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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의 도하일기

‘사막장미’ 개관으로 주목받는 중동의 뮤지엄 경쟁

카타르의 박물관·미술관 공세에 UAE는 루브르와 구겐하임 유치

‘사막장미’ 개관으로 주목받는 중동의 뮤지엄 경쟁

이슬람예술박물관(MIA). [MIA 홈페이지]

이슬람예술박물관(MIA). [MIA 홈페이지]

‘중동의 허브’를 지향하는 작은 반도국가 카타르는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교육 △문화예술 △미디어 △스포츠 등 4개 분야의 발전에 주력해왔다. 카타르는 천연가스(매장량 세계 3위) 판매로 얻은 막대한 ‘가스머니’로 이 분야의 인프라를 늘리고 브랜드를 높이는 데 집중 투자했다. 이는 이웃나라 아랍에미리트(UAE)가 △금융 △물류 △관광 △교통 분야를 중심으로 중동의 허브가 되려는 전략과 차별화된다. 

그 결과, 카타르는 중동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육특구(에듀케이션시티·조지타운대, 코넬대, 노스웨스턴대, 카네기멜론대 등 미국과 유럽의 8개 명문대 국제캠퍼스를 유치)를 조성했다. ‘중동의 CNN’이라는 별명을 얻은 뉴스전문채널 알자지라방송과 스포츠채널 비인(BeIN)도 카타르에서 탄생했다. 중동 국가로는 최초로 월드컵(2022)과 두 번째로 아시아경기(2006)를 유치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선 적극적인 박물관·미술관 설립이 눈에 띈다. 카타르는 역사 유적지나 문명 발생지가 아니다. 하지만 2008년 ‘이슬람예술박물관’(Museum of Islamic Art·MIA)을 개관하며 이집트, 이란, 터키, 이라크 같은 이슬람 문화 중심지의 고대 유물을 대거 확보해 전시하고 있다. 2010년에는 ‘아랍현대미술관’을 만들었고, 2012년에는 중동 국가 가운데 드물게 젊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회도 여는 ‘파이어스테이션 창작소’(소방서 건물을 개조)도 마련했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중동 관련 시장조사와 컨설팅을 하는 GG컨설팅의 박재완 이사는 “나라 크기, 인구와 유적지 수를 고려할 때 카타르만큼 국제적인 뮤지엄을 여러 곳 보유한 중동 국가는 드물다”며 “뮤지엄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인프라 투자는 카타르의 국가 브랜드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MIA’부터 ‘사막장미’까지

3월 개관한 카타르 국립박물관
(NMoQ)과 내부 전시품을 둘러보는 관람객들.독특한 외형이 사막 모래가 뜨거운 지열에 엉켜서 만들어지는 ‘사막 장미’(가운데)를 닮았다. [사진 제공 · ㈜현대건설, 사진 제공 · 걸프타임스, 사이언스포토라이브러리]

3월 개관한 카타르 국립박물관 (NMoQ)과 내부 전시품을 둘러보는 관람객들.독특한 외형이 사막 모래가 뜨거운 지열에 엉켜서 만들어지는 ‘사막 장미’(가운데)를 닮았다. [사진 제공 · ㈜현대건설, 사진 제공 · 걸프타임스, 사이언스포토라이브러리]

그동안 카타르에서 대표 뮤지엄으로 여겨진 곳은 MIA다.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로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를 설계한 I. M. 페이가 디자인한 MIA는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국영 항공사 카타르항공의 TV 광고를 비롯해, 각종 관광 혹은 정부 관련 홍보물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카타르를 여행할 때 ‘꼭 사진을 남겨야 하는 장소’로도 알려졌다. 카타르의 대표 건축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올해 3월까지 이야기다. 카타르 안팎에선 이제 이 나라의 대표 박물관이자 건축 작품은 ‘사막장미(Sand Rose)’라고 입을 모은다. ‘사막장미’는 3월 28일 문을 연 카타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Qatar·NMoQ)의 애칭이다. 모든 게 원형과 곡선으로 이뤄진 독특한 디자인이 사막에서 모래들이 오랜 기간 뜨거운 태양열과 지열에 노출되면서 뭉쳐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덩어리인 사막장미를 닮았기 때문이다. 

카타르 수도 도하의 해변가 도로 한쪽에 자리 잡은 ‘사막장미’는 한눈에 봐도 카타르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316개의 모래 색 디스크(원반)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야트막한 구조의 건물로 주변의 반듯한 고층 건물과 큰 대조를 이룬다. 

내부도 일반 국립박물관과 차이가 있다. 고대 유물이 전시품의 주를 이루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11개 테마로 이뤄진 갤러리에서 카타르의 자연, 원유와 천연가스, 어업 등이 소개됐다. 카타르라는 나라의 특색과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품 전시 못지않게 모형, 그래픽, 영상을 적극 활용한 것도 특징이다. 

보통 국립박물관에선 보기 어려운 동물 뼈와 화석도 있다. 카타르의 땅과 바다에 서식하는 동물이다. 이런 부분에선 자연사박물관 같기도 하다. 1913〜49년 카타르를 다스린 압둘라 빈 자심 알 사니의 궁궐을 둘러싼 형태로 지어진 것도 특징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사막장미’ 관계자는 “국립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건물 디자인과 전시 내용 모두를 차별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카타리(Qatari·카타르인)의 ‘사막장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 ‘사막장미’ 이야기가 나오면 “중동 최고의 건축물” “카타르의 새로운 자랑거리”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실제로 “사막장미를 시공한 건설사가 한국 기업(현대건설)”이라고 말을 건네면 바로 ‘아이스 브레이킹’ 효과가 발생한다.


국가 자존심 걸린 뮤지엄 경쟁

아랍현대미술관.(왼쪽) 루브르 아부다비. [아랍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동아DB]

아랍현대미술관.(왼쪽) 루브르 아부다비. [아랍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동아DB]

카타르가 독자적인 국정운영(이란과 우호적인 관계, 주변국 정권에 비판적인 알자지라방송 등)으로 2017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이집트 등 주요 아랍 국가로부터 단교를 당한 뒤 ‘박물관 경쟁’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사막장미’ 개관에 앞서 단교 주도국 중 하나인 UAE의 아부다비에 루브르박물관 분관인 ‘루브르 아부다비’(2017년 11월)가 문을 연 것과 연관이 깊다. 아부다비에는 앞으로 구겐하임미술관과 자이드국립박물관도 문을 열 예정이다. 중동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허브를 지향하는 두 나라의 ‘뮤지엄 프로젝트’가 계속 비교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 공보부 관계자는 “카타르는 해외 유명 뮤지엄을 도입하는 것 대신 직접 뮤지엄을 기획해 운영 역량을 키워왔다”며 “이 과정에서 이슬람권과 아랍권을 대표하는 고대와 현대 미술품을 전시해왔다”고 말했다.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의 여동생이자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알 사니가 카타르박물관청을 이끌며 관련 정책 전반을 지휘하는 것도 화제다. NMoQ의 관장도 왕실 구성원인 암나 빈트 압둘아지즈 알 사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쿠웨이트, 오만, 사우디 같은 주변 나라들도 박물관 건립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나라들도 모두 최근 관광·문화 산업과 인프라 개발 투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변화와 경쟁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9.05.03 1187호 (p48~50)

  •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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