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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개인 취향을 넘어 상황에 걸맞은 선곡을 부탁해

지상파 야구담당 PD의 음악 선곡에 대하여

개인 취향을 넘어 상황에 걸맞은 선곡을 부탁해

[뉴스1]

[뉴스1]

야구팬이라면 포스트시즌이 끝난 후 내가 마치 선수였던 것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다. 한 경기, 아니 한 이닝, 아니 공 하나에 집중하며 일희일비하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결과가 좋으면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급격한 우울함과 허탈감이 밀려온다. 종목은 달라도 리그가 있는 프로 스포츠팬이라면 다 마찬가지다. 

영국 작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영국 아스널 FC의 골수팬인 닉 혼비는 데뷔작 ‘피버 피치’(Fever Pitch  ·  미국으로 건너가 야구영화로 번안된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원작)에서 이렇게 썼다. “축구는 또 하나의 우주로서, 노동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며, 염려와 희망과 실망을, 그리고 이따금씩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내가 축구를 보러 가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적어도 오락을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 오후 주위에 모여 앉은 침울한 얼굴들을 보면, 남들도 나와 같은 기분임을 알 수 있다. 충성스러운 축구팬에게, 보기 즐거운 축구의 존재는 정글 한가운데서 쓰러지는 나무의 존재와 같다. 우리는 그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왜 쓰러지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드라마 같았던 2019 두산 베어스 야구

2019년 정규시리즈와 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을 달성한 두산 베어스. [뉴시스]

2019년 정규시리즈와 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을 달성한 두산 베어스. [뉴시스]

여기서 ‘축구’를 ‘야구’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나는 두산 베어스 팬이다. 두산 팬에게 2018~2019년 야구는 조울증 그 자체였다. 2018년에는 2위와 14.5경기라는 압도적인 승차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암울한 경기력을 보이며 준우승에 그쳐야 했다. 주전 포수이자 국가대표 포수인 양의지가 자유계약선수(FA)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는 걸 봐야 했다. 야구의 시즌과 시즌 사이를 스토브 리그라 한다. 겨울에 스토브(난로)를 둘러싸고 팬들이 다음 시즌에 대해 얘기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2018년 시즌이 끝난 후 두산 팬들의 난로에선 연기 한 가닥 피어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우울한 겨울이었다. 

2019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양의지 보상선수로 이적한 투수 이형범, 양의지 빈자리를 메운 포수 박세혁, 용병타자 페르난데스의 선전으로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어느새 두산 야구 특유의 끈질김이 사라졌다. 이겨도 재미없고, 지고 있으면 그대로 질 것 같은 전반기 흐름에 야구를 슬슬 끊고 싶기까지 했다. 1위 SK 와이번스와 9.5경기 차로 3위, 전반기를 마칠 때 성적이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미라클’이 시작됐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야구가 돌아왔다. 시즌 종료를 얼마 앞두고 결국 공동 1위가 됐고, 10월 1일 NC와 마지막 경기를 끝내기 승리로 장식하면서 마지막 경기에서 정규시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1982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창설 이후 최초였다. 



영화나 드라마로 쓰면 너무 뻔하다고 욕먹을 시즌을 보내다 보니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챙겨 봤다. 비록 남의 팀 시합일지라도 전력 분석을 한다는 핑계로. 누가 올라올지 예측하는 재미로. 그런데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 올해 포스트시즌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케이블TV방송에서 중계하는 정규시즌 경기는 이닝 교체 때마다 각 방송사 고유의 시그널 뮤직을 사용한다. 그런데 지상파 중계여서일까. 포스트시즌의 이닝 교체 음악은 하나같이 록 명곡이었다.


이닝 교체 때마다 울려 퍼진 록

‘Welcome to the Jungle’(1987)을 노래한 건스 앤 로지스. [gettyimages]

‘Welcome to the Jungle’(1987)을 노래한 건스 앤 로지스. [gettyimages]

‘Rock and Roll’을 부른 레드제플린. [뉴시스]

‘Rock and Roll’을 부른 레드제플린. [뉴시스]

방송국 PD는 대체로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1970~90년대 록을 좋아한다. 시내 음악 술집의 손님 5명 중 1명은 PD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왜 그럴까. 한 지상파 PD는 이런 말을 했다. “원래 공부 좀 하는 애들 가운데 음악을 좋아하면 꿈이 PD인 경우가 많다. 회사도 괜찮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실컷 들을 수 있거든.” 

하지만 막상 입사해보면 현실은 다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면 시청률도, 청취율도 안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다. 그래도 ‘끼’는 어디 가지 않는 법. 그들은 기회가 생기면 자신의 ‘덕심’을 발휘하곤 하는데 예능이나 스포츠프로그램을 맡으면 특히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포스트시즌은 지상파 3사 PD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진기한 기회였다. 보통 케이블TV방송의 스포츠프로그램은 해당 경기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애써 선곡하는 반면, 이번 포스트시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LG 트윈스와 NC의 와일드카드 경기를 중계한 SBS가 포문을 열었다. 건스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 레드 제플린의 ‘Rock and Roll’ 등 1970~80년대 록 클래식이 이닝 때마다 쏟아진 것이다. 

야구 커뮤니티 게시판은 이 난데없는 선곡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나이 좀 있는 팬은 젊었을 때 좋아하던 음악을 야구 중계에서 들을 수 있으니 이런저런 썰을 풀어놓았다. 어린 야구팬은 “아재스럽다”고 핀잔을 놓기도 했다. 어쨌든 화제가 된 건 분명하다. 


MGMT(왼쪽)와 앨범  ‘Kids’(2008). [위키피디아]

MGMT(왼쪽)와 앨범 ‘Kids’(2008). [위키피디아]

와일드카드가 한 경기 만에 끝나고 시작된 준플레이오프, KBS와 MBC도 가만있지 않았다. 역시 고유의 시그널 뮤직은 뒤로한 채 담당 PD의 취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곡을 틀어댔다. 

보수적일 것 같은 KBS가 의외로 MGMT의 ‘Kids’ 같은 비교적 최근 노래를 튼 게 색달랐다. 급기야 SBS는 캐스터와 해설진의 신청곡을 받아 틀고, MBC는 아예 시나위, 티삼스 같은 1980년대 한국 헤비메탈 밴드의 노래로 매 이닝을 도배하기도 했다.


취향 자랑 말고 센스 대결이었으면

그래도 PD라면 그 이닝의 상황이나 시합 흐름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는 센스를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두산이 키움 히어로즈를 4-0으로 이기고 끝난 순간 퀸의 ‘We Are the Champions’가 나온 게 전부였다. 

아쉬운 점이 그거였다. PD들은 종종 개탄한다. 좋은 음악을 틀어도 소용없다고. 진지한 음악의 시대는 갔다고. 맞는 말이지만 때론 고개를 갸웃한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지상파 PD의 취향 자랑이 아닌, 좀 더 센스 있는 선곡으로 이닝과 이닝 사이를 메웠다면 어땠을까. 프로야구라는 드라마에 좀 더 확실한 배경음악(BGM)이 됐을 테다. 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은 그 센스에 감탄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로 음악을 알게 되듯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뜰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는 방송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야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너나없이 음악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시대에 야구 포스트시즌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헛되이 사용한 것이 아쉬웠다. 내년에도 포스트시즌 야구 중계는 지상파 담당일 것이다. 그때는 취향이 아닌 센스의 대결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9.11.01 1212호 (p72~74)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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