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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산유국 꿈꾸는 평양 걸림돌은 베이징?

북·중 관계 숨은 뇌관 서해 원유…해상경계 맞물려 관심 증폭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산유국 꿈꾸는 평양 걸림돌은 베이징?

산유국 꿈꾸는 평양 걸림돌은 베이징?

북한 현지에서 석유 탐사작업을 진행했던 지질학자 마이크 레고 씨가 2015년 9월 석유 분야 지구과학 전문지 ‘지오엑스프로(Geo ExPro)’에 공개한 보고서(위). 북한과 중국 사이 서해 위성사진.

5점1선(五點一線). 리커창 중국 총리가 랴오닝성위원회 당서기로 일하던 2000년대 중반 수립한 랴오닝성 해안 경제개발 프로젝트다. 중국 동북지역 최대 항구도시인 다롄을 중심으로 잉커우, 진저우, 후루다오를 지나 신의주와 마주 보는 단둥까지 5개 도시를 하나의 선으로 잇는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지린성이 추진하는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두만강) 프로젝트와 이으면 동북지역을 상전벽해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평안도와 황해도 사이, 서한만

흥미로운 것은 이 5점1선 프로젝트의 주요 거점에 원유정제시설 등 석유산업 인프라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는 것. 조선업 관련 항만 구축과 함께 원유산업단지가 양대 축으로 꼽힐 정도다. 수입 석유를 대부분 중동에서 동남아 앞바다를 거쳐 들여오는 중국의 에너지 물류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만 놓고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청사진이다. ‘다른 고려’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이유다.
동용승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답은 하나다. 중국 역시 서해 대륙붕에 대규모로 묻혀 있다는 원유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북한과 중국 사이 보하이해 아래 매장된 원유를 끌어올리기 시작하면 인접한 랴오닝성은 순식간에 석유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 뒤집어보자면 중국 정부가 내심 서해 원유개발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는 시그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중국 측 인사들 역시 적잖을 정도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전포석인 셈이다.
‘북한이 산유국이 된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려온 평양 권력자들에게 이는 오랜 꿈이자 ‘공화국의 미래’를 여는 장밋빛 로드맵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조선노동당 6차 당대회를 통해 원유개발 문제를 언급한 게 벌써 36년 전 일. 서해 유전개발권을 둘러싸고 북한과 중국이 사활을 건 암투를 벌이는 2권 분량의 장편 첩보소설이 국영 출판사를 통해 유통됐을 정도다.
북한과 중국의 오랜 긴장관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다. 국력이나 지정학적 위치, 국제정치 판도로만 보면 북한이 사실상 중국 속국으로 전락해야 맞는데도, 냉전 종식 이후 평양은 베이징과의 밀고 당기기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기묘한 배짱’을 과시해왔다. 최근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전격 철수도 그 대표적 사례. 북한에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거꾸로 중국이 북한을 간단히 제압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배경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 바다 깊은 곳에 대규모 유전이 있다는 소문은 그 유력한 후보군 중 하나다. 지형적 특성이나 국제법 원칙상 어느 한쪽이 독차지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양측 모두 물밑에서 긴장을 이어가며 상대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게 그 골자. 연이은 북한의 도발적 행보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중 관계가 요동쳐온 와중에도, 이 문제가 두 나라 사이의 숨은 뇌관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당장은 누구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지만 개발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변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빙성 있다’는 견해와 ‘과장됐다’는 평가가 팽팽히 맞서왔으나, 보하이해 일대 바다에 일정량 이상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가장 최근 공개된 관련 자료로는 북한 주변 해역의 석유개발 가능성을 탐사한 영국 업체 아미넥스에서 오랜 기간 프로젝트 책임자로 일한 바 있는 지질학자 마이크 레고 씨의 보고서가 있다. 2015년 9월 석유 분야 지구과학 전문지 ‘지오엑스프로(Geo ExPro)’에 공개한 ‘북한 석유 탐사와 잠재력’ 보고서에서 그는 “북한 육지와 바다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존재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면서 “북한에서 원유와 가스의 상업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라고 평가했다.
산유국 꿈꾸는 평양 걸림돌은 베이징?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외곽에 있는 ‘바싼유류저장소’. 북한으로 가는 석유는 대부분 이곳에서 압록강 밑으로 이어진 송유관을 거쳐 공급된다. 북한의 대중(對中) 에너지 종속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동아일보


과연 누가 주인인가

레고 씨가 그간 진행한 작업은 원유나 천연가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탄성파탐사. 그 결과 개연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북 철산반도와 황해도 장연반도 사이 서한만 유역의 3개 지층이다. 중국 시각으로 보자면 보하이해 동북쪽 끝자락. 이와 연결돼 있는 황해도 재령 역시 유력한 후보 지역 가운데 하나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아미넥스는 2004년 북한 조선원유개발총회사와 20년간 원유 탐사 작업을 계약했지만, 2012년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앞두고 정치적 변수가 너무 많다는 판단 하에 철수를 결정한 바 있다. 문제의 보고서는 이 시기 이뤄진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간의 탐사자료만으로는 정확한 매장량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중국 측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그 규모가 최소 수십억 배럴에 이른다는 게 중국 정부의 내부 판단이라고 전한다. 북한 측 인사들은 600억~900억 배럴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서한만을 비롯한 보하이해 수역의 지형을 감안하면 과장일 공산이 크다는 것. 그러나 수십억 배럴이라고 해도 중국 최대 유전으로 꼽히는 헤이룽장성 다칭(大慶)유전에 육박한다. 1960년대 초 개발된 이 유전에서 아직도 원유가 솟아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20~30년간은 사용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을 감안하면, 중국 측으로서는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크기다.
원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매장량도 만만치 않다면,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 대목에서 북한과 중국의 기묘한 관계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현재 공개돼 있는 탐사자료대로 서한만 일대가 매장수역이라면 국제법 원칙상으로는 북한 영해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로 석유가 묻혀 있는 해저지형은 보하이해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 이를테면 거대한 원유 퇴적층의 뚜껑에 해당하는 가장 얇은 암반만이 북한 영역으로 솟아올라와 있는 셈. 중국으로서는 해저지형 깊은 곳에서 자신들의 영역까지 뻗어 있는 원유지대를 북한이 ‘빨대를 꽂아’ 독차지하는 상황을 좌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조지프 버뮤데즈 올소스애널리시스 연구원이 2015년 12월 중순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기고한 글은 이러한 양측의 긴장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평양 당국은 이미 1960년대부터 석유탐사 관련 정부기구를 설치하는 등 오랜 기간 공력을 쏟아왔지만 중국의 반대에 부딪혀 진척이 없었다는 것. 특히 북한이 이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기로 마음먹은 2000년대 이후에는 탐사와 채굴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기술 도입 자체를 중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명목상으로는 국제사회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전략물자 반입을 차단하는 조치지만, 실제로는 탐사작업용 드릴머신 등 석유 관련 장비도 주된 통제 대상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1, 2차 핵실험 이후 대외교역 창구가 중국밖에 남지 않은 북한으로서는 이를 들여올 다른 경로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더욱이 한국과 중국 사이 서해의 해상경계와 마찬가지로 북·중 사이에도 해상경계 협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북·중 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 일단 두 나라가 이에 관해 합의했다는 발표나 보도는 양측 어디에서도 등장한 적이 없고, 그 대신 중국 어선과 북한 해군의 충돌 사례만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해양자원의 경우 어느 쪽 EEZ에 묻혀 있는지가 관할권의 핵심이지만, 북한과 중국 사이 200해리가 겹치는 지역에서의 EEZ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면 분쟁의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이어도를 둘러싼 한중 양측의 긴장과 정확한 대칭형이다.
또 다른 난관은 경제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서한만 혹은 보하이해 일대에서 원유 매장이 추정되는 해저는 평탄한 지형이 아니라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사면(斜面)에서 진행되는 원유 채굴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한다. 아무리 막대한 분량이 묻혀 있어도 적정가격 이하로 뽑아내기 어렵다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타들어가는 평양의 속내

북한의 형편없는 사회간접자본(SOC) 현실 역시 경제성에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원유를 캐낸다 해도 이를 실어 나를 항만과 철도, 도로가 필수적이다. 현재 상태라면 이들 시설을 마련하는 비용 역시 채굴비용에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채산은 더욱더 안 맞게 되는 셈. 유일한 해결책은 인근에 다른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인프라를 구축한 뒤 원유 수송용으로 함께 사용하는 것뿐이다. 북한이 최근 수년간 목을 매고 있는 경제특구 프로젝트에는 이러한 계산도 깔려 있지만, 해외자본 유치에 진척이 없는 현실상 기대난망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사실상 유일한 우호국으로 남아 있는 중국에 대해 북한이 여전히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할 단초가 열린다. 뚜껑만 따면 무진장의 기회가 열리는데도 중국이 막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 그렇다고 양국 공동개발 같은 카드를 꺼내 들기에는, 막대한 지하자원이 있음에도 해외업체에 개발권을 빼앗겨 가난뱅이로 전락한 제3세계 국가들의 전철이 두렵다. 예컨대 서두에서 본 랴오닝성 일대 관련 산업단지에 통째로 ‘당근’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더욱이 석유 의존도가 해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는 세계경제 흐름을 감안하면 평양으로서는 한층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중국 자신도 환경 문제 때문에 천연가스로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경제성은 유가 하락 등과 맞물려 더욱 떨어질 게 뻔하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검은 진주’가 ‘검은 쓰레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전직 정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북한에 다양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다. 핵심 수출품이던 철광석과 석탄 모두 국제사회의 수요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자철석과 무연탄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지하자원을 내다팔아 경제를 떠받치던 김정은 체제의 생존비결 역시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그럴수록 북한으로서는 서해 원유 문제로 시선이 갈 텐데, 그 과정에서 북·중 관계나 대외정책과 관련해 어떤 무리수를 던지게 될지가 가장 염려스럽다. 자원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다는 건 국제정치의 공리(公理) 아닌가.” 





주간동아 2015.12.30 1019호 (p14~16)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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