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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둘러싼 분열 극복될 것… 내 나라 망가지게 둘 국민 아냐”

형사 정의로 세계 평화 이끈 송상현 前 국제형사재판소장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검찰개혁 둘러싼 분열 극복될 것… 내 나라 망가지게 둘 국민 아냐”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지호영 기자]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지호영 기자]

독립운동가의 후손, 서울대 법대 교수, 국제형사재판소장. 이 세 가지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일평생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송상현(80·사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에게 숙명이 된다. 그가 최근 펴낸 회고록 제목이 ‘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회고록을 읽다 보면 한 개인의 삶이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이토록 궤를 같이할 수 있을까 싶다. 

그는 1941년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인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 선생의 손자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는 일제강점기 교육자·언론인·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갖은 탄압에도 국내에서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고하는 서거 후에도 송 전 소장과 그의 아버지에게 ‘고하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삶의 지표가 될 만큼 큰 존재였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송 전 소장은 1962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듬해 고등고시 사법과에도 합격하지만 군수 발령과 판검사 임용을 마다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0년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2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돼 35년간 재직하면서 한국 법학 발전과 후학 양성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도 정부에 출사하라는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역시 거절했다. 

2003년부터 12년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및 소장으로 일한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정의 구현의 정점이 된다. 2002년 창설된 국제형사재판소는 유엔과는 독립된 기관으로 전쟁이나 침략,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지도자와 독재자를 수사, 처벌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국제 사법기구다. 송 전 소장은 “기존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집단 안전보장 체제에 국제형사재판소가 더해지면서 세계 평화를 위한 메커니즘이 완성됐다”고 말한다.


법은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 [지호영 기자]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 [지호영 기자]

국제형사재판소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전에는 유엔이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국제기구였어요. 나라 간 영토 분쟁이 생기면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조정하고, 전쟁이나 침략행위, 집단학살 등이 일어나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의결해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군대를 투입해 해결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정작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도피해 호위호식하며 살아가니 정의가 완전히 실현된 것이 아니었죠. 국제형사재판소는 그런 범죄자를 단죄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기관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응보적 정의에서 더 나아가 전쟁이나 범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구제, 지원하는 회복적·치유적 정의도 실현하고 있습니다.” 



법과 정의는 어떤 관계입니까. 

“정의(正義)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형사적 정의는 죄지은 사람을 처벌하고 아닌 사람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겁니다. 사회적 혹은 배분적 정의는 부익부 빈익빈 심화를 막고 공정한 배분이 이뤄지게 하는 거고요. 법은 이 두 가지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한국 사회가 정의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의롭다? 아니죠. 공정하냐? 아니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했으나 실제로는 잘 안 됐죠.” 

사법개혁,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수사, 기소, 처벌 등 형사 절차를 총괄하는 책임과 의무를 검찰에 부여하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 권한 남용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논란이 어느 정도는 사실일 거고요. 그래서 그 일부 권한을 경찰에 주자, 경찰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주자 이렇게 발전한 건데, 문제는 그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 혼란만 야기되고 소모전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은 정치권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겁니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치유될까요. 

“우리나라만큼 기초가 튼튼한 나라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만큼 내 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도 없고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할 때 당시 국가 부도 직전이던 그리스 출신 직원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외환위기 때 우리 국민이 벌인 금 모으기 운동을 얘기해줬더니 ‘한국인은 정신이 나갔느냐’고 되묻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국민이 별로 없습니다. 어느 사회나 분열과 갈등은 있습니다. 지금 이 혼란은 지도력 있는 개인, 단체, 집단 누구라도 등장하면 바로 수습될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법개혁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 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당시 저는 학계 대표로, 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저는 로스쿨 도입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는데 관련 지식을 가진 이가 저밖에 없다 보니 논의가 지지부진해 문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면담 주선을 요청했죠. 그 뒤 이뤄진 대통령과 면담에 문 비서실장이 배석했고요. 법조인으로서 문 대통령은 생각이 반듯한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자리는 다르겠죠. 문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


전 세계 모금 3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2015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끝으로 모든 직을 내려놓은 그가 현재 유일하게 맡은 일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직이다. 한국이 모금액 기준으로 전 세계 3위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공식적으로는 미국, 일본, 한국 순이지만 인구가 각각 3억3000만 명, 1억3000만 명, 5000만 명인 나라를 어떻게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늘 우리가 1등이라고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가 많은데 왜 굳이 외국 아이들을 돕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6·25전쟁 때 유니세프의 도움이 없었다면 많은 아이가 굶어죽었을 겁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되갚아야 하는 거고요. 무엇보다 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건 개인 후원자가 42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입니다.” 

그의 회고록 서문은 ‘회고록을 쓰지 않으려 했다’로 시작한다. 평소 유명 인사들이 남긴 회고록이 자기 합리화나 업적 과시, 자랑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그러다 ‘평생 써온 일기와 근무 비망록이 이 나라를 걱정하거나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꿈을 가진 후학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됐다. 

“처음에는 3000쪽 분량이 나와 그걸 1000쪽 분량으로 줄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저 개인의 삶은 물론, 일본 법 의존을 극복하고 새로운 법 강의를 개척하고자 애썼던 시간, 국제 형사 정의를 통해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던 노력 등을 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불안해하고 절망스러워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 많이 안타깝지만, 이 시기는 곧 지나갈 겁니다. 내 나라가 망가지게 둘 국민이 아니니까요.”





주간동아 1275호 (p24~26)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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