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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402km 슈퍼 전기차, 빠른 가속력이 매력

  •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시속 402km 슈퍼 전기차, 빠른 가속력이 매력

‘어느 차가 더 빠르냐’를 두고 인류가 논의한 시간은 100년이 넘는다.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 과학적으로 설계된 오늘날의 서킷 레이스와는 다르다. 당시에는 자동차를 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게 대단한 일이었고, 얼마나 빨리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느냐가 화두였다. 속도를 즐기며 다른 도시로 빠르게 이동하는 문화는 오늘날 ‘그란 투리스모’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줄여서 GT로 불리며, 장거리 공도주행에 맞춰 개발된 스포츠카를 뜻한다.

스포츠카 역할 넘보는 전기차

페라리의 첫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SF90 스트라달레. [페라리 제공]

페라리의 첫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SF90 스트라달레. [페라리 제공]

스포츠카의 정의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자동차 제조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범주에서 보자면 고속 주행을 목적으로 개발된 승용차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들은 스포츠카를 따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포티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쿠페처럼 지붕 선을 낮게 설계하기도 하고, 역동적인 주행 감각에 맞춰 서스펜션과 핸들을 설정하기도 한다. 세단처럼 보이지만 주행 성능이 스포츠카 수준인 경우도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포츠카로 불리는 차는 다분히 스포티한 영역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들이다. 생김새를 보면 공기역학을 고려해 고속 주행 시 발생하는 다운포스를 활용한 디자인이 포인트다. 엔진은 가볍다 해도, 출력과 토크가 일반 차량보다 강하고 변속기는 엔진 출력을 재빨리 인식하고 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정확한 제동 능력과 우수한 접지력도 갖춰야 한다. 실내 공간 역시 편안함보다 중력 가속도에 밀려나지 않도록 운전자의 몸을 단단하게 유지해주는 버킷 시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 스포츠카는 이동수단으로서 편리함도 빼놓을 수 없다. 뒷좌석을 마련하기도 하고, 짐을 실을 적재공간도 필요하며, 기름을 덜 쓰는 효율성도 중요하다. 공기역학을 고려한다 해도 시내의 무수한 과속방지턱에 맞춰 차체를 지상에서 높이 띄워야 한다. 때로는 안락함이 요구돼 값비싼 천연가죽으로 실내를 장식하기도 한다. 

슈퍼카는 다르다.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굽이진 길이든, 직선 길이든, 고저 차이가 나는 길이든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엔진을 운전석 뒤에 싣기도 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가기도 어려울 듯한 낮은 차체는 서킷 외에선 주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엔진은 연비 효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크고 시끄러운 것을 넣는다. 6기통 이상의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 엔진은 슈퍼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카에 엔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작고 가벼운 슈퍼 전기차

국내 출시 예정인 전기차 포르셰 타이칸 터보 S. [포르셰 제공]

국내 출시 예정인 전기차 포르셰 타이칸 터보 S. [포르셰 제공]

엔진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모터를 장착한 슈퍼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차들은 슈퍼 전기차라고 부를 수 있다. 더 강한 동력을 발휘하기 위해 큰 배터리를 사용하고, 모터도 하나가 아닌 2개 내지는 3개를 쓰기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양산형 소형 전기차와는 질감이 사뭇 다르다. 

전기차는 목적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효율성에 중점을 둔 소형 전기차는 시내 주행이 주목적인 만큼 50kWh 내외의 가벼운 배터리를 사용해 긴 주행 거리를 제공한다. 80kWh 이상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메르세데스-벤츠 EQC나 재규어 I-페이스 같은 전기차는 럭셔리한 감성에 치중한다. 통풍 시트, 커다란 디스플레이 등 각종 첨단 편의장치가 많다. 동시에 주행 퍼포먼스도 뛰어나다. 전력이 필요한 곳이 많으니 배터리 용량은 크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그 대신 전기차의 매끄러운 주행 감각과 빠른 가속력을 갖춰 알뜰한 전기차에서는 맛보지 못한 재미를 준다. 일반 고속도로에서는 물론이고, 가파른 언덕도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올라가는 힘이 매력이다. 슈퍼 전기차도 큰 배터리를 사용한다. 국내에 출시될 순수전기차인 포르셰 타이칸 터보 S 모델의 경우 93.4kWh 배터리를 장착했다. 올해 하반기에 나올 테슬라 로드스터의 경우 200kWh 배터리를 장착하기도 했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테슬라 로드스터. [테슬라 제공]

하반기 출시 예정인 테슬라 로드스터. [테슬라 제공]

크기는 작은데 왜 더 큰 배터리가 필요할까. 슈퍼카는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에 비하면 크기가 작다. 좌석도 적어 승차 인원이 적고, 짐 실을 곳이 없으니 무게가 늘 가벼운 상태로 유지된다.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슈퍼카의 특성상 경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슈퍼 전기차는 크기가 작고 가벼운 차량이다. 그런데도 더 큰 배터리를 장착하는 이유는 고속 주행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르셰 타이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차는 정지 상태에서 60마일까지 2.6초 만에 도달한다. 전기차이기에 소음과 진동이 확연히 적어 마치 공중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연기관에 익숙한 운전자는 이질감이 들 정도다. 물론 어색해하는 운전자를 위해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와 같은 기능이 엔진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들려준다. 그 외에도 토크 벡터링, 에어 서스펜션을 비롯해 주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그것에 맞춰 차체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 등 고속 주행 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장치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큰 배터리의 역할은 더 있다. 슈퍼카의 경우 배터리를 잘게 나눠 차량 하부에 넓게 배치한다. 이를 통해 차량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별도의 장비를 설치하지 않고도 차량을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이제 더는 모터를 탑재한 슈퍼카를 보는 게 낯설지 않다. 페라리는 지난해 최초로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했다. 8기통 터보엔진이 동력을 이끌고, 전기모터가 이를 보조하는 방식이다. 780마력의 엔진과 220마력의 전기모터가 결합해 총 1000마력을 발휘한다. 이 차에 탑재된 전기모터는 총 3개다. 1개는 변속기 사이, 2개는 프런트 액슬에 위치해 정지 상태에서 힘을 효율적으로 끌어올린다. 이처럼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전기모터는 주로 저속에서 많이 쓰인다. 그 이유는 반응이 빠르기 때문이다. 엔진을 통한 동력 전달보다 배터리의 전력 전달이 더 빠르기에 전기모터는 신속하게 힘을 발휘하고, 빠른 가속력을 구현한다. 

빠른 가속력은 슈퍼 전기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자동차 퍼포먼스가 두드러지는 곳은 직선 주로가 아닌, 굽이진 회전 구간일 것이다. 급제동과 빠른 가속, 정밀한 조향, 차체 균형 등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전기차가 지닌 낮은 무게중심과 빠른 가속력이라는 태생적 특징은 레이싱 스포츠에 최적화된 형태다. 따라서 슈퍼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페라리와 포르셰 외에도 새로운 회사들의 등장도 눈에 띈다. 테슬라는 정지 상태에서 60마일까지 단 1.9초 만에 도달하고 최고 402km/h 속도로 달리는, 그야말로 세상에 없던 전기차 로드스터를 내놨다. 다른 슈퍼 전기차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2억 원 중반대 가격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슈퍼 전기차 아스파크 아울과 리막 C TWO. [아스파크, 리막 제공]

슈퍼 전기차 아스파크 아울과 리막 C TWO. [아스파크, 리막 제공]

일본 아스파크는 전기차 시대에 탄생한 신생기업이다. 이들이 만든 슈퍼 전기차 아스파크 아울은 전기모터 4개를 탑재했다. 정지 상태에서 60마일까지 1.69초 만에 도달하며, 1회 충전 시 450km를 주행하는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한다. 크로아티아의 전기차 회사 리막 역시 신생기업이지만 애스턴마틴과 협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리막 C TWO는 120kWh 배터를 탑재해 정지 상태에서 60마일까지 1.85초 만에 도달한다. 1회 충전 시 649km를 주행하는 효율성도 갖췄다. 기존 내연기관 슈퍼카들의 성능을 뛰어넘는 슈퍼 전기차의 등장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자동차 레이싱 문화에서도 그 변화가 포착된다.

슈퍼 전기차의 미래

세계적인 전기차 레이싱 대회 포뮬러 E의 모델인 방탄소년단(BTS). [포뮬러 E 제공]

세계적인 전기차 레이싱 대회 포뮬러 E의 모델인 방탄소년단(BTS). [포뮬러 E 제공]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지만 5월 국내 개최가 예정됐던 모터스포츠 ‘ABB FIA 포뮬러 E 챔피언십 서울 E-Prix 2020’는 전기차 레이싱이다. 포뮬러1의 전기차 버전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그동안 포뮬러1은 소음 공해와 온실가스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는데, 모터스포츠 특성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를 위해 등장한 것이 전기모터를 탑재한 포뮬러 E, E-Prix(프리)다. 

2014년 시작돼 여섯 번째 시즌을 맞는 E-Prix는 슈퍼 전기차의 발전을 내다보기 좋은 예다. E-Prix의 레이스는 1시간을 넘지 않는다. 연습주행의 경우 45분과 30분으로 나눠 진행됐다. 전기차 특성상 1시간 이상 달릴 수 있는 에너지 효율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용량의 배터리가 등장하면서 이와 같은 문제가 해결됐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필요 없게 됐다. 전기차가 포뮬러1만큼 달릴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던 브랜드들도 점차 포뮬러 E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르노, 재규어, 아우디 등 기존 모터스포츠계 강자는 물론, 새로운 브랜드도 속속 참여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보다 제작이 수월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도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모터스포츠라는 점이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그동안 슈퍼카는 소음을 발생시키고, 낮은 연비 효율과 대기 오염도 문제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점차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맞춰 슈퍼카도 변화가 필요했다. 슈퍼 전기차는 그 대안이다. 배기가스나 소음, 이산화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로우며, 그와 동시에 빠르고 정밀한 가속력을 발휘해 기존 슈퍼카가 아쉽지 않은 성능을 발휘한다. 전기모터를 장착한 슈퍼 전기차들이 기존 슈퍼카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간동아 1253호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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