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드라마셀러 지고 유튜브셀러 뜨네

유튜브 덕에 베스트셀러 된 책 속출…비싼 협찬비에 영세 출판사들 ‘한숨’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5-07 09: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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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캡처]

    [유튜브 캡처]

    “이 책 읽으면서 내가 세 번 울었어요. 너무 고마워 쫓아가서 밥이라도 사고 싶은데, 미국이라서 못 가.(웃음) 여자라면 꼭 읽으세요.” 

    유명 강사인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미경TV’의 한 코너 ‘북드라마’가 최근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떠오르고 있다. 3월 20일 위와 같은 멘트와 함께 소개된 오프라 윈프리의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북하우스)은 단숨에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4월 첫째 주 기준). 여세는 이어져 방송 한 달이 지난 4월 넷째 주에도 종합 11위를 지키고 있다. 출간된 지 5년이 된 책이 유튜브 바람을 타고 화려한 역주행에 성공한 것. 김미경TV는 63만 명이 구독하고, 해당 영상은 25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북하우스 관계자는 “유튜브에 소개된 이후 한 달간 2만 권 넘게 팔렸다”고 밝혔다.

    한 달 새 2만 권 이상 팔려

    김미경TV가 낳은 베스트셀러는 더 있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더퀘스트)와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가 예스24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각각 14위와 15위를 차지하고 있는데(4월 넷째 주 기준), 이 책들도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서 4월에 소개한 것이다. 문학동네는 아예 ‘김미경TV 극찬! 

    <걷는 사람, 하정우>’란 문구로 인터넷서점 등에서 연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 소개되고 사나흘 만에 일간 판매량 기준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다. 이처럼 급속한 판매량 증대는 예상 밖이라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김미경 효과’가 시장에서 바로 나타나자 김미경TV에는 출판사들의 책 소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김미경TV는 요청 들어온 책 가운데 소개할 책을 선정한 뒤 해당 출판사로부터 협찬비를 받는다. 김 대표가 직접 책을 읽고 영상을 제작해 공개하기까지 2~3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신·구간을 구별하지 않고 책을 보내온다고 한다. 김미경TV 관계자는 “하루 평균 20권가량의 책이 들어와 김 대표가 책을 선별하는 데 매일 평균 두세 시간씩 쓸 정도”라고 전했다. 



    한때 드라마셀러가 강세였으나 최근엔 유튜브셀러가 뜨고 있다. 2013년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비룡소)이 등장하자 보름 만에 5만 부가 팔려나간 사례에서 보듯, 그간 드라마에 책을 노출하는 것은 베스트셀러를 낳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 덕에 드라마 간접광고비가 가파르게 올라 수억 원을 호가하게 되자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출판사들이 유튜브 마케팅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김미경TV의 ‘북드라마’와 ‘겨울서점’ ‘책읽찌라’ 등 책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일명 북튜브뿐 아니라, 다수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브 채널에도 책 소개를 의뢰한다. 

    수요가 늘면 비용도 증가하는 법. 출판계에 따르면 1~2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 원에서 비싸야 100만 원대이던 협찬비가 최근 들어 수백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고 한다. 김미경TV가 받는 협찬비는 권당 5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출판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김모 씨는 “구독자가 100만 명에 가까운 인기 채널의 경우 2000만 원까지도 요구한다”고 전했다. 

    갈수록 비싸지는 ‘북튜브 마케팅’을 바라보는 출판업계 시각은 둘로 나뉜다.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출판사는 드라마 PPL(간접광고)보다 저렴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괜찮은 유튜브를 내심 반긴다. 한 대형출판사 편집자는 “유튜브 마케팅을 한두 번 진행해본 상태라 단언할 순 없지만, 유튜브가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 광고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 유튜브 인기 동영상은 오랜 기간 꾸준히 소비된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편집자는 “좋은 책이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 잊히는 경우가 많은데, 유튜브 덕분에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출판업체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유튜브 채널 운영자 입장에서도 영상을 제작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데 경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협찬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시각도 있다.

    협찬 사실 알리는 데 ‘소극적’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북하우스)과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더퀘스트),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북하우스)과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더퀘스트), ‘걷는 사람, 하정우’(문학동네).

    하지만 유튜브 마케팅 비용이 부담스러운 소규모 출판사는 출판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랫동안 출판 영업 일을 해온 구모 씨는 “유튜브 채널에 500만~700만 원을 집행하려면 전체 마케팅 비용이 3000만 원가량 돼야 한다. 마케팅 효과를 고려해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와 저자 강연회 등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출판시장이 더욱 악화되면서 이 정도 비용을 집행할 수 있는 출판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유튜브가 베스트셀러 제조기가 될수록 작은 출판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몇몇 유튜브 채널이 돈을 받고 책을 추천하는 것은 대형서점이 돈을 받고 서점 매대를 판매하는 것과 같다”며 “대형서점의 매대가 좋은 책이 아니라 출판사가 판매하고 싶어 하는 책으로 채워져 출판시장을 왜곡했듯, 유튜브도 그럴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많은 유튜브 책 소개 동영상이 출판사로부터 협찬비를 받고 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예 감추거나, 소극적으로만 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영상에는 협찬 사실을 표시하지 않고, 영상과 별도로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는 공간에 ‘◯◯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상입니다’ ‘Sponsored by ◯◯’ 같은 식으로만 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구는 일부러 찾아봐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동영상만 보는 유튜브 시청자는 이러한 책 소개 동영상들을 협찬이 아닌 순수한 독서 후기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인기 유튜버가 ‘내가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다’ 혹은 ‘유익하다’고 소개해야 구독자들이 반응하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도 협찬 사실을 널리 알리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구독자 신뢰 잃으면 ‘영향력’ 지속 못 해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왼쪽). 유튜브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영향을 끼치는 추세다. 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은 협찬 받은 사실을 영상에 고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유튜브 캡처]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왼쪽). 유튜브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영향을 끼치는 추세다. 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은 협찬 받은 사실을 영상에 고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유튜브 캡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협찬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것을 ‘기만적 표시·광고 행위’(‘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1항 2호)로 보고 제재한다. 공정위는 2015년 인터넷 블로그를 대상으로 이러한 행위 실태를 조사해 광고주에는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하고, 해당 블로그 명단을 포털사이트에 통보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공정위는 현재 인스타그램을 대상으로 기만적 표시·광고 행위 실태 조사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공정위 소비자안전정보과 관계자는 “유튜브 역시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은 협찬 사실을 제대로 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출판계는 유튜브의 베스트셀러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고도 본다. 파워블로거의 책 리뷰가 협찬에 ‘오염’된 것임이 알려진 이후 구독자들이 더는 블로그 책 리뷰를 믿지 않게 됐듯 유튜브 역시 같은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구씨는 “책은 장난감이나 정보기술(IT) 제품과는 속성이 다르다. 독자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추천한 콘텐츠와 협찬받아 만들어낸 콘텐츠를 금세 구별한다. 블로그 마케팅이 오래가지 않았듯 유튜브 마케팅도 그럴 수 있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단박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몇몇 책을 제외하면 유튜브 마케팅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울뿐더러, 한 번에 수백만 원을 들였음에도 해당 책이 단시일 내 2000권 이상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로서는 유튜브 마케팅에 비용을 지출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은 5월 현재 구독자 10만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겨울서점은 협찬받아 제작하는 영상을 20% 이하로 제한하고, 협찬받은 사실을 영상에서 밝힌다. 유튜브는 동영상 자체에 ‘유료광고 포함’을 표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겨울서점은 이 기능도 사용한다. 운영자 김겨울 씨는 “구독자는 대부분 내가 직접 읽고 좋아서 소개하는 책들을 좋아해주는 이들”이라며 “협찬받는 영상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고 협찬 사실을 명확하게 고지하는 이유는 이러한 구독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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