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9

2021.03.05

서민의 野說

가덕도 신공항? 이 나라가 망한다면 보궐선거 때문

미리 써본 소설 ‘보궐선거의 나라’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naver.com

    입력2021-03-0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운데 이낙연 대표)와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동아DB]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운데 이낙연 대표)와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동아DB]

    2025년 3월, 마달피 대전시장이 가던 길을 멈췄다. “갑자기 사퇴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건강상 이유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실소가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자랑하던 그가 시장직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믿기 힘들어서다. 분위기를 의식한 듯 마달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속은 많이 망가졌어요.” 자신의 답변이 만족스러운 듯 다시 발을 내디디려는 찰나,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2021년 일 때문 아니세요.” “무, 무슨 말씀입니까. 전 그런 것 모릅니다.” 하지만 사퇴 선언문을 읽을 때는 물론이고, 청사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조차 차분하던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2020년 초,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행을 저질러 사퇴했다. 희한하게도 같은 해 7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으로 고소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기가 2년 남짓 남아 있기에 두 곳 모두 보궐선거를 치러야 했는데, 그 시기가 미묘했다.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4월 첫 번째 수요일에 치른다’는 규정상 보궐선거 날짜는 2021년 4월 첫째 주 수요일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 후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인 대선이 있었다. 오 전 시장과 박 전 시장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기에 여당 입장에서는 둘 중 한 곳만 내주더라도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필 서울과 부산은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 1, 2위 대도시. 그해 보궐선거는 향후 치를 대선의 전초전이나 다름없었다. 레임덕도 없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던 여당이 서울·부산시장 자리까지 접수한다면 대선도 보나 마나 한 상황. 반면 야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를 모두 석권한다면 정권의 폭정에 질식할 것 같은 이들이 ‘혹시나’ 하며 대선에 기대를 품을 수 있는 노릇이었다.


    대선 노림수로 꺼내 든 가덕도 신공항 카드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동아DB]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동아DB]

    당시 지리멸렬하다는 평가를 받긴 했으나 야당 역시 보궐선거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들은 일찌감치 야권 단일후보를 내 선거에 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권 측에선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야 어찌어찌해서 이긴다 하더라도, 부산시장 선거에선 야당 후보가 오차범위 밖 1위를 달리며 독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여당은 ‘부산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덕도 신공항은 우리나라 정치의 질곡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기한 동남권 신공항 이슈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밀양과 가덕도 두 곳으로 압축됐고, 국토교토부(국토부)가 예비타당성 검사를 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공항을 짓기에는 결격 사유가 많아 2011년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는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했다. 이것을 가덕도 신공항의 ‘1차 죽음’이라고 부르자. 



    신공항이 주는 부대 효과는 매우 크다. 먼 인천 영종도까지 가지 않아도 집 근처 공항을 이용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공항이 들어서면 주변 인프라 확충으로 건설 경기가 활성화돼 인근 땅값도 껑충 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산 시민은 누구라도 가덕도에 공항을 지어준다고 약속하면 적극적으로 표를 던질 마음이었다. 한 번 죽었던 가덕도 신공항이 선거 때마다 되살아난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표심만 이용할 뿐, 진짜로 공항을 지을 마음은 없었다. 영종도와 달리 수심이 깊은 가덕도는 공항을 짓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토부를 이용했던 것처럼, 동남권 신공항을 대선공약으로 들고 나왔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막상 당선되고 나자 외부에서 심사를 받는 형식으로 자신의 약속을 파기했다. 당시 조사를 실시한 곳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얼핏 듣기에도 매우 ‘첨단스러워’ 보이는 이 기관은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돈을 용역비로 받아갔다. 2016년 그들은 밀양과 가덕도 모두 공항을 짓기에 부적격하다는, 국토부 조사와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가덕도 신공항의 2차 죽음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18년 부산시장 선거에 나선 오거돈 후보가 불리한 형세를 뒤엎고자 가덕도를 소생시켰다. 물론 오거돈 역시 진짜로 공항을 지을 생각은 없었다. 선거가 끝나고 난 뒤 가덕도는 다시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가덕도 공항의 3차 죽음이다. 

    물론 이것을 ‘영원한 죽음’이라고 여긴 이는 없을 것이다. 오거돈의 성추행은 가덕도 공항의 부활을 앞당겼다. ‘뭐 어때. 이번에도 선거 때 이용하고 버리면 되지.’ 현 정권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가덕도 공항을 약속해도 표심은 생각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28조 원 건설 비용은 ‘애교’

    결국 집권층은 임기 1년짜리인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이기기 위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혹시나 문제될까 싶어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건너뛴 덕에, 미루고 미루던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결국 2021년 4월 8일 위대한 첫 삽을 뜬다. 오거돈 전 시장은 성추행으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가덕도 문제는 그 뒤 드러났다. 국토부가 예상한 28조 원의 건설 비용은 애교였다. 2025년 3월까지 40조 원 넘게 쏟아붓고도 가덕도 공항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래도 가덕도 공항은 실패가 아니었다. 40조 원이 들어간 덕분에 부산지역 경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맞았다. 가덕도 공항이 다른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준 교훈은 ‘임기를 다 마치는 대신 2~3년쯤 지난 뒤 사퇴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규모가 작은 지자체는 어렵지만, 웬만큼 인구가 되는 지자체는 이런 ‘땡깡’이 얼마든 가능했다. 

    임기를 앞두고 사퇴한 마달피 때문에 정권은 대전에 국제공항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인천은 미국 디즈니랜드 2배 규모의 놀이공원을 얻어냈다. 마달피에 이어 경기도지사가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경기도는 자기 지역의 모든 도로를 지하화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한단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보궐선거의 나라가 됐다. 마달피의 사퇴 선언을 본 한 기자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나라가 망한다면 그건 아마 보궐선거 때문일 거야.”

    서민은… 제도권 밖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입담으로 풀어낸다. 1967년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기생충학).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저서로는 ‘서민독서’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