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8

2020.05.08

대학 온라인 강의로 멀티족 출현, 방구석 동영상엔 실망 커져 [사바나]

  • 김혜리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3학년 고세련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3학년

    haley97_@naver.com imseryun@naver.com

    입력2020-05-0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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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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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 만에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건강이나 안전, 위생에 관한 관심이 매우 커졌고 일상 생활도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 이후 뉴 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았던 '사회적 거리 두기'는 6일부터 다소 완화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바뀌었지만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한다는 자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학 생활도 대폭 바뀌었다. 생소하기만 하던 비대면 온라인 강의는 어느새 주류가 돼버렸다. 서울의 경우 건국대, 서강대, 서울대, 숭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1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하기로 했다. 경희대, 성균관대는 무기한 온라인 강의 중이고 고려대, 한국외대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대면 수업을 허용한다. 시작한 지 두 달이 돼가는 대학의 온라인 강의는 순항 중일까. 

    연세대생 오모 씨(음악대학 4학년)는 온라인 강의 덕분에 '방구석 합주'라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오 씨는 "학생들이 인터넷의 줌(zoom) 프로그램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연결하고 실시간 합주를 시도했다"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미세한 시차와 통신 잡음 때문에 음정이 모두 맞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온라인 합주는 포기했다. 수강생들은 각자 파트를 녹음해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 씨는 "합주는 다른 악기 연주를 들어가면서 여러 파트가 동시에 연주하는 것인데 각자 방구석에서 합주를 한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음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560만 원으로 4년제 대학 평균 330만 원의 1.7배 수준인데 그만큼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현재로선 온라인 강의는 음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K 대학 3학년생 고병관 씨(사회과학대학)는 온라인 강의를 계기로 '거리의 수강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배달을 다니면서 온라인 강의를 듣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확산돼 중국어 과외 알바(아르바이트) 기회를 잃게 된 고 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배달의 민족' 라이더로 나섰는데 배달 시간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시간과 겹친다. 

    이 회사의 배달비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기본 3500원에 1000원을 얹어주는 프로모션이 수시로 뜬다. 고 씨는 "보통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 시간에 나오는 프로모션을 잡아 배달을 한다"면서 "하필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과목 가운데 3과목이 이 시간대와 겹치는 바람에 단거리 배달 길에 이어폰으로 강의를 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배달하며 공부를 한다니, 배달의 민족은 뭔가 다르다"고 농담을 건네며 고 씨를 응원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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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과는 과제량이 많기로 악명이 높은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강의 시간까지 늘어난 과목이 생겼다. 경희대 건축학과 3학년 H 씨가 수강 중인 한 전공과목은 원래 3시간짜리. 그런데 담당 교수는 보통 5~6시간, 오래 가는 경우 7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H 씨는 "저녁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면서 "컴퓨터를 끄고 밥을 먹고 싶지만 강의를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돌발 퀴즈가 언제 나올지 몰라 계속 들어야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수강 학생들은 교수에게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라는 긴 수식어를 붙여줬다. 

    연세대생 오장훈 씨(지구시스템과학과 4학년)는 졸업에 필요한 교양 학점을 따기 위해 이번 학기에 피클볼 수업을 신청했다. 피클볼은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를 혼합한 것 같은 신종 스포츠. 코트에서 피클볼을 연습하고 게임을 해보겠다는 기대감은 코로나19가 날려버린 지 오래 됐다. 

    요즘은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켜놓고 피클볼 라켓으로 공을 혼자 튀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다. 오 씨는 "테니스를 처음 배울 때 벽 치기 연습을 하듯 거실에서 피클볼 치기를 하고 있다"면서 "대학 졸업을 위해 초등학생이 혼자 놀고 있는 것처럼 공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예술대학은 학생식당에서 일부 과목의 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널따란 식당에 띄엄띄엄 앉아 강의를 듣는다고 이 대학 3학년 K 씨(22)가 전했다. 3,4월엔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는데 졸업 작품을 만드는 등 실기 수업을 해야 하는 과목에 한해 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하고 이다. 예술대학 측은 당초 대운동장과 농구장 등에 학과별로 대형 천막을 설치해 강의를 하려고 했으나 전국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이 감소하자 식당으로 장소를 바꿨다. K 씨는 "실습 자재가 갖춰진 실습실은 문도 안 열어 아예 사용하지 못한다"며 "식당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으면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습 수업이 꼭 필요한 치과대학은 비상사태다. 연세대 치과대학은 대면 수업을 피하느라 사상 처음으로 중간고사도 건너뛰었다. 학교 측은 4월 29일 이번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시행하기로 변경했다고 학생들에게 알렸다. 안내문에는 빨간 글자로 '실습은 6월 1일부터 대면으로 실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대학 H 씨(22)는 "연기된 실습이 6월에 시작된다는 것은 여름방학은 확보하기 어렵다는 소리"라며 아쉬워했다. 

    온라인 강의가 처음 시작된 3월 중순 학생들 사이에서는 "준비가 부족했는지 교수가 강의자료 파일만 띄워놓은 수업도 있다"는 등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연세대 3학년 김시은 씨(22)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면 토론도 하기 어렵고 아무래도 수업의 질이 떨어질 것 같아 이번 학기 휴학을 택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으로 공부하러 온 중국 등 외국 유학생 중에는 출입국이 어려워지자 아예 휴학계를 낸 경우도 적지 않다. 연세대는 이번 학기 휴학에 대해 '졸업 전 6학기 이내'인 일반 휴학 한도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각종 고시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일부 학생들까지 덩달아 휴학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사진=연세대학교 제공]

    [사진=연세대학교 제공]

    온라인 강의를 들으려면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나 노트북이 필요하다. 마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집에서 통신 데이터를 쓰지 않으면 온라인 강의를 듣기에 불편한 경우도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의 한 학생도 그런 처지였지만 담당 교수의 도움으로 해결하게 됐다고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렸다. 

    ‘저의 집은 가난해 반지하에 살고 있고 데이터를 사거나 카페에 갈 형편은 못 됩니다. 근처에서 나오는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 강의를 듣고 있는데 자주 끊깁니다. 그런데 최미호 교수님이 저의 사정을 아시고 카페에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카페비를 대주셨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이런 교수님은 처음 봤습니다. 제가 꼭 성공해서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돕겠습니다.’ 

    이 학생은 4월 29일 최 교수(강사)로부터 15만 원을 입금 받은 통장의 거래 기록까지 공개했다. 이 글을 본 학생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 돈을 다 쓴 뒤에도 카페에 가야 하는 상황이면 연락주세요. 내게 카페 기프티콘이 많이 남아 있어요." "친구야, 어디 통신사 써? 남는 데이터 나눠주고 싶어." 바로 아래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나도 데이터 남아돌아. 위의 친구랑 통신사가 안 맞으면 나에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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