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5

2020.06.26

“이 군대로 전장에 나가면 백전백패” [웨펀]

몽고메리 장군이 한탄했던 영국군, 기강해이로 치면 한국군이 더 나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6-20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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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이순신 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충무공 이순신 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은 지장(智將)이면서 용장(勇將)이었고,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운 덕장(德將)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난중일기’ 등 사료(史料)를 들여다보면 그만큼 엄격한 장수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하들에게 강하고 무서운 형벌을 자주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 말단 군졸부터 군관에 이르기까지 임무 수행을 게을리하거나 군율을 어기는 자에게는 군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 최고 형벌을 내렸다. 병선(兵船)과 병기(兵器) 관리에 소홀하거나 민가의 개를 훔쳐 잡아먹은 군졸에게는 80대의 곤장형을 명해 엄히 다스렸고, 탈영병 같은 중죄인은 참수(斬首)해 효시(曉示)했다.

    ‘소유위령 즉당군율’

    영화 명량 포스터. [빅스톤픽쳐스]

    영화 명량 포스터. [빅스톤픽쳐스]

    임진왜란 발발 직후부터 기록된 ‘난중일기’에는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엄격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부하 ○○○이 기강이 태만하여 베었다’ ‘부하 ○○○이 기강이 태만하여 곤장을 때렸다’ 같은 내용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부하 처벌은 전쟁 기간 내내 이어졌다. 심지어 절대적 열세에 몰려 단 한 명의 병력이라도 더 필요했던 명량해전 직전에도 이순신 장군은 소유위령(小有違令) 즉당군율(卽當軍律), 즉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부하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평시에 이러한 엄격한 리더십으로 훈련된 조선수군은 강했고, 실전에서 백전백승 무패 신화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명장 버나드 로 몽고메리 역시 엄격한 군기를 중시하던 지휘관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프리카 전황을 뒤집으라는 윈스턴 처칠 총리의 특명을 받고 제8군사령관에 임명됐는데, 부임과 동시에 부대 장병들의 기강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직접 부대를 순찰했다. 개인화기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정비가 안 돼 있으면 즉각 영창을 보냈고, 다림질 안 된 전투복을 입고 있는 장교에게는 경고장이나 징계가 떨어졌다. 심지어 야전 식당에서도 식탁보를 깔게 했고, 식탁보가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돼 있지 않으면 그날 식사는 포기해야 했다. 

    몽고메리는 이렇게 각이 잡힌 병사들을 하루 10시간 이상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병사들은 물론 장교들도 기진맥진해 고통을 호소했고, 탄원서를 접수한 본국에서조차 그에게 “적당히 하라”고 경고했지만 몽고메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몽고메리 부임 직후 영국 제8군은 미국이 ‘랜드리스법’으로 무상 공여한 막대한 신무기를 대량으로 보급받고 있었다. 몽고메리가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8군은 전차 전력에서 독일 명장 에르빈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을 몇 배나 압도할 정도가 됐다. 

    처칠 총리는 몽고메리에게 “이만한 전력을 보내줬는데 도대체 장군은 뭐 하는 것인가. 당장 롬멜을 쳐 이집트를 탈환하라”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몽고메리는 “지금 이따위 오합지졸로는 붙어도 패배한다. 그렇게 롬멜을 치고 싶으면 제8군사령관을 바꿔라”고 받아쳤다. 

    몽고메리는 처칠 총리의 압박을 석 달이나 버티며 군 기강 확립과 훈련 강화에 박차를 가했고, 1942년 10월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을 격파하며 북아프리카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윤의철 중장 이야기

    버나드 로 몽고메리. [미국 공군 홈페이지]

    버나드 로 몽고메리. [미국 공군 홈페이지]

    임진왜란이 끝난 지 420여 년, 엘 알라메인 전투가 끝난 지 80여 년이 된 지금, 대한민국 육군 최강이자 아시아 최강 기갑부대로 정평이 난 부대에 이순신, 몽고메리 같은 리더십을 가진 지휘관이 부임했다. 

    포병장교로 임관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전후방 각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맹호부대 포병여단장을 거쳐 합동참모본부, 제3야전군사령부 등에서 이른바 ‘진급 코스’를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사단장을 마친 뒤 국가안보실(NSC) 국가위기관리센터장 자리까지 꿰찼다. 

    승진가도를 달리던 그는 2018년 중장으로 진급해 국군 최강 부대인 제7기동군단장에 부임했다. 빠른 진급을 거듭하며 청와대까지 다녀온 그는 유력한 육군참모총장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됐고,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국방부 장관까지 내다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경력은 군단장 취임 반년 만에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 하나에 산산조각이 났다. 현재는 육군 교육사령관으로 사실상 좌천된 윤의철 중장의 이야기다. 

    윤 장군은 제28보병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기강에 충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장이 현지 지도를 나오는데도 전체 대대원 530명 가운데 230명이 온갖 핑계로 행군에서 빠졌고, 300명 가운데 180명은 완전군장을 착용하지 않은 채 총만 들고 나왔다. 완전군장을 한 120명 중 100명의 군장을 열어보니 규정된 27kg의 각종 물자 대신 종이상자나 신문지, 플라스틱 물병이 들어 있었다. 규정대로 군장을 착용하고 행군에 임한 장병은 530명 대대원의 단 3%, 20명에 불과했다. 

    윤 장군이 사단장과 군단장으로 재직하던 시기는 육군이 개인장비 혁신을 추진하며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총기와 군장, 통신장비 등이 환골탈태를 시작하는 때였다. 소총에는 레일과 광학장비가 부착됐고, 일부 인원에게만 지급되던 방탄복과 전술조끼는 모든 병사의 표준 장비가 됐다. 그만큼 개인 장구류의 무게가 크게 증가했으나, 장병의 체력은 예전만 못했다. 

    기술과 장비의 발전을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자 윤 장군은 병사들을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제아무리 좋은 총과 방탄 헬멧, 방탄복을 지급한다 해도 그걸 입은 병사가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윤 장군은 체력검정과 행군, 각종 훈련에서 ‘했다 치고’ 식의 관행과 편법을 엄격하게 처벌했고, 체력훈련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그가 지휘하는 부대에서는 체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포상휴가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모두가 일과를 마친 후 체력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지휘관의 혹독한 훈련과 기강 잡기에 장병들은 이른바 ‘청와대 소원수리’로 맞섰다. 2018년 여름 누군가 윤 중장의 혹독한 체력훈련에 대한 불만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올리며 윤 장군의 해임을 요구하자,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나도 당했다’라는 식의 ‘미투(Me Too)’가 쏟아졌다. 

    언론보도와 인터넷에서는 그에 대한 마녀사냥이 이어졌다. 고작 20개월 안팎의 의무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30년 넘게 군 최고 요직을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에게 ‘병과에 대한 몰이해’ ‘장병 인권 침해’ ‘전문성 부족’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데스노트와 드래건볼 모으기

    윤 장군의 사례는 온갖 음해에 시달렸지만 결국 법정에서 누명이 벗겨진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처럼 이른바 ‘데스노트’ ‘드래건볼 모으기’에 당한 경우다. ‘데스노트’는 상급부대나 국방부, 국민청원게시판에 찍어내고자 하는 상급자를 신고하는 것, ‘드래건볼 모으기’는 여러 명이 입을 맞춰 마음에 들지 않는 상급자에 대한 투서를 쏟아내 해당 상급자를 날려버리는 것을 말하는 군대 내 은어다. 

    지금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각 부대 간부들, 특히 장기 복무하는 간부들은 자신이 ‘데스노트’에 적히거나 ‘드래건볼 모으기’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급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긁히면’ 그걸로 군 생활이 막히는 것은 물론, 옷 벗을 각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 기강을 잡아야 할 장기 복무 간부들이 ‘슈퍼 을’이 되면서 군대 기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근 2~3년간 군 기강 해이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전후방 각지 군부대는 물론, 핵심 군사시설의 경계가 뚫렸다는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초소에서 경계임무에 만전을 기해야 할 초병이 총과 방탄모를 내려놓고 자판기 음료수를 먹으러 가는 것은 애교다. 부대 정문을 지키는 초병이 위병초소에서 근무하다 총과 장비를 내려놓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부대 앞 커피숍에 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휴가 나온 장병이 남의 집 창문을 타고 들어가 여성을 상대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장병도 있었다. 이제 부대 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도박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됐고, 마약 반입을 시도하거나 상관을 야전삽으로 내리치고 성추행하는 사건도 보고되고 있다. 

    최근 2~3년간 군 기강의 붕괴는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병사들은 물론 간부들도 폭행과 음주, 성범죄, 도박 등 혐의로 적발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은 실제 발생한 사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대한민국 국군의 상태는 80여 년 전 몽고메리 장군이 “이 따위 군대로 전장에 나가면 백전백패”라고 한탄했던 영국군 상태보다 더 심각하다.

    극심한 개인주의와 편의주의

    국군이 이렇게 무너진 것은 군 수뇌부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3년간 적(敵)을 없앴고, 전우(戰友)를 없앴다. 싸워야 할 적이 없고, 함께 싸울 전우가 사라진 군대에 남은 것은 극심한 개인주의와 편의주의다. 지난 3년간 국군 장병들은 이등병이라도 사단장이나 군단장은 물론, ‘4스타’까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을 봐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실이든 아니든 음해해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성에 차지 않으면 야전삽으로 내리칠 수 있는 것이 전우이고 상관이 됐다. 

    기강을 바로잡고 강병(强兵)을 만들려던 지휘관은 좌천됐으며, 정권 눈치만 보면서 군 기강을 무너뜨린 사람은 온갖 사건, 사고가 터져도 유체이탈화법으로 빠져나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군의 붕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이 응징과 보복이라는 단어로 위협하며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이때, 대한민국 국군에는 적전(敵前)에서 기강 확립을 위해 부하의 목을 칠 수 있는 이순신 같은 장수가, 군 통수권자의 부당한 지시와 겁박에도 자기 목을 걸고 당당히 맞서며 부하들을 다그칠 수 있는 몽고메리 같은 장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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