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9

2019.10.11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라이프스타일 페스티벌로 진화 중인 케이팝 이벤트

‘케이콘 2019 태국’ 참관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10-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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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방콕의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 2019 태국’ 콘서트. [사진 제공 · CJ ENM]

    태국 방콕의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 2019 태국’ 콘서트. [사진 제공 · CJ ENM]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레드벨벳…. 누구나 아는 아이돌그룹이 있다. 음악시장의 중원에서 큰 깃발을 휘두르는 그룹들이다. 모든 아이돌그룹이 그런 건 아니다. ‘아이돌 덕후’가 아니면 이름도 생소할 팀이 훨씬 많다. 그들의 팬이거나, 아이돌 전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고개를 갸웃할 만한 팀의 인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서울 지하철역의 광고판 한 자리를 차지하는, 처음 보는 아이돌그룹 멤버의 생일 광고를 볼 때 그렇다. 체감은 되지만 크지는 않다. 어떤 아이돌, 아니 나아가 케이팝(K-pop)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해외에서 열리는 케이팝 이벤트다. 9월 28, 29일 양일간 태국 방콕 임팩트 아레나와 익스히비션 센터에서 열린 ‘케이콘 2019 태국’은 케이팝, 그리고 한국의 대중문화와 여기서 파생된 다른 라이프스타일이 세계에 미치는 국제적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케이콘의 방콕 행사

    케이뷰티(K-beauty)와 여성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을 모은 케이콘 걸스 무대를 찾은 케이팝 아이돌그룹 ITZY(있지)와 현지 팬들(왼쪽). 케이팝 아이돌그룹의 안무를 단체로 따라 하고 있는 관객들. [사진 제공 · CJ ENM]

    케이뷰티(K-beauty)와 여성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을 모은 케이콘 걸스 무대를 찾은 케이팝 아이돌그룹 ITZY(있지)와 현지 팬들(왼쪽). 케이팝 아이돌그룹의 안무를 단체로 따라 하고 있는 관객들. [사진 제공 · CJ ENM]

    CJ ENM은 2012년부터 케이콘을 개최해왔다. 당시 케이팝의 국제적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에서 순위 싸움을 하기 전이었다.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가 주 무대였고, 일본에서는 정점을 찍은 뒤 조금씩 하향세를 그릴 무렵이었다. 미국에서 첫 케이콘을 찾은 관객은 1만 명이라고 한다. 짐작건대 교포와 유학생이 주축이었을 것이다. 이후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호주, 멕시코 등에서 매년 개최된 케이콘은 케이팝의 성장과 함께 차츰 규모도 커졌다. 올해는 도쿄,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방콕까지 총 4개 도시에서 열렸다. 방콕을 찾았다. 9월 28일 오전부터 익스히비션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컨벤션을 방문했다. 

    이와 비슷한 이벤트를 몇 년 전 홍콩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Mnet에서 주최하는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다. 그때도 한국 중소기업들의 상품이 컨벤션 형태로 전시됐다. 관심을 갖는 현지인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시상식이 중심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에도 좀 민망한 인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케이콘에서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바뀌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한국에서 열리는 키즈박람회 같다고나 할까. 젊은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화장품 등 케이뷰티(K-beauty) 섹션은 물론이고,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케이푸드(K-food) 섹션에도 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케이뷰티, 케이푸드가 해외에서도 성장세를 보이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여전히 낯선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역시 케이팝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섹션이었다. 케이팝 댄스 경연대회랄까, 유명한 케이팝 히트곡에 맞춰 현지인들이 그대로 안무를 재현하는 섹션이었다. 방탄소년단, GOT7(갓세븐) 등의 음악에 맞춰 뮤직비디오 속 모습과 똑같이 군무를 추고 있었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촬영하는 현지인이 무대 주변을 둘러쌌다. 

    중남미에서 케이팝의 인기를 견인한 요소가 한국 아이돌그룹의 군무와 이를 따라 하는 플래시몹 이벤트였는데, 이는 동남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케이팝의 성공 요소로 반드시 꼽히는 ‘칼군무’의 위력이었다.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가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부가가치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미국이나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끼쳤던 영향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명도 낮은 아이돌에게도 2만 명이 열광

    ‘케이콘 2019 태국’ 컨벤션에서 환호하는 현지 관객들(왼쪽)과 케이팝 아이돌그룹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팬들. [사진 제공 · CJ ENM]

    ‘케이콘 2019 태국’ 컨벤션에서 환호하는 현지 관객들(왼쪽)과 케이팝 아이돌그룹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팬들. [사진 제공 · CJ ENM]

    오후 7시 무렵, 익스히비션 센터의 인파가 한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7시 30분부터 임팩트 아레나에서 열리는 콘서트로 향하는 인파였다. 먼저 이번 케이콘 라인업을 살펴보자. 9월 28일에는 보이스토리, 에버글로우, 골든차일드, GOT7, ITZY(있지), 김재환, 네이처, 원어스, 더보이즈, 29일에는 (여자)아이들, AB6IX(에이비식스), 에이티즈, 밴디트, 청하, 아이즈원, Stray Kids(스트레이 키즈), VERIVERY(베리베리)가 참가했다. X1(엑스원)이 양일 모두 무대에 올랐다.
     
    질문. 여기 18팀 가운데 아는 이름이 반은 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이돌 덕후’라 할 수 있다. 라인업을 처음 받아 봤을 때 20대 친구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이돌그룹에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긴 했어도, 그들 역시 대부분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혹은 이름은 아는데 음악은 아는 게 없다고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몇몇 팀을 제외한다면 이 라인업은 대부분 신곡이 나왔을 때 음원차트를 ‘올킬’하는 파급력은 없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팀도 아니다. 단독 콘서트를 연다고 했을 때 올림픽 체조경기장, 아니 올림픽홀을 매진시킬 티켓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내수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가진 팀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콕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힘이 달랐다. 

    약 2만 석으로 추산되는 임팩트 아레나를 꽉 채운 현지 관객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역지사지로, 내한한 해외 뮤지션이 공연할 때 그 희소성 때문에 한국 관객이 현지 관객보다 더 큰 호응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모든 팀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한국어 멘트에도 반응했으니 말이다. 티켓 값이 무료거나 저렴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컨벤션을 제외하고 콘서트 티켓만 따져도 일일권이 2000~6000바트(약 7만8000~23만5000원), 양일권이 3900~9900바트(약 15만2000~38만7000원)였다. 태국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태국 물가 대비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록페스티벌화한 케이콘

    말하자면, 여기 모인 사람은 ‘팬심’ 정도는 다를지언정 기본적으로 ‘케이팝 전반’에 빠져 있는 이들이라 해도 좋았다. 가벼운 팬이 아니라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화장품과 한국 음식에도 두루두루 관심을 보이는 열혈 팬 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의 음악 팬들 가운데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아프리카나 중남미 음악에 빠진 이들이 한자리에 2만 명이 모여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케이콘은 일종의 록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은 단순히 음악 이벤트가 아니다. 다양한 음식, 패션을 비롯한 여러 테마의 상품이 한데 모여 있고 공연과 공연 사이의 시간에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자리다. 그 사람들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며 특정한 문화 코드를 나눈다. 그 라이프스타일과 문화 코드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페스티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영국 글래스턴베리부터 일본 후지록페스티벌까지 성공한 페스티벌의 공통점이다.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고, 여기서 파생된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는 계층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케이콘 또한 페스티벌로서 브랜드를 구축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굳이 아이돌그룹이 아니더라도 한국 뮤지션에게는 충분한 시장이 있다고. 좁아터진 한국을 넘어 처음부터 조금씩 해외와 네트워킹을 구축해간다면 ‘케이팝=아이돌그룹’이라는 개념도 더 넓어질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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