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4

2021.06.18

美·中, 이번엔 글로벌 인프라 맞대결

G7, ‘더 나은 세계 재건’으로 ‘일대일로’ 맞불… 경제협력 이면 군사거점 확보 속셈 의심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1-06-2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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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7 정상들이 6월 11~13일 열린 정상회의에서 중국 견제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백악관 트위터]

    G7 정상들이 6월 11~13일 열린 정상회의에서 중국 견제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백악관 트위터]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몬테네그로 정부는 2014년 아드리아해와 이웃 국가 세르비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중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건설비용의 85%인 10억 달러(약 1조1177억 원)를 빌렸다. 이후 중국 회사가 고속도로 건설을 맡았지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현재 중단된 상태다. 몬테네그로는 인구 62만여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기준 49억 달러(약 5조4767억 원)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다. 7월까지 채무 10억 달러를 갚지 못해 디폴트(국가부도)를 선언할 경우 담보로 잡힌 국가 자산을 중국에 넘겨야 한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할 수 없이 유럽연합(EU)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몬테네그로 정부의 ‘SOS’를 거절하려던 EU는 중국 정부가 스리랑카나 파키스탄 사례처럼 항구 운영권을 확보할 것을 우려해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빌려 항구를 개발하려다 빚만 지게 되자 채무 탕감을 조건으로 99년간 항구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중국 국영건설사들에 넘겼다. 중국 국영건설사들은 스리랑카 함반토타항과 파키스탄 과다르항 개발 사업을 인수해 군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9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 등 각국 정상들이 일대일로 회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

    2019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 등 각국 정상들이 일대일로 회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

    ‘부채 함정’에 빠지는 ‘차이나 스탠더드’

    몬테네그로에는 현재는 못 쓰게 된 옛 유고슬라비아 해군기지들이 있다. EU가 자금 지원 결정을 내린 것은 중국이 몬테네그로 항구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발칸반도를 중국에 내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몬테네그로의 경우처럼 개발도상국(개도국)이나 저개발국의 도로, 철도, 항만 건설에 대규모 차관을 지원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시작된 일대일로는 육상으로는 중국 서북지역~중앙아시아~유라시아 대륙과 유럽을, 해상으로는 중국 동·남해~동남아~인도양~중동과 아프리카를 각각 연결하는 무역로와 항구 등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중국 정부는 개도국과 저개발국에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경제뿐 아니라 외교와 군사, 문화 분야 등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실제로 개도국과 저개발국은 열악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140개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력문서에 서명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 조사 결과 지난해 중반 기준으로 항만, 고속도로, 원전, 5G(5세대) 등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인프라 사업은 2600개가 넘으며 금액으로 치면 3조7000억 달러(약 4136조 원)에 달한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됐지만, 중국 정부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과 차관 계약을 맺으면서 철저하게 ‘차이나 스탠더드(China Standard)’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중국산 기자재를 쓰고, 중국 업체가 공사를 맡으며,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투명성 확보와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선진국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차관을 빌리기 어려운 나라들은 이 같은 불리한 조건에도 중국의 달콤한 ‘유혹’(차관)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들로부터 석유 등 각종 에너지와 광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는 경제협력을 통해 중화경제권을 구축하고 세계 유일 초강국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왔다.



    하지만 인프라 사업 추진으로 경제발전을 기대하던 개도국과 저개발국 상당수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자금을 다시 가져가고 자신들은 ‘부채 함정(debt-trap)’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파키스탄, 탄자니아, 앙골라, 케냐, 에티오피아, 몰디브, 라오스는 앞서 디폴트를 선언한 잠비아나 국가 부도 직전 상태인 몬테네그로처럼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부채 함정에 빠져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싱크탱크인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에 대출해준 금액을 3800억 달러(약 424조6800억 원), 미국 워싱턴 소재 컨설팅업체 RWR는 4610억 달러(약 515조2000억 원)라고 각각 추정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은 중국 정부가 대규모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들에 채무 탕감을 미끼로 군사거점을 확보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의심해왔다.

    중국 건설회사가 몬테네그로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CDM]

    중국 건설회사가 몬테네그로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CDM]

    G7, 미국 추진 反中 연합 전선 구축에 동의

    G7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새로운 글로벌 인프라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G7 정상들은 6월 11~13일 영국 콘월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인프라 이니셔티브인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 출범에 합의했다. G7 차원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응책을 제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B3W는 G7을 비롯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가치를 따르며, 투명한 파트너십”이라면서 “전 세계 저소득국과 중소득국을 모두 포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B3W는 국제적, 국가별 개발금융기구뿐 아니라, 민간 분야도 참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화한 국가의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G7 회원국은 물론,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 더욱 강력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조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미국과 세계의 많은 파트너 국가, 우방국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오랫동안 회의적이었다”면서 “중국 정부는 투명성이 부족하고 환경과 노동 기준이 빈약하며 많은 나라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접근법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 관리는 “B3W는 우리 공통의 가치를 반영하는 고품질의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일대일로를 억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3W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코로나19 팬데믹 극복과 경기 회복, 인종차별 등 미국 내 갈등 해소를 위해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내건 슬로건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에서 차용한 것이다. G7이 당초 구상했던 ‘클린 그린 이니셔티브(Clean Green Initiative)’ 대신 B3W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미국이 추진하는 반중(反中) 연합 전선 구축에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가 대화할 때 이 용어 사용을 논의했다”면서 해당 슬로건을 전 세계로 확대한 의도를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 5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미국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가 절실하다”며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는 중국을 대신할 높은 수준의 대체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B3W는 2035년까지 개도국과 저개발국에 40조 달러(약 4경4720조 원) 규모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40조 달러는 세계은행이 추정한 같은 기간 개도국과 저소득국의 인프라 수요와 동일한 금액이다.

    다만 G7을 비롯해 각국이 B3W에서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전망도 나온다. 각국마다 중국을 견제하는 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은 자동차 등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이미 동참한 상황이다. 양시위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각국은 그 나름의 계산과 국익이 있다”며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 G7이 B3W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中 “일대일로는 혜민(惠民)의 떡” 반박

    중국 정부는 G7의 반격에 맞서 앞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재정 상황이 악화된 아프리카 각국의 채무를 면제해주고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약속하는 등 구애 작전을 벌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코발트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을 방문해 채무 면제를 약속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기차, 스마트폰, 노트북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배터리 소재인 코발트의 세계 최대 생산지다. 중국은 매년 코발트 9만5000t을 사들이는 세계 최대 수입국이다.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도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에 빠진 스리랑카를 방문해 6억 위안(약 1040억 원) 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력을 비롯해 우호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는 각국 국민을 위한 혜민(惠民)의 떡”이라면서 서방 국가들의 ‘부채 함정’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반박하는 한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려는 국가들에 보복 조치를 언급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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