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4

2020.06.19

공정 중시하는 TV경연프로도 ‘잘 짜여진 쇼’다

  • 오미정 대중문화칼럼니스트

    입력2020-06-1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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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위 조작으로 제작프로듀서와 책임프로듀서가 실형을 선고받은 Mnet 서바이벌프로그램 ‘프로듀스×101’. [CJ ENM]

    순위 조작으로 제작프로듀서와 책임프로듀서가 실형을 선고받은 Mnet 서바이벌프로그램 ‘프로듀스×101’. [CJ ENM]

    #1 관리자급 인사로 해당 분야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다수의 심사위원진 가운데 선발 절차에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발한다. 선발된 심사위원은 지원자와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약서를 낸다. 선정평가 후 평가위원 실명 및 상세 총평을 공개한다. 유관기관, 시민단체, 변호사 등 평가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로 구성된 공정평가 담당관이 평가장에 들어가 심사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심사위원은 향후 심사위원진에서 빠진다. 

    #2 심사위원은 제작진이 섭외한다. 주로 인기가 많고 잘 알려진 연예인이 심사를 맡는다. 심사위원은 지원자와 사적관계를 얘기하면서 지원자를 좋게 평가하기도 한다. 심사 기준은 각자의 마음이다. 현장 관객의 호응도 면밀히 살핀다. 팬이든, 지인이든 현장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많으면 유리하다. 심사 과정에서 문자투표 등 일반인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일반인 참여자가 문자메시지로 심사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소액을 지불해야 한다.

    위 두 사례는 모두 재능 있는 대중예술인을 선발하는 심사 과정이다. ‘사례1’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김영준·이하 콘진원)이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심사 절차의 모습이고, ‘사례2’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송사 경연프로그램의 평가 절차다. 공정성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전자의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물론 평가 과정에 재미는 없다. 그래서 재미가 1차 목표인 방송사 경연프로그램의 평가 방식으로는 부적절하다.

    방송의 1차 목표는 시청률

    방송사 프로그램의 목표는 시청률이다. 누군가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례2’처럼 심사한다. 방송사 경연프로그램은 이렇듯 ‘쇼’이지 ‘시험’이 아니다. 이 때문에 완벽한 공정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쇼’라는 전제하에서 경연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것이 이해되고 예상된다. 물론 ‘시청자 문자투표 조작’까지는 너무하긴 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경연프로그램의 경우 당연히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좋은 지원자가 잘 모집되지 않는다. 제작진이 나설 수밖에 없다. 제작진, 그중에서도 주로 작가가 화제를 몰아올 것 같은 인물을 찾아내 직접 섭외하기도 한다. 제작진의 노력으로 프로그램이 첫 시즌에 대박을 치면 두 번째 시즌부터는 굳이 섭외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좋은 지원자가 알아서 온다. 

    예선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경연이 펼쳐지는 상황. 이상하게도 지원자의 면면이 버라이어티하다. 남녀 모두 지원할 수 있는 경연이라면 성비도 적절하게 맞는다. 나이도 적당히 분산돼 있고 각자의 사연도 이상하리만치 다양하다. 매년 시즌별로 제작되는 경연프로그램이라면 전년 우승자와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지원자가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노래를 잘하는 지원자, 춤을 잘 추는 지원자, 외모가 뛰어난 지원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지원자 등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매력도 제각각이다. 시청자 취향을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구성인 셈이다. 



    눈치 빠른 시청자는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런 다양한 지원자가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은 기계적인 공정성만 추구한 결과가 아니다. 제작진의 ‘연출’ 힘이 가미된 결과다. 

    제작진의 ‘연출력’은 기획, 섭외, 편집 등 여러 방법을 통해 구현된다. 제작진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섭외한 연예인 출연자(심사위원 혹은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어느덧 제작진의 일부가 돼버린 연예인 출연자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제작진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는다. 이들도 엄연히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섭외된 사람들이다. 굳이 제작진이 연예인 출연자에게 특정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이들 스스로가 연예인인 까닭에 어떤 지원자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쇼의 구성이 재미를 갖추는지 감각적으로 안다. 물론 연예인 출연자의 그런 ‘정무 감각’을 높이 평가해 제작진이 이들을 섭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말이 안 통하고 고집 센 예술가’는 경연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성 평가의 위력

    시청자가 문자투표를 많이 한다 해도 연예인의 ‘정성평가’가 합쳐지면 결과가 다소 달라지기도 한다. 연예인이 심사의원으로 섭외됐다면 평가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이 아닌 트레이너로 참여해도 ‘잘한다’ ‘못한다’ 같은 평가는 할 수 있다. 굳이 숫자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특정 지원자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연출’ 영역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이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결과에 수긍한다. 이렇게 ‘경연’ 형식의 쇼가 만들어진다. 

    인기 랩 경연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래퍼는 출연 당시를 떠올리며 “제작진이 무대에 많이 관여하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회가 진행될수록 남아 있는 지원자의 면면을 보면 나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경연의 구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다양성을 살리더라. 그게 연출가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된 Mnet 서바이벌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은 순위 조작이라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이 때문에 제작프로듀서 안준영과 책임프로듀서 김용범이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연출’의 영역을 넘어선 ‘조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경연프로그램의 인기만을 쫓다가 연출로 커버되지 않는 영역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연출’까지만 했어야지 ‘조작’까지는 너무 갔다.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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