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2016.01.06

IT

진격의 알뜰폰이 넘어야 할 산

4년 만에 점유율 10% 넘겨…자회사 통한 이동통신사와 대기업 배불리기 여전

  • 최호섭 IT칼럼니스트 work.hs.choi@gmail.com

    입력2016-01-05 17: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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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를 많이 쓰지도 않는데 6만 원씩 하는 통신비가 아까웠거든요. 알뜰폰 쓰고 절반 정도로 줄었어요.”
    직장인 김모(29) 씨는 1년 전 스마트폰의 이동통신사를 우체국 알뜰폰(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MVNO)으로 바꾼 뒤 월 5만5000원씩 내던 요금이 2만6000원으로 내려갔다. 부가세가 붙어도 3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김씨는 “할부금을 다 낸 단말기를 그대로 쓰니 기기값도 없고 통신비 부담이 부쩍 줄었다. 서비스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알뜰폰의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이 10%를 돌파했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2015년 11월 말 밝힌 알뜰폰 가입자는 584만8000명으로 우리나라 이동전화 전체 가입자 5778만 명의 10.1%를 차지했다. 이 숫자는 공격적인 마케팅은 없었지만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지표다.
    그러나 여전히 알뜰폰의 미래 전망은 조심스럽다. 가입자는 늘었지만 기존 이동통신사와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사업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 품질, 인터넷 속도는 만족

    우리나라만큼 정부가 특정 서비스의 요금을 내리고, 특정 기업의 수익률을 낮추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흔치 않다. 심지어 ‘통신요금 인하’가 십수 년째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등장할 정도다. 이 때문에 온갖 대안이 쏟아져 나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과 알뜰폰이었다. 단통법은 통신사들로 하여금 단말기 보조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붓지 못하게 하고 그 비용을 요금 내리는 데 쓰도록 하는 것이 취지였다. 반면 알뜰폰은 제어할 수 있는 경쟁자를 만들겠다는 목적을 두고 나온 사업이다. 정부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이동통신사들의 요금 인하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뜰폰은 사실 브랜드 이름이고, 실제로는 기존에 깔린 이동통신사업자의 네트워크망을 빌려 쓰는 임대망 서비스를 뜻한다. 다만 이런 기업들이 장점으로 저렴한 요금제를 내세우기 때문에 ‘알뜰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알뜰폰은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화한 서비스다. 망을 자유롭게 빌려 각 사업자가 원하는 요금제와 프로그램으로 통신시장의 틈새를 파고들다 보니 독특한 서비스가 나오고 요금 인하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구글도 망을 빌려서 새로운 형태의 통신시장 진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망을 임대해 쓰면 설비에 돈을 투자하거나 네트워크 관리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어 저렴한 요금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알뜰폰 사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정부도 통신망 재판매가 이뤄지면 통신요금이 전반적으로 내려가리라 판단한 것이다.
    KT에서 월 2만9900원을 받는 ‘데이터선택299’ 요금제는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고, 한 달에 300MB의 LTE(롱텀에볼루션)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CJ헬로모바일은 KT의 망을 빌려 쓰면서 동일한 서비스를 2만8900원에 제공한다. 기존에 갖고 있던 단말기를 쓰면 요금은 월 2만900원으로 내려간다.
    이렇듯 알뜰폰은 요금은 저렴하면서도 통화 품질이나 인터넷 속도의 차이는 없다. 서비스도 대체로 똑같다. 같은 통신사 가입자끼리 통화요금에 혜택을 주는 망내 통화 무제한 같은 요금제도 같은 망을 빌려 쓰는 사업자들은 똑같이 효과를 볼 수 있다. SK텔레콤, 7모바일, 아이즈모바일, 티플러스, SK텔링크 간 통화는 망내 통화로 보는 것이다.
    물론 약점도 있다. 이동통신 3사는 해외에서 하루 1만 원 정도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데이터 로밍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알뜰폰은 이런 서비스가 없다. 업계는 2016년부터 알뜰폰에서도 데이터 무제한 로밍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알뜰폰은 이동통신사 멤버십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가입 이력이 없는 해외 구매 기기 등록 등의 절차도 복잡하다. 알뜰폰 가입자가 직접 망에 단말기 관련 정보를 입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구매한 아이폰으로 VoLTE(LTE 음성통화)를 쓰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용자 대부분은 점점 혜택이 줄어들고 있는 허울뿐인 멤버십 포인트 서비스보다 월 통신요금이 줄어드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다만, 이동통신 역시 어떤 브랜드를 쓰느냐에 대한 막연한 심리적 저항이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알뜰폰 진입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 역시 적잖다. 그래서 점유율 10%의 의미는 매우 크다.
    알뜰폰시장은 상당히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대체로 소규모 사업자가 많고, 기존 이동통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케팅 면에서도 약하다. 무엇보다 알뜰폰은 여전히 단말기 공급에 애를 먹고 있는데, 제조사에서 대량으로 단말기를 구매할 수 없어 최신 스마트폰을 유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단말기에 예민한 가입자는 자연스레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또한 알뜰폰시장을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여전히 이동통신사와 대기업이 있다. SK텔레콤은 SK텔링크, KT는 엠모바일, LG유플러스는 유모비라는 자회사를 통해 알뜰폰시장에 진입한 상태다. 또한 알뜰폰시장 1위는 CJ헬로비전의 헬로모바일이 차지하고 있다. 2위는 SK텔링크인데 80만 명 이상씩의 가입자를 확보해 각각 15% 내외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헬로모바일은 SK텔레콤과의 인수합병까지 검토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각 이동통신사가 자회사를 이용해 알뜰폰시장에 뛰어든 것을 두고도 지금까지 형평성과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만 바라보다 소비자 떠날 수도

    무엇보다 알뜰폰시장의 성장이 정부 주도하에 이뤄졌다는 부분이 알뜰폰 사업자들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정부가 나서서 통신망 도매가격을 조정하고, 미래부의 홍보와 스마트초이스 같은 서비스로 알뜰폰이 알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창직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사무국장은 “10% 점유율은 고무적인 숫자”라고 했지만 “아직 자생력을 갖기에는 정부와 시장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알뜰폰 사업자도 “알뜰폰 성장이 정부 정책의 연속성에 달려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사와의 가격 경쟁이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알뜰폰 사업자들은 정부가 통신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구도를 유지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숙제다. 지금까지 알뜰폰 사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탈률도 그리 높지 않고, 스마트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새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어떤 알뜰폰 서비스와 결합해 써야 가장 저렴한지 논의가 이뤄진다. 이제 만 4년을 넘긴 알뜰폰에게는 본격적으로 시장이 늘어나기 시작한 2012~2013년에 약정 가입한 가입자들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평가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결국 가격과 서비스로 얼마나 만족을 줬느냐가 이들을 떠나가지 않게 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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