]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후보를 결정하면서 대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포연 가득한 전쟁터는 한 곳 더 있다. 바로 서울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오 시장은 9월 13일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금액이 무려 1조 원 가까이 된다”며 “더욱 놀라운 것은 시민단체 지원이 소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운영됐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임기제 공무원으로 서울시 도처에 포진해 위탁업체 선정부터 지도·감독까지 관련 사업 전반을 관장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시민단체 예산 46.5% 삭감

    오 시장은 민간보조와 민간위탁사업에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11월 1일 시민단체 지원 사업 예산을 1788억 원에서 832억 원(46.5%) 삭감한 내용이 담긴 2022년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한 이유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김인호 시의회 의장은 이날 정례회 개회사에서 “혈세 낭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면서도 오 시장의 행보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순수한 정책 행보여야지, 개인 셈법에서 나온 정치 행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

    김 의장은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정책 변화는 대범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전체적인 안정성과 연속성은 유지돼야 한다. 무턱대고 이전의 모든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지도자의 말 한마디면 기존 정책을 무조건 뒤집을 수 있다는 발상은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시의회 110석 중 99석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독점 상태다. 시의회 민주당도 11월 1일 정례회에서 성명을 내놨다. 시의회 민주당 송명화 대변인은 “명확한 근거나 공정한 조사·검토 없이 무분별한 비판으로 전임시장 성과 지우기와 프레임 씌우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한다”면서 “시의회 민주당은 시대를 퇴행하는 관치행정, 시민과 언론을 향한 권위주의 망령의 칼춤을 당장 멈출 것을 서울시 측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을 향한 반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조은희 서초구청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초구를 제외한 24명 구청장이 민주당 소속이다. 이들은 서울시구청장협의회(협의회)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 오 시장을 비판했다. 협의회는 11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서울시의 시대착오적인 결정에 맞서 참여 민주주의 정신과 협치의 정신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서울시는 이제라도 상생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의회에 치이고 구청장들에 받히는 고립무원 지경에서 오 시장은 시민단체 지원 사업 예산 삭감을 관철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헤쳐 나가야 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박아둔 대못도 뽑아야 한다. 오 시장은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문 발표 사흘 뒤인 9월 16일 ‘서울시 바로세우기 가로막는 대못’이라는 입장문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오 시장은 “박원순 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들이 있는데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도록 조례, 지침, 협약서 등 다양한 형태로 시민단체에 대한 보호막을 겹겹이 쳐놓았다”며 세 가지 규정을 예로 들었다. 첫째, 종합 성과 평가를 받은 기관은 같은 해 특정 감사를 유예받도록 한 규정이다. 둘째, 수탁기관이 바뀌어도 인력의 80% 이상을 고용 승계하도록 한 규정이다. 셋째,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하도록 한 규정이다.

    한마디로 시민단체들의 철의 카르텔이 가능한 구조다. 오 시장은 이에 대해 “서울시 220여 개 위원회에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수탁기관을 선정하는 적격자 심의위원회는 물론이고, 보조금 단체를 선정하는 위원회까지 시민단체 출신들이 자리 잡았다. 자기 편, 자기 식구를 챙기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겨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의 왜곡된 순수성

    박 전 시장은 왜 이런 구조를 만들었을까. 대권 욕심 때문일 수 있다. 박 전 시장은 참여연대를 만들고 이끈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그에게 시민단체는 최대 지지기반이다. 그들을 서울시정에 참여케 하는 방식으로 본인의 지지기반을 탄탄하게 만들려 했던 것으로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시민단체의 참여는 긍정적 측면도 많지만 예산을 주고받는 관계로 엮이기 시작하는 순간 시민단체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설령 예산 지원을 받더라도 매칭펀드, 곧 시민단체가 절반 이상 시민모금을 하고 나머지 절반 이하를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받는 수준에 그쳐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오 시장의 노력은 시정 정상화를 위한 측면이 강하다.

    서울시에서 벌어지는 일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당선할 경우 겪을 상황들이다. 먼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합리적인 정상화 노력마저 권위주의 또는 독재라며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촘촘히 박아둔 대못을 뽑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가 하명하고 민주당이 청부입법으로 처리한 이른바 개혁입법 말이다. 국민의힘 관점에서 진짜 격렬한 전투는 대선 승리 이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더 가열하게 대못을 박아나갈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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