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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관사는 필요할까

구시대 유물 취급받아도 어디선가는 관사에 세금 붓는 중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5-06 09: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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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왼쪽)과 부산 남천동 부산시장 관사. [SBS 비디오머그, 동아DB]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왼쪽)과 부산 남천동 부산시장 관사. [SBS 비디오머그, 동아DB]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후 대대적인 공관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당시 대법원은 “공관을 지은 지 39년이나 돼 3부 가운데 하나인 사법부 요인의 공관으로서 상징성과 보안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회에는 ‘외국과의 사법교류가 활발해져 연회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증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예산을 신청했다.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은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1300㎡(약 390평) 규모다. 리모델링 예산은 약 16억6000만 원. 진입로 공사를 빼고 집에만 들어간 예산은 11억 원이다. 이 중 7억8000만 원이 건물 벽 마감 공사에 쓰였다. 벽돌이던 마감재를 고급 석재인 라임스톤으로 바꾼 것. 따라서 연회장에 들어간 비용은 3억2000만 원 미만이다. 연회장이 외교 목적으로 사용된 적은 거의 없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0월부터 1년간 대법원장 공관 만찬 행사 25회 중 24회가 판사와 법원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공관 리모델링 예산도 처음에는 16억6000만 원이 아니었다. 대법원은 공관 리모델링에 15억55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는 9억9900만 원으로 깎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곳에 쓰려 했던 예산을 리모델링으로 돌렸다. 

    대법원은 사실심(1, 2심) 충실화 예산에서 2억8000만 원, 보안검색 장비 등 법원시설관리 예산에서 1억9000만 원을 줄이고 리모델링 비용으로 바꿨다. 대법원장 공관 개·보수는 최근 5년간 잦았다. 2014년 3억9000만 원, 2015년 6200만 원을 들여 개·보수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공관 예산 문제를 지적했고, 감사원은 3월 21일 대법원에 대한 재무감사에 들어갔다. 

    부산시장 관사는 음향 장비와 미술작품이 문제가 됐다. 오거돈 시장이 관사에 입주한 이후 턴테이블과 튜너에 179만 원, 앰프와 스피커에 867만 원 등 1000만 원 넘는 예산을 썼다. 부산시장 관사는 수영구 남천동에 있으며 부지 1만7975㎡(약 5440평)에 관사 규모는 1326㎡(약 400평)이다.



    관사 증축·관리 핑계로 호화롭게 치장

    관사의 관리 예산은 통일된 제한 규정이 없다. 먼저 대법원장 공관은 법원 관사 관리내규를 따른다. 해당 규정 제9조는 관사 운영비는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관사의 신·개축과 증축, 대규모 공작물과 시설 설비의 교체 및 수선비는 사법부 예산으로 집행할 수 있다. 전기, 통신, 조명, 소방 설비 관련 비용은 각급 법원에 재배정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 

    부산시장 관사 관리 규정은 ‘부산광역시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조례’에 있다. 대법원장 공관과 달리 응접세트, 커튼 등 기본 장식물과 TV 시청료도 예산에서 지원한다. 하지만 고액 음향 장비에 관한 규정은 없다. 

    예산 제한 규정은 ‘국유재산법 시행령’ 하의 ‘공무원 주거용 재산 관리 기준’에 따른다. 이 기준 제22조는 주거용 재산의 노후화로 안전에 지장이 있거나, 기본 설비에 이상이 있는 경우만 관리 기관이 보수유지비를 부담한다. 그러나 역시 예외 조항이 있다. 비용 부담의 주체가 불분명하거나 이 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내역은 관계 법령과 사회 통념에 따른다. ‘사회 통념’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따라 예산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관사에 관한 예산을 제한하는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각 부처에서 과한 예산을 올리면 국회나 기획재정부에서 이를 기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이 부산시립미술관에 있는 작품 10점을 관사로 대여하고 주말에는 시민의 관사 인근 공원 입장을 막고 있다. 부산시는 관사를 외교 용도로 사용한다지만 지난해 9월 부산 주재 외국공관장 초청 간담회를 제외하고는 7개월간 외교 공간으로 활용된 실적이 없다. 

    오 시장은 후보 시절 시민에게 관사를 개방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당선 후 관사에 입주했다. 부산시장 관사의 연 유지비는 1억8000만 원이다.

    인천·울산·대전·충남북·제주는 시민개방

    자치단체장 관사는 주민 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추세다. 충북도지사 관사는 2012년 충북문화회관으로 바뀌었다. 제주도지사 공관은 2016년 어린이도서관 ‘꿈바당’이 됐고, 제주교육감 관사는 같은 해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인천시장 관사는 2001년부터 인천시 역사자료관으로, 울산시장 관사는 1996년 국공립 어린이집이 됐다. 충남도지사, 대전시장의 관사도 전부 어린이집이 됐다. 이 같은 추세는 행정안전부가 2010년 관사 폐지를 권고한 ‘자치단체장 관사 운영 개선방안’을 내놓자 가속화됐다. 

    단체장 관사가 남아 있는 시도는 서울, 부산, 경남, 경북, 경기, 강원이다. 경남도지사 관사는 홍준표 전 지사가 4억2700만 원을 들여 새로 지었다. 경기도지사 공관의 경우 남경필 전 지사가 근린생활시설인 ‘굿모닝하우스’로 바꿔 도민에게 개방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는 공관에 입주할 계획이다. 현재 굿모닝하우스를 다시 공관으로 용도변경하고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역사가 깊은 북미, 유럽 국가는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을 위한 관사를 따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군 지휘관에게만 관사를 제공한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직업군인을 대상으로 관사를 운영한다. 정부가 새로 짓기보다 대부분 민간 임대를 활용한다. 

    중국,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관사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현지 아파트 시세를 감안해 임차료를 지원한다. 공무는 주변의 관영 호텔을 이용한다. 일본은 총리 관사 등 장관과 일반직 공무원의 숙소를 법에 따라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관사 사용 여부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지자체장 관사는 사라지는 추세다. 중앙 공무원이 지방으로 파견될 경우 관사를 사용하지만, 현지에 거주하거나 따로 머물 곳이 있다면 굳이 관사를 고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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