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9

2020.07.24

[진중권의 직설⑧] “유시민, 공지영, 이외수가 했던 일, 보수에서 누가 하나”

대중의 요구를 합리적 담론으로 가공, 일상 언어로 번역한 뒤 대중에게 되돌려주는 ‘인플루언서’부터 키워야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7-21 15: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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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동아’는 대표적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고문을 매주 화요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총선 참패 이후 미래통합당(통합당)에서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우 유튜버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보수 유튜버들은 기자증을 가슴에 달고 국회본청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통합당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중계한 바 있다. 그런데 21대 국회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싹 사라졌다. 극우 유투버들이 주문했던 단식·삭발·장외투쟁 등 ‘3종 신기’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외려 총선 참패의 원인이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통합당이 외적으로는 그들과 선을 긋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여전히 이들 강경보수의 정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튜브라는 이름의 게토

    4‧15 총선 전까지만 해도 통합당은 유튜버들과 한 몸으로 움직였다. 이들을 대중선동의 미디어로 활용하는 데 그친 게 아니다.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는 이들 유튜버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고성국TV’의 고성국 씨는 아예 당대표의 조언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에 출연하는 인사가 비례대표 의원 공천에 도전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팟캐스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경쟁에서 밀려난 보수층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뭉쳤고, 적어도 유튜브 시장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휘둘리고 만 것이다. 

    유튜브로 정치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유튜브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보수가 점령한 유튜브는 세상의 극히 일부로, 실은 보수들만의 게토(ghetto)에 불과하다. 그 게토를 세상의 전부로 알고 그들은 총선 압승이라는 황당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통합당 내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보수 유튜버들을 쫓아가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유세 기간 내내 ‘차이나 게이트’ 같은 허황한 음모론이나 펼치다 투표 일주일 전에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세 전략을 바꿨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통합당이 보수 유튜버에 휘둘리게 된 원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유권자인 대중에게 던질 정치적 메시지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유권자들이 소비할 정치적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데, 정당의 이 기본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무능으로 정당과 유권자를 잇는 정치적 소통의 고리가 끊겼고, 그 틈을 유튜버들이 파고들어 정당을 대신해 보수 유권자를 결집하는 역할을 했다. 대중이 유튜버들 주위에 조직돼 있으니, 정당이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문제는 이 보수 유튜버의 정신 상태가 대부분 성하지 않다는 데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즉 ‘유튜브’라는 형식이 그것을 통해 흘러나가는 내용의 성격을 결정한다. 가령 정치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은 현실정치에서 소재를 취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늘 세인의 주목을 끌 만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방송이 늘 재미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시청률은 계속 높게 유지해야 하니, 없는 재미를 만들어서라도 제공해야 한다. 그 방식 가운데 하나가 ‘가상화’다. 즉 현실이 ‘재미’를 주지 못하니 ‘상상력’을 동원해 없는 재미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가상화의 대표적 형식이 바로 ‘음모론’. 유튜브의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음모론적’이다. 

    현실이 주지 못하는 ‘재미’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또 다른 방식은 ‘말초신경의 자극’이다.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선정적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대중의 흥미를 끄는 것이다. 이 방식은 진지하게 다뤄야 할 정치적 의제를 졸지에 ‘선데이서울’로 바꿔놓는 결과를 낳는다. 선정성에는 ‘막말’이 따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방송 ‘가세연’ 출연자들은 생방송 도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 정황에 관해 농담을 던지면서 시시덕거렸다. 이로써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수많은 과제, 우리 사회에 던진 수많은 물음은 그 진지함을 잃고 한갓 우스갯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주로 ‘슈퍼챗’이라는 유튜브 특유의 수익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유튜브 정치채널은 콘텐츠가 극단적일수록 높은 수익으로 연결된다. 그런 극단적 콘텐츠에 오래 노출된 시청자는 자연스레 사고가 극단주의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들이 즐겨 구독하는 여느 채널들도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들은 급기야 자신들의 극단적 생각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쓰레기들이 지금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 콘텐츠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 지지층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정치적 의식의 가장 후진적 층위에 머물게 될 것이다.

    진보 담론을 일상 언어로 번역해 대중에게 되쏘는 인플루언서들. 유시민, 공지영, 이외수(왼쪽부터). [뉴시스, 함양군]

    진보 담론을 일상 언어로 번역해 대중에게 되쏘는 인플루언서들. 유시민, 공지영, 이외수(왼쪽부터). [뉴시스, 함양군]

    게토의 정서

    보수층 상당수가 정치 유튜버들의 영향으로 여전히 ‘개표 조작’ 음모론에 목을 매고 있다. 음모론은 대중을 현실에서 망상으로 이주케 한다. 그것은 총선 참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림으로써 제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아무 가망 없는 싸움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함으로써 보수를 영원한 패배의 운명에 묶어놓을 뿐이다. 김무성 전 당대표가 보수 유튜버들에게 선전포고하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민경욱 전 의원의 개표 조작설을 비판하고 나섰지만, 통합당 정치인들은 여전히 유튜브 강경 보수파의 정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배현진 의원이 맥락 없이 박주신 씨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 또한 강경보수층 사이에 박주신 병역기피 음모론이 널리 퍼졌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부친을 잃은 상주를 공격하는 그의 행위 역시 카메라를 들고 박 전 시장의 빈소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보수 유튜버들의 행태와 평행을 이룬다. 한편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채홍사가 있다”는 말로 여성주의 의제를 졸지에 ‘선데이서울’로 바꿔놓았다. 아마 ‘TV홍카콜라’ 방송을 하면서 익힌 유튜버 문법일 것이다. 이들이 저런 언행을 할 수 있는 것은 보수층에 여전히 극언에 환호하는 이가 꽤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강경보수 정서에 기대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용한 일이다. 가령 며칠 전 주호영 원내대표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를 향해 “적과 내통한다”고 극언을 퍼부었다. 철 지난 프레임으로 청문회장을 이념 전장으로 바꿔놓으려 한 것이다. 이는 통합당 사람들이 여전히 극우 정서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발언은 상대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외려 여당의 반격만 초래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이 쓸데없는 발언 때문에 주 원내대표는 공세를 펼쳐야 할 청문회 국면에서 도리어 수세에 몰려 제 발언의 취지를 해명해야 할 처지가 됐다.

    보수의 담론 생산과 매체전략

    강경보수를 위한 언행들은 그저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해 통합당을 지지하려던 사람들의 등만 돌려세울 뿐이다. 고로 통합당 정치인들은 겉으로 극우 유튜버들과 거리를 두는 것 이상으로, 자기 몸과 머리에 들어와 있는 강경보수의 습속부터 청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치인이라면 지지자들의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체 보수층 가운데 유튜브를 듣는 강경보수는 생각보다 그 수가 많지 않다. 중요한 점은 이들 강경보수가 ‘보수’ 전체를 대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은 강경보수의 영향을 받을 게 아니라 거꾸로 그들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을 변화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보수층이 유튜브에 매달리는 이유는 정치적 정보에 대한 자신들의 욕구를 정당이 충족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론에는 지식층의 합리적 담론(談論)과 항간에 떠도는 세론(世論)이 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대중의 입에 회자되는 세론을 받아 합리적 담론으로 가공한 후, 그것을 메시지로 던져 세론으로 항간에 회자되게 만들어야 한다. 통합당에 결여된 것이 이 ‘담론 생산’ 능력이다. 담론이 공급되지 않으니, 정치에 관심 있는 보수층은 오직 세론만을, 그것도 유튜브를 통해 전달되는 극단적 형태로 접하게 되는 것이다. 

    정당과 대중 사이에는 대중의 요구를 합리적 담론으로 가공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그 담론을 일상 언어로 번역해 대중에게 되쏘는 인플루언서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다 망가졌지만 더불어민주당에는 유시민, 공지영, 이외수 등 그런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굳이 시키지 않아도 유튜버들이 알아서 널리 증폭해줄 것이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적이어서, 유튜버들의 콘텐츠가 거꾸로 인플루언서와 전문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할 때 비로소 보수도 제대로 된 자기 ‘메시지’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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