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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미국 질주 위해 풀어야 할 숙제

美 소송 최종 판결 앞두고 LG화학 “합리적 수준이면 합의 가능” vs SK이노베이션 “협상금 산정 어려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K-배터리, 미국 질주 위해 풀어야 할 숙제

충북 오창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LG화학]

충북 오창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LG화학]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자동차(전기차)는 약 220만 대. 2025년에는 전기차 판매량이 1200만 대에 육박하리라는 것이 업계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기차의 엔진 역할을 하는 배터리 시장 규모 역시 18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같은 기간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170조 원)를 웃도는 수치다. 전기차 배터리가 ‘미래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순위에서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1위를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각각 4, 6위에 이름을 올려 세계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8월 3일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중국(CATL)과 일본(파나소닉) 경쟁사들의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이 감소한 반면, 국내 3사는 모두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3사의 세계시장 점유율 합계는 34.5%로 지난해 같은 기간(15.7%)보다 약 2배 증가했다.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누적 점유율 24.6%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누적 사용량은 10.5GWh(기가와트시)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2.8% 늘어났다. 테슬라 모델3(중국산), 르노 조에, 아우디 e-트론 EV, 포르쉐 타이칸 EV 등의 판매 호조에 따른 결과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개발에 착수한 지 20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최근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강조하며 배터리 산업 육성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 뉴딜’의 핵심이 바로 친환경 전기차이고, 전기차의 주요 기술이 배터리인 만큼 친환경 모빌리티 강국을 실현하려면 국내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국내 배터리업체 리더를 차례로 만나 협력을 강조한 것 역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ITC, SK에 ‘조기 패소’ 결정

하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서 K-배터리가 쾌속 질주를 하려면 먼저 중요한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전이 그것이다. 지난해 4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핵심 인력 76명을 빼가고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에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위반했다’며 우리나라 경찰에도 고소했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과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냈고, 지난해 8월에는 ‘LG화학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LG화학은 지난해 9월 똑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맞소송을 걸었다. 

국내외에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유리한 고지를 점한 쪽은 LG화학이다. 올해 2월 ITC가 영업비밀 침해 소송 예비 결정을 통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판정을 내렸기 때문. ITC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된 ‘조기 패소 판결문’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의 LG화학 영업비밀 침해 행위는 전사적으로 이뤄졌고 △범행 의도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소송 증거들을 인멸했으며 △사실관계 자료 확보를 방해해 LG화학에 피해를 끼친 것이 명백하다’고 명시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월 ITC 조기 패소 결정 이후 곧바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해당 혐의에 대한 소명에 나섰다. ITC는 이를 받아들여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ITC의 최종 결정은 10월 5일 나올 예정이다. ITC가 예비결정과 같은 최종 판결을 내린다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 및 소재는 미국 내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사실상 전기차 배터리의 미국 내 공급이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충남 서산시 SK이노베이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 내부. [사진제공·SK]

충남 서산시 SK이노베이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 내부. [사진제공·SK]

지금까지 ITC 예비결정이 뒤집힌 경우는 거의 없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ITC 통계자료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관련 소송의 경우 ITC 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 ITC위원회의 최종 결정에서 그대로 유지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소송도 LG화학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양사 간 합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아직 양측이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할 경우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해가 클 수 있는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까지 ITC에서 진행된 소송 결과를 살펴보면 3분의 1 이상은 당사자 간 합의(Settlement)에 의해 종결됐다. ITC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 미국 내 사업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불리한 측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송에 휘말린 양사가 합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더라도 구체적인 금액과 관련해서는 조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LG화학 측은 7월 31일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합리적 수준이라면 양사 합의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되 합의와 관련해서도 양사 실무진이 계속 접촉하고 있다”며 “아직은 ‘온도차’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확히 어떤 영업비밀을 침해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협상금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른 피해 금액 산정 기준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자본 손실(Actual Loss·경쟁사가 불법취득한 영업비밀로 수주 경쟁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피해액) △부당이득(Unjust Enrichment·영업비밀의 불법취득으로 경쟁사가 절감한 연구개발(R&D) 비용) △향후 로열티(Future Royalty·영업비밀의 취득을 통해 경쟁사가 앞으로 수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 등이 그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LG화학의 피해 규모는 수조 원에 이를 정도로 엄청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배터리 분야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제품이 완성되기까지 순서를 역으로 추적하고 분석함으로써 제품의 제조 과정과 성능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 기술 보호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해외 기업의 경우 외부에서 알아내기 어려운 핵심 기술을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이를 제외한 기술은 특허로 출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영업비밀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식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을 두고 ‘소송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거나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데, 이는 영업비밀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안일한 대처는 해당 기업이나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K-배터리 위상’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시장에서 요구하는 공정경쟁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1251호 (p46~49)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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