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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회계부정의 나라

‘장부 마사지’ 유혹에 빠지다

3900억 원 허위보고에 벌금 20억 원뿐…왜곡된 재무정보에 투자자들만 손해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장부 마사지’ 유혹에 빠지다

‘장부 마사지’ 유혹에 빠지다

셔터스톡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한 7월, 모두가 당황했다. 1분기에는 매출 4조4860억 원, 영업손실 430억 원이라고 발표했던 회사가 2분기에는 매출 1조6564억 원, 영업손실 3조399억 원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숫자가 뒤바뀐 게 아니다. 3조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영업손실로 발표되자 주식시장은 난리가 났다. 하루 만에 주가가 30% 폭락했다. 2분기 발표 전까지만 해도 1만3000원 선에서 거래되던 대우조선해양 주식은 현재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00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곧바로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고 투자자들은 9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회계투명성 자화자찬

손해배상 소송 피고인에는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뿐 아니라 회계감사를 수행했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도 포함돼 있다. “외부감사인의 임무 태만이 외형에만 치우친 부실경영을 낳았다”는 것이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한누리의 설명. 한누리 측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특히 3월 공시한 2014년도 재무제표는 분식 규모나 정도가 심각하고 고의성이 농후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조선 및 건설업계에 만연한 분식회계와 부실감사를 응징하고 피해 주주들의 피해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탓에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 수준이 전년보다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평가받았다”는 11월 24일 금융감독원의 보도자료는 자화자찬 이상의 ‘생떼’처럼 들린다. 대한민국 경제는 지난 3년간 적어도 한 해에 한 건 이상의 분식회계 파문에 시달렸다. 2014년에는 대우건설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돼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고, 올해 9월 3896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확정됐다. 2013년에는 자금난을 회피하기 위한 분식회계로 동양그룹 계열 증권사인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이 개인투자자들에게 1조7000억 원대 손실을 입히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1999년 공중분해된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검찰이 밝혀낸 것만 41조 원에 달한다. 이 금액이 1997~1998회계연도 기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 알 수 있다. 분식회계의 대표 사례로 줄곧 거론되는 미국의 엔론과 월드컴(대략 110억 달러(약 12조 원) 분식회계 추정)도 대우그룹 앞에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분식회계란 회계장부를 실제와 다르게 꾸미는 것이다. 수익을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비용을 실제보다 축소하는 방식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는데, 주로 매출채권을 허위 또는 과대계상하거나 담보 제공 사실 또는 특수관계자와의 자금거래 사실을 주석에 기재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밖에도 사업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금융거래조회서를 위조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대부분 사실대로 회계 상황을 보고할 경우 자금난에 빠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재무구조가 악화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필요한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추가로 대출받기 어려울뿐더러, 기존 차입금에 대한 상환 압박과 이자율 상승 부담도 커진다. 신규 투자 유치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 경영 상황을 개선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반면, 분식회계로 장부 내용만 ‘마사지’해주면 그러한 노력 없이도 외형적인 실적을 개선할 수 있다. 위기에 빠진 경영자에게 분식회계의 마력은 클 수밖에 없다.
9월 약 39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확정된 대우건설이나 분식회계 의혹으로 조사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까지, 최근 큰 분식회계 스캔들이 모두 과거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회계 역사에 족적을 남긴 대우그룹의 후신이라는 점은 공교롭다. 세월이 20년 가까이 흘렀건만 왜 회계부정의 문화는 변한 게 없는 것일까.
2013년 동양그룹 사태, 2014년 대우건설 분식회계 사건이 있었음에도 올해 역시 대규모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12월 1일 금융감독원은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고 내년 2월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중대한 분식회계 사건이 적발될 경우 감사 업무를 맡은 회계법인의 대표에게도 직무 정지 또는 회계사 등록 취소 등 제재를 가한다는 조항이 포함될 방침이다. 그러나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주간동아’와 인터뷰(28쪽 상자기사 참조)에서 “누구도 본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며 “일부러 핵심을 피하고 변죽만 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행 회계감사제도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외면하고 애먼 회계사에게만 철퇴를 휘두르려 한다는 것이다.
‘장부 마사지’ 유혹에 빠지다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검찰 조사로 확인된 것만 41조 원에 달한다. 분식회계의 대명사로 통하는 미국의 엔론과 월드컴의 분식회계 규모를 압도한다. 사진은 해외도피 끝에 2005년 입국해 수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가운데). 동아일보


감사인 선임제도 “도둑이 판사 고르는 격”

이 대표가 지적한 현행 회계감사제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감사인(회계법인)의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이다. 이 대표는 “회계법인도 대기업에게는 ‘을’에 지나지 않아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감사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사인은 회사가 만들어서 제출하는 자료들만 보고 분식회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의심스러운 사항이 있어도 이를 계속 지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여기서도 전형적인 갑을 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사인의 권한은 미미한 반면, 그 책임은 회사에 비해 크다. 분식회계가 적발돼도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과징금은 고작 20억 원이 한계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9월 대우건설 분식회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우건설에 과징금 20억 원을 부과했다. 대우건설이 실제보다 축소했다고 당국이 판단한 손실액만 약 3900억 원이다. 한편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에게는 10억6000만 원 과징금이 부과됐고, 담당 공인회계사 2명에게는 1년간 상장사 감사 업무 제한 징계가 내려졌다. 대우건설 대표이사에게도 과징금 1200만 원이 부과됐는데 정작 분식회계를 했던 당시 대표이사가 아닌 현직 대표이사에게 부과됐다.
이총희 대표는 “분식회계를 한 대표이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실적이 (실제보다) 좋게 나와 성과급도 많이 받는다.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나라도 분식회계를 하겠다”면서 “정부의 감독과 처벌의 초점이 완전히 잘못 맞춰져 있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수임구조가 회계법인을 피감회사의 ‘을’로 만드는 주된 원인이다.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사실상 회계감사 대상인 회사가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회사에게는 자기 회사의 회계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꾸밀 동기가 충분하다. 문제는 회사가 감사인을 선임하기 때문에 본래는 이를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감사인(회계법인)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 이총희 대표는 “이건 도둑이 판사를 선임하는 꼴”이라고 말한다.
선진국은 감사인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줄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독일은 회사에서 감사인을 추천하면 이를 주주총회에서 승인한다. 미국은 2002년 제정한 ‘사베인스-옥슬리법’을 통해 독립적인 민간 비영리 회계감리기구를 설치해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강화했으며 분식회계에 대한 최고경영자, 최고재무책임자의 책임 또한 강화했다. 미국이 이 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바로 2001년 있었던 엔론 사태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돼가는데도 매년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식회계 엄단해야 경제성장

분식회계는 자본주의경제 사회에 균열을 가져온다. 시장에서 대출이나 투자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는 재무정보를 왜곡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재무정보를 믿고 대출을 해준 은행과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다. 여기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이제 그 부담은 국민 모두가 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분식회계 장본인이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없다.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실제로 복역한 기간은 1년 6개월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2003년 1조5000억 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보석으로 풀려났다. 제프리 스킬링 엔론 최고경영자(CEO)가 24년형, 버나드 에버스 월드컴 CEO가 25년형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이 걸린 소송이 제기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도 분식회계를 비롯한 배임행위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을 경우 단체로 소송을 제기하는 ‘증권집단소송제’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승소 사례는 별로 없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소액주주들이 소송에 나섰으나 현재까지 168명만 소송에 참가한 상황이다. 왜 손해를 입었음에도 소송인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민국이 왜 ‘회계부정을 권하는 사회’인지에 대한 가장 중대한 실마리가 들어 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이 투자자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정부가 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의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분식회계로 인한 손해배상은 실제로 주식을 매도해 피해가 현실화돼야 가능하다.
‘장부 마사지’ 유혹에 빠지다

사기성 회사채 및 기업어음 발행과 고의적 법정관리 신청 의혹을 받는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검찰에 세 번째로 소환된 2013년 12월 피해자들이 현 회장이 타고 온 차를 막은 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동아일보

우리나라가 말로는 자본주의를 운영한다지만 아직도 국가 주도 경제체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회계투명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게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11월 초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화제가 된 글에서 이 교수는 소수의 세계적 기업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으로부터 자본을 조달해 기업에게 기회를 주는 자본시장이 움직이려면 투자 판단의 기본이 되는 회계정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를 해치는 회계정보 조작을 엄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회계는 책임을 묻고 평가하기 위한 도구다. 성과보다는 줄과 낙하산이 중요하고, 자리를 맡은 이후에는 회사를 엉터리로 운영하고 부실을 쌓아 놓아도 정부가 은행을 끼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며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떤 경영진이 회계 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는가?”
기업들은 여전히 회계투명성을 불필요한 지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총희 대표는 지난해 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외부감사 대상 주식회사의 기준이 자산 100억 원 이상에서 120억 원 이상으로 조정된 사례를 들었다. “한 규제개혁 관련 토론에서 중소기업 사장이 ‘감사 때문에 기업 활동이 어렵다’며 ‘감사 기준을 상향해달라’고 하더라. 회계사로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의 작은 왕국을 맘대로 다루지 못하게 외부에서 견제하는 게 짜증난다는 얘기로밖에 안 들린다. 또 정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외부감사 대상 기준을 상향해준다. 이것이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의 현주소다.”
회계사의 기본 업무가 바로 감사임에도 우리나라 회계사들은 이미 감사 업무를 기피하고 있다. 수임구조 등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실제로 감사 범위에 제약이 크고,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회계사에게 먼저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수험생들이 회계사 자격시험을 기피할 뿐 아니라, 이미 자격을 취득한 회계사들도 감사 업무를 기피한다. 공기업에 들어가려 하거나 회계법인 내에서도 세무 또는 자문 업무를 하려고 한다. 나중에는 감사 업무가 무능력한 사람이 하는 것이 돼 점점 더 무력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한상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가 한 단계 더 전진하려면 자본시장의 기능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 “회계투명성은 진짜 중요한 문제이고 심각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년째 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회계부정 문화의 만연’을 지적해왔으나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회계를 ‘불필요한 비용’으로만 여기는 기업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일벌백계는 물론이고,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감사인이 피감회사에 종속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처럼 회사가 감사인을 선택하는 ‘자유선임제’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적 대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5.12.09 1016호 (p26~29)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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