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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뇌물 혐의 무죄 박찬주 전 대장

"지금 군은 군이 아니다"

“전작권 환수는 안보 모르는 허상…행정화돼 바른말 못 하는 군 문화 안타까워”

"지금 군은 군이 아니다"

[이정훈 기자]

[이정훈 기자]

4월말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박찬주(61) 예비역 대장(사진)이 최근 동기와 후배들에게 e메일로 전한 뒤늦은 전역사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군 내부에선 “감동적이다” “군의 본분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가 적잖다. 그를 5월 1일 인터뷰했다. 갑질 논란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는 그에게 우리 군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묻자 긴 답변이 이어졌다. 천생 군인인 그는 자신의 고초보다 군에 대한 걱정이 더 큰 듯했다. 그는 독일 육사에서 3년, 고등군사반과 지휘참모대에서 각 1년 반씩, 교관으로 3년 등 도합 9년을 지내 독일군 사정에 정통하다. 그는 독일 육군의 사례를 들며 우리 육군의 문제점과 국방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의 허상에 대해 언급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그의 육사 동기인 박지만 씨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독일 육군에는 우리의 1·3군이나 2작전사령부 같은 야전군뿐 아니라 군단도 없다. 왜 그런가. 

“1945년 패전한 서독은 군대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6·25전쟁을 계기로 동서 냉전이 심해지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을 통해 서독 방어를 책임지던 미국이 1955년 서독군 창설을 허용했다. 1000여km의 서독 전선을 방어하는 데 큰 부담을 느낀 것이다. 그러자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독일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 벨기에 등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때까지 서독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의 부대들이 배치돼 소련 주도의 WTO(바르샤바조약기구)군을 막고 있었다. 미군은 서독군을 활용해 NATO군 전력을 증강하면서도 동맹국의 우려를 불식하고자 서독이 자국 사단을 지휘통제할 수 없도록 했다. 냉전기 서독 육군 지휘부는 NATO군에 병력과 물자를 제공하는 역할만 해 사단급까지만 보유했다. 또 프랑스, 스위스 등과의 국경에는 부대를 두지 못하고, 동독을 비롯해 WTO군을 마주한 곳에만 부대를 두어야 했다. 서독에서는 미 7군이 서독군을 포함한 전체 NATO 육군을 지휘하는 유일한 야전군이었다. 당시 서독 육군총장 계급은 중장에 불과했다.”


평시에도 전시를 상정하고 훈련해야

2017년 8월 8일 당시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8월 8일 당시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된 지 30년 가까이 된 지금 독일군은 전작권을 갖고 있는가. 

“독일 육군은 지금도 독일군만으로 이뤄진 군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독일 방어는 여전히 미 7군이 지휘하고 그 밑에 독일-폴란드 군단, 독일-프랑스 군단, 독일-미국 군단 같은 연합군단만 있다. 군단장은 폴란드 중장이 3년 하면 독일군 중장이 3년 하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통일 후에도 여전히 연합군 체제라 전작권을 환수했다고 할 수 없다.” 

유럽 냉전 종식 후 EU(유럽연합)도 군을 갖게 됐다. 이는 자주권 회복 차원에서 유럽이 전작권을 환수한 것 아닌가. 

“그것은 EU군의 독립은 될 수 있어도 독일군의 독립은 아니다. 독일군은 NATO군과 함께 EU군의 작전통제도 받게 됐기 때문이다. EU군에는 미군이 없어 전력은 NATO군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책임지역도 EU로 한정돼 있다. 독일 사단들은 EU군의 지시가 있으면 그에 따른 작전이나 연습을 하고, NATO군의 결정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파병한다. EU군과 NATO군은 사전 조율을 한다. 그런데 EU군도 궁극적으로는 미군이 이끄는 NATO군의 통제를 받는다.” 



프랑스가 NATO군에서 탈퇴한 후에도 독일은 독불여단(獨佛旅團)을 유지하고 있다. 독불여단에 있는 부대라면 독일이 전작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 않은가.
 
“프랑스는 NATO군을 탈퇴했어도, 유고 사태 등에서 보듯이 NATO군 작전에는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한 독일과 프랑스가 독불여단을 만들었다는 것이 우리 시각에선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독불여단은 독일과 프랑스의 안보를 위한 작전에만 투입되는데, 양국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독일이 전작권을 가져왔다고 할 수는 없다. 독일의 침공을 많이 받은 폴란드는 NATO에 가입한 후 독일-폴란드 연합군단을 운용하고 있다. 독일-폴란드 관계는 한일관계와 비슷하다. 우리가 일본과 연합군단을 만들어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게 할 수 있을까. 통일했다고 무조건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정치와 안보시스템을 모르는 발상이다.” 

1994년 우리는 독일식 평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평시작전통제권(평작권)을 환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평작권과 전작권을 나누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하는 이가 많다. 

“군은 평시에도 전시를 상정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시작전도 결국 전시작전의 일부다. 분대급 이상의 제대는 ‘반드시’ 작전통제권을 가진 상위 사령부의 승인과 통제 아래 움직인다. 이러한 통제를 평작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제 목적이 전복(쿠데타)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평작권과 전작권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한국군은 대(對)간첩작전이나 재난구호 등을 평작권 개념에서 운용한다. 그러나 대간첩작전은 경찰, 재난구호는 소방청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군 본연의 임무는 아니다. 독일 육군은 이러한 작전은 하지 않으니 평작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 평작권을 환수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전시를 상정한 훈련과 준비는 여전히 연합사령관 측에 맡겨놓고 있다. 우리의 평작권 환수는 ‘무늬만 환수’인 것이다.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눈 것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작권 환수는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

독일 통일은 서독군이 동독군을 무장해제함으로써 이뤄졌다. 서독군이 동독군 무장해제를 위해 동독으로 들어가자, 소련은 ‘NATO군의 일원인 서독군이 동독으로 들어오는 것은 침공이다. WTO군도 조약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항의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NATO군 사령부가 아닌 서독 육군본부의 지휘 아래 서독 사단이 들어가 동독군을 무장해제하기로 하면서 평작권 개념을 만든 것으로 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는 1994년 통일에 대비한다며 평작권을 환수했다. 

“서독군이 동독군을 무장해제한 것 때문에 한국에서는 평작권의 의미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된 측면이 있다. 동독은 서독에 비해 국력이 달렸기에 냉전기에 38만 명의 소련군이 주둔했다. 독일 통일은 사실상 경제난에 처한 소련이 소련군을 철수시키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양독(兩獨)조약에 따라 동서독이 통일에 합의하자, 서독은 평작권 개념을 만들어 동독군을 무장해제했다. 이 과정은 전형적인 흡수통일이었다. 평화통일이라면 동·서독군이 일대일로 하나가 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독군은 대령 이상의 동독 군인은 전부 퇴역시키고, 중령 이하 장교들은 1·2계급 강등하는 조건으로 선별해 받아줬다. 특히 정치군관이나 정훈군관, 정보 분야 군관은 일절 받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평화통일은 많이들 얘기해도 남북한군을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해서는 말하는 이가 없다. 낭만적인 통일론에 젖은 이들이 평작권을 환수했으니 전작권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자는 꼴이다.”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도 합참 주도로 전구(戰區)급 연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키리졸브나 독수리훈련 같은 한미연합훈련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태극과 호국훈련이 합참 주도의 훈련인데, 그 훈련도 미군 참여를 전제로 한다. 미군이 이런 전력을 보내줄 것으로 가정해놓고 작전계획을 짜 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이 틀리면 쓸데없는 훈련을 하는 셈이다. 전쟁은 좀 더 많은 전력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쪽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해야 승리할 수 있다. 지금 정부는 한국군 대장이 한미연합사령관을 맡도록 국방개혁을 하려 한다. 그런 상태에서 전시를 맞으면 미군이 어떤 전력을 동원할지 한국인 연합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계속 물어보면서 작전계획을 짜야 한다. 그사이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버린다. 나 같은 군인은 자존심이 있다. 그런데도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방위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접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지는 길은 가고 싶지 않다.” 

독일 육군은 기동력을 강조한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 하인츠 구데리안과 에르빈 롬멜이 전격전(電擊戰)을 구사해 프랑스와 소련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미군도 이를 받아들여 입체고속기동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지금도 독일 육군은 기동부대 위주인가. 

“통일 전 독일 육군은 12개 상비사단을 갖고 있는데 기계화사단과 기갑사단이 각각 5개, 산악사단과 공정사단이 각각 1개였다. 산악사단과 공정사단은 특수부대에 가까우니, 독일 육군 사단 전부는 기동부대와 마찬가지다. 독일 육군은 양병권(養兵權)을 활용해 미국 사단에 버금가는 강력한 기동부대를 만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나치 시절은 부정하지만, 전격전의 개념만큼은 철저히 이어가고 있다(통일을 완수하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독일 육군은 징병제를 폐지해, 2개 기갑사단과 1개 신속대응사단으로 크게 축소돼 있다. 독일 통일을 보장한 독일 통일조약이 강력하게 감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조약에 따라 통일 전 50만이던 서독군은 지금은 18만으로 줄어 있다).” 

수도방위사령부를 더하면 한국 육군은 10개 군단을 갖고 있지만 기동부대는 7군단 1개뿐이다. 그런데 7군단에는 기갑사단이 없고 기계화사단만 있다. 최근에는 전방군단에도 기계화사단을 배치해 기동을 강화했지만, 기갑전력은 여전히 미력하다. 박 장군은 기갑 출신으로 7군단장을 거쳐 대장이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입체고속기동전을 강조하는 우리 육군은 왜 기동부대를 키우지 않는가. 

“베트남전쟁 이후 싸워보지 못한 행정 군대로 지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매년 육군은 5명을 군단장으로 진급시켜 내보내는데, 그때마다 작전 출신은 3명, 비(非)작전 출신은 2명을 선발해왔다. 그런데 비작전 출신을 전방 군단장에 임명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그들 중 1명을 7군단장에 임명했다. 이것이 전통이 돼 유사시 가장 강력한 돌파작전을 해야 하는 부대에 기갑은 물론이고, 기계화보병 출신도 군단장을 하기 어려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개혁하려면 이런 것부터 바꿔야지 무슨 전작권 환수냐.” 

7군단이 돌격한다면 이들이 사용할 무기와 식량의 보급이 매우 중요해진다. 미군 전투부대에는 그에 버금가는 규모의 군수지원부대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우리 육군은 사단 하나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할 군수지원부대를 10여 개 사단으로 구성된 야전군 지원용으로 배정해놓고 있다. 북진을 해야 하는 7군단에는 아예 그런 부대도 없다.


“육군 족보가 ‘개족보’가 돼 버렸다”

1977년 3월 2일 육사 입교식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녀인 근혜, 근령과 함께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입교식 후 학교 식당에서 아들 지만(테이블 왼쪽 줄 두 번째) 및 다른 신입 생도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들이 육사 37기생이다. [동아DB]

1977년 3월 2일 육사 입교식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자녀인 근혜, 근령과 함께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입교식 후 학교 식당에서 아들 지만(테이블 왼쪽 줄 두 번째) 및 다른 신입 생도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들이 육사 37기생이다. [동아DB]

“바로 짚었다. 7군단이 진격하면 군수지원부대는 그 부대가 돌격한 깊이만큼 들어가 보급을 해주고 돌아와야 하니 2배로 바빠진다. 군수지원부대를 키우지 않고 전투부대만 양성하는 것은 식량과 실탄 없이 싸우라는 얘기와 같다.” 

박 장군은 박지만 씨와 같은 육사 37기다. 박근혜 정부 시절 37기는 역대 최다인 8명이 중장에 진급했고, 박 장군 등 3명은 군사령관(대장)이 됐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모두 전역했다. 


“육사에 가서 지만 씨와 동기인 것을 알았다. 생도 때 야외훈련을 나가면 그 지역 사단에서 통닭을 제공하는 등 대접을 잘 받았다. 이 때문에 35, 36기가 우리를 미워했다. 박근혜 정부 때 주목받았던 37기는 정권이 바뀌면서 다 날아갔다. 36기가 하던 총장을 39기가 하게 됐다. 그리고 야전이 아니라 정책만 해온 ‘아스팔트 군인’과 비육사 출신이 우대되고, 서열이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육군 족보가 ‘개족보’가 돼버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작권 환수 등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가 연이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1977년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자, 미 8군 참모장인 존 싱글러브 소장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정면으로 카터를 비판했다. 정치군인이 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안보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군인답지 않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우리 군에서는 왜 말이 없나. 

“부끄럽다. 군이 행정화된 지 오래라 그런 것 같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빈소에는 대령 1명과 중령 2~3명이 조문을 왔었다고 들었다. 기무부대를 통해 모종의 압박이 내려갔기 때문에 장군은 전혀 가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그때 합참의장과 3군 총장은 조화 보내는 것을 놓고 회의까지 했다고 한다. 행정화된 우리 군을 바꾸기 위한 ‘자극’으로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개혁은 하지 않고 전작권만 환수해야 한다는 소리만 무성해졌다. 일본 자위대가 그렇게 갖고자 하는 연합사 체제를 무너뜨리려 하는데도 말이 없다. 군이 군이 아니다.”


“부하 고충 해결하지 못하면 부대를 어떻게 지휘하나”
재판에 대한 소회 밝혀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박찬주 예비역 대장은 완벽하게 무죄를 선고받지 못했다. 2심은 그가 인사청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은 금품수수는 없었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이라고 봤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역을 1년 반 남긴 장교였다. 아버지는 폐가 상해 누워 지냈는데, 간호하던 모친도 고관절을 다쳐 함께 자리에 눕게 됐다며 부모님이 계시는 곳 근처에서 근무하게 해달라고 했다. 군 통신망을 통한 공개된 요청이었기에 참모진에게 검토하게 한 후 들어줬다. 그와 식사한 적도 없는데, 법원은 이를 인사청탁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어떤 지휘관도 부하의 고충을 들어줄 수 없다. 부하의 고충을 해결해줘야 지휘를 할 수 있는데…. 그 장교의 모친은 내 소식을 듣고 자신을 탓하며 울기만 했다고 들었다” 

그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토마토와 파전 등을 던졌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가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웠고, 공관에 있던 냉장고 3대를 집으로 가져갔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을 잘 못해서 내보낸 공관병도 있다. 처는 가끔 공관에 왔는데 위생 문제를 지적했던 모양이다. 사령관이 제시간에 퇴근해야 부하들도 퇴근할 수 있다. 그래서 처리하지 못한 서류는 공관에 가져가 살펴보고, 마치면 벨로 공관병을 불러 가져가게 한다. 이를 위해 공관병들은 수신벨 근처에서 교대로 대기했다. 이를 지켜본 공관 담당 장교가 음식점 종업원처럼 손목에 호출벨 수신기를 차면 굳이 수신벨 근처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해 바꾼 것인데, 그것이 위치를 추적하는 전자팔찌로 둔갑했다. 집에 가져갔다는 냉장고는 우리가 산 것이다. 어렵게 자료를 찾아내 구매 사실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박 전 장군이 공관병에게 갑질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곳은 군인권센터였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군대 갑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고, 군 검찰은 박 전 장군을 형사입건했다. 군 검찰은 갑질 의혹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처리했고, 그 대신 별건으로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런 사태가 부덕(不德)의 소치인지, 누군가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간동아 2019.05.03 1187호 (p8~12)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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