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2016.01.06

국제

대만 ‘선거의 여왕’ 총통 자리 노린다

중화권 여성 최고지도자 당나라 이후 처음…양안관계 변화 불가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1-05 17: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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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이 새해 벽두부터 실시될 대만 총통선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1월 16일 치르는 대만 총통선거에선 제1 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59) 후보가 집권 여당인 국민당 주리룬(朱立倫·54) 후보에게 승리할 공산이 크다. 최근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차이 후보가 주 후보에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왔다. 차이 후보가 당선할 경우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이 된다. 중국까지 포함해 중화권에서 여성이 최고지도자에 오른 사례는 당나라 고종의 황후 출신으로 15년간 황제 자리에 있었던 측천무후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차이 후보가 승리하면 마잉주 총통이 지난 8년간 추진해온 친중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과 대만은 그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양안(兩岸)은 2010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고, 2015년 11월 분단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회담까지 가졌다. 대만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양안 교역 규모는 2009년 1062억 달러(약 124조4000억 원)에서 2014년 1983억 달러(약 232조3000억 원)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은 2015년 7월부터 대만인에게 입경허가증(비자)을 면제해주고 자유왕래가 가능한 대만 동포증을 발급해왔다. 이 증명서만 있으면 대륙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마 총통 집권 이후 중국과 체결한 협정만 21개나 된다.
    하지만 양안의 밀월관계에 대해 대만 측의 부작용과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 기업들은 이미 중국이 기침만 해도 몸살을 앓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젊은 층을 비롯한 대만 국민은 대부분 중국에 흡수 통일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지금까지 누려온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일국양제’와 ‘일변일국’

    특히 대만 국민은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두 개의 체제라는 뜻)를 약속한 홍콩에서 반중시위를 탄압한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만의 친중정책이 더욱 심화할 경우 자칫하면 자국이 ‘제2의 홍콩’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차이 후보의 당선은 양안관계가 앞으로 어느 정도 소원해지리라는 점을 예고하는 것이다.
    반면 아시아·태평양(아태)지역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중국으로선 양안관계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진당 출신인 천수이볜 전 총통(2000〜2008년 집권)이 과거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중국과 대만이 각각 한 개의 국가라는 뜻)을 주장했을 때 양안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이러한 양안관계 악화는 미·중 사이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진 바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대만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대만에 해·공군력을 배치할 경우 중국에게는 안보상 위협이 될 수밖에 없으며, 남중국해는 물론 태평양으로 자유롭게 군사력을 진출시킬 수도 없다. 중국은 또 대만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미국이 2015년 말 프리깃함 2척과 각종 미사일 등 18억3000만 달러(약 2조1539억 원) 규모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이 미국 기업들에게 보복하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번 대만 총통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2015년 12월 24일 푸젠성 장저우 일대에서 육·해·공 합동상륙훈련을 실시했다. 장저우는 대만 섬을 중국에 귀속시킨 명나라 장수 정성공(鄭成功·1624~1662)의 근거지였다. 정성공은 당시 대만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대만 섬을 수복했다. 중국군의 상륙훈련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대만 국민에게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은 또 차이 후보에게 양안관계의 핵심 원칙인 ‘92공식(九二共識)’을 인정하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92공식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로, 1992년 11월 민간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가 홍콩에서 회담을 갖고 도출해낸 것이다. 중국은 차이 후보가 집권해 92공식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양안 간 핫라인 중단은 물론, 대만과의 수교국들에게 외교관계를 끊도록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중 아태 전략 맞물려

    반면 미국은 지나치게 친밀한 양안관계를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만을 지렛대로 중국을 적당히 견제하는 것을 최상의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만이 중국에 흡수 통일될 경우 아태지역에서 힘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렸다. 미국이 이번 선거에서 차이 후보가 당선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이유다. 미국이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방어용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대만관계법’을 내세워 4년 만에 무기 판매를 결정한 것도 간접적으로 차이 후보를 지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차이 후보는 대만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정치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1994년 리덩후이 총통 시절 대(對)중국 정책을 자문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0〜2004년 대륙위원회 주임위원, 2004년 입법위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2008년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이 패배한 이후 주석으로 취임한 차이 후보는 3년간 9차례의 각종 선거에서 국민당에 맞서 7차례 승리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미혼인 차이 후보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지도자의 롤모델로 삼아왔다.
    차이 후보는 92공식은 하나의 선택 사항이지 유일한 원칙은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쌍방이 도발하지 않고 의외의 일을 벌이지 않음으로써 좋은 소통을 통해 안정이 유지되길 바란다”면서도 “양안관계는 대만 국민의 민의와 민주주의체제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차이 후보의 이런 태도에 따라 양안관계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향후 대만해협의 파고도 한층 높아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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