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美 금리인상에 휘청이는 신흥국

부도 도미노 가능성…베네수엘라 0순위, 브라질·남아공·터키 등도 위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12-29 13: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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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선 최근 들어 어느 상점에 가든 생필품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장지, 식용유, 세제, 기저귀 같은 생필품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할 정도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200%에 달한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화폐인 볼리바르가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해온 베네수엘라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락과 중국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베네수엘라 등 신흥국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년 만에 단행한 금리인상과 달러화 강세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베네수엘라는 재정수입의 75%, 수출의 95%를 석유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수출액이 크게 감소하면서 외환보유고가 월 10억 달러씩 줄어들어 현재 120억 달러(약 14조 원)밖에 되지 않는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베네수엘라를 디폴트 가능성이 있다는 Caa3 등급으로 강등했다. 베네수엘라의 현재 상황은 19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 당시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아르헨티나(1995), 태국·필리핀·대만·한국(1997), 러시아·브라질(1998)로 외환위기가 이어졌다. 만성적 경상적자와 핫머니 유입에 시달리던 산유국 멕시코는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고 외국인 단기자금이 빠져나가자 디폴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은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 동안 금리를 세 차례 올렸는데 그중 두 번이나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1994년 금리인상으로 촉발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4년 금리인상에서 비롯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정치 파동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

    이런 전례 때문에 부도 위험이 높은 상당수 신흥국이 벌벌 떨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저금리정책으로 고수익을 좇는 외국인 자금이 몰려오자 외화표시채권을 대거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온 이들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2016년부터 채권 만기를 맞이해 원리금 상환과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또 달러화 강세로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만기가 도래하는 신흥국들의 외화표시채권은 2015년 3450억 달러(약 404조5000억 원)에서 2016년 5550억 달러(약 650조7000억 원)로 늘어난다. 2017〜2019년에는 연간 평균 49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신흥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모두 3조5100억 달러(약 4114조70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신흥국 가운데 부도 위험이 높은 국가는 베네수엘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레이시아, 터키, 러시아, 칠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브릭스(BRICS) 5개국 가운데 브라질, 남아공, 러시아 3개국이 부도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2015년 12월 16일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미 2015년 9월 브라질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한 바 있다. 브라질 경제는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과 재정 악화 등으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2015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5%를 기록했다. 이는 통계치를 발표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최악이다.
    6분기 연속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경기 침체와 부패 스캔들에 휩싸여 탄핵 위기에 몰린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2015년 12월 18일 경제팀 교체라는 카드로 위기 탈출에 나섰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조아킹 레비 재무부 장관 후임으로 넬송 바르보자 기획예산부 장관을 기용했지만 오히려 통화·채권·주식 가격이 동반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고강도 긴축정책을 강조했던 레비 전 장관과 달리 유연성을 강조해온 바르보자 장관이 임명되자 시장이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고래 싸움에 터져나가는 새우등

    현재 브라질 재정적자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들어 헤알화 가치는 달러 대비 31% 하락했고 물가는 12년 만에 최고치다. 브라질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달러 부채가 많다. 달러 빚이 3220억 달러(약 380조 원)에 달한다.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 부채를 감당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남아공도 마찬가지다.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중은 2008년 말 27%에서 2015년 50%로 급증했다. 인당 GDP도 2011년 8089달러(약 947만8000원)에서 2015년 5783달러(약 677만6000원)로 줄어들었다. 아프리카 최대 경제대국인 남아공은 브라질처럼 원자재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2015년 3·4분기 성장률이 0.7%에 그쳤다.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2015년 들어 달러화 대비 랜드화 가치는 24%로 떨어졌다. 특히 남아공은 세계 최대 외부자금조달 국가 가운데 하나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451억 달러(약 52조8000억 원)에 달하지만 달러화 약세 때 많은 빚을 끌어다 썼다. 게다가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일주일 사이 두 차례 재무부 장관을 교체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러시아도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고 달러화 부채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 기업 부채는 7420억 달러(약 869조4000억 원)이고 이 중 29%가 달러 빚이다. 브릭스 국가는 아니지만 터키도 자칫하면 외환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터키의 단기부채는 GDP의 8%인 1250억 달러(약 146조4000억 원)나 된다. 터키 리라화 값은 20.8%나 하락했다
    신흥국들의 부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금리인상에 맞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세계경제에 불안감을 증폭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자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원자재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달러화 유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몸살을 앓는 신흥국들은 또 다른 짐을 떠안게 된 셈이다. 신흥국들은 이미 중국의 경기 둔화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 싸움에 신흥국들의 등이 터질 수 있다. 신흥국들이 디폴트에 빠지면 세계경제에 자칫 ‘퍼펙트 스톰’(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는 최악의 상황)이 몰아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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