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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24시간 ‘메신저 감옥’에 갇힌 샐러리맨 “하루 종일 대기 중”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모바일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카카오톡 등을 통한 업무 연락은 흔한 일상이 됐다. 동아일보

회사원 박준우(33·가명) 씨는 퇴근 후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업무용 단체채팅방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기 때문이다. 일 중독자인 부장의 연락은 주말에도 계속된다. 박씨는 “‘카카오톡’ 채팅방의 수신확인 기능 때문에 읽고 나면 대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 괴롭다”며 “퇴근 후 카카오톡 질문에 누가 빨리 대답하느냐에 따라 인사고과가 달라질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박씨가 쓰는 사내 채팅방은 부서 업무를 비롯해 사내 행사 기획, 프로젝트 논의, 친한 사원들의 점심모임 등 4개다. 여러 성격의 채팅방을 동시에 이용하다 보니 용도 구분이 혼란스러워졌다. 밥을 먹는 도중 ‘카톡! 카톡!’ 소리가 나면 단체채팅방 알림인 것 같아 먹은 밥이 소화가 안 되기도 한다. ‘채팅방 나가기’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상사 눈치가 보여 꾹 참는 중이다.
모바일 메신저가 업무용 도구로 보편화되고 있다. 2013년 12월 한국법제연구원이 연구용역을 맡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정보통신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마트기기의 업무 활용에서 ‘카카오톡·SNS를 통한 지시 전달’ 비율(63.0%)이 가장 높았으며, ‘스마트기기와 회사 e메일 연동’(35.9%), ‘인터넷을 통한 원격 지원 시스템 이용’(35.7%) 순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모바일 메신저가 직장인에게 또 다른 ‘족쇄’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은 11월 18일 발표한 ‘2015년 직장인 신조어’ 중 ‘메신저 감옥’을 예로 들었다. 메신저 감옥은 모바일 메신저로 정규 근로시간 외에도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5월 사람인이 직장인 7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메신저를 사용하는 직장인 68.5%는 업무시간 외에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 용건에 대한 연락을 받았으며, 그중 88.3%(이하 복수응답)는 즉시 업무를 처리했고 60.3%는 회사로 복귀했다.

휴가 날은 ‘메신저 재택근무’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KT의 ‘올레 기가 LTE : 배터리편’ 광고. 퇴근한 직장인이 상사에게 파일 전송 독촉을 받는 장면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처

이러한 상황을 빗댄 광고에도 많은 직장인이 공감했다. KT가 8월 선보인 ‘올레 기가 LTE : 배터리편’ 광고는 다음과 같은 줄거리다. 퇴근한 남성에게 한밤중 직장상사로부터 모바일 메시지가 온다. ‘김 대리 파일 빨리!’ 남성의 휴대전화에 남은 배터리 용량은 단 1%. 눈앞이 캄캄해진 남성은 이렇게 생각한다.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광고에는 ‘나도 죽겠지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최근 회사를 퇴사한 백주현(27·가명) 씨는 “(이전) 회사에서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 연락을 받은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백씨는 “오랜만에 정시 퇴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메신저로 누가 회사에 남아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팀장이나 동료의 메신저가 ‘로그아웃 상태’가 되면 그제야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백씨는 “한 후배는 휴가 날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 연락이 와 마음이 불편하다’며 출근해 동료 사이에서 ‘휴가는 메신저로 재택근무하는 날’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갔다”고 말했다.
모바일 메신저는 대화 기록이 남아 사생활 침해가 되기 쉽다. 어느 날 백씨가 속한 부서에서 팀원 간 의사소통이 잘못돼 업무에 지장이 생기자 팀장이 ‘메신저 대화 화면을 캡처해 보고하라’고 하는 바람에 팀장에게 대화 내용을 보여줘야 했다. 백씨는 “메신저 때문에 늘 상사가 나를 감시하는 기분이었다. 퇴사 후 그 메신저는 두 번 다시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서지혜(30·가명) 씨는 “모바일 메신저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져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 호소한다. 서씨는 최근 폐렴을 앓다 몸이 다 낫지 않은 상태로 출근해 업무를 재개했다. 하지만 서씨의 회사 개인용컴퓨터(PC)로는 메신저를 쓸 수 없었다. 회사 측이 ‘PC버전은 사적 대화용으로 쓰일 수 있다’며 사내 컴퓨터에 메신저 설치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종일 휴대전화로 채팅하느라 눈이 아프고 스트레스가 쌓여 몸 상태가 악화됐다. 그는 “휴대전화 메신저를 장시간 사용하면 머리가 아프다. 작은 글자를 읽다 보면 스트레스가 가중돼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출장 중에는 ‘통화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전화보다 모바일 메신저를 쓰기 쉬운 측면이 있다. 회사원 이석원(29) 씨는 상사가 미국 출장을 가기라도 하면 잠을 설친다. 상사가 국내 시간대를 고려하지 않고 밤낮으로 모바일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에는 상사가 출장을 떠나면 연락이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전화를 했는데, 지금은 전화 대신 하루 100개가 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며 사소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며 “전화보다 메신저를 통한 대화를 더 편하게 느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해외 출장을 갈 때 상사는 “해외에서 휴대전화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하는 요금제를 쓰라”고 당부한다. 와이파이(Wi-Fi)가 가능한 지역이 제한돼 있어 언제 어디서나 카카오톡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데이터 무제한 사용 서비스가 꼭 필요하다는 이유다. 이씨는 “이전에는 해외 출장이 ‘국내 업무로부터의 도피’였는데, 모바일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회사원을 옭아매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한탄했다.
모바일 메신저가 업무 의사소통의 중심이 되면서 비슷한 채팅방을 여러 개 만드는 비효율적인 일도 생긴다. 8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이모(33) 씨는 “국회의원과 의원실 보좌진, 지역구 사무소 직원들이 있는 방, 국회의원을 빼고 보좌진 및 직원들이 있는 방, 수석보좌관을 빼고 나머지 보좌진과 직원들이 있는 방 등 5~6개의 채팅방을 오갔다”고 회상했다. 채팅방 이름은 참여자 수를 붙여 ‘13번 방’ ‘12번 방’ 등으로 불렀다. 예를 들어 의원이 13번 방에서 “지역구 사업 예산이 얼마냐”고 물으면 일단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12번 방에서 직원들끼리 논의하는 식이었다. 언뜻 보기엔 효율적인 시스템 같지만 이씨는 “어느 방에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헷갈려 우왕좌왕한 적이 많았다”며 “24시간 회의를 위해 대기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의미 모호해 스트레스 유발”

모바일 메신저는 문자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기 때문에 개인의 참여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단체채팅방의 경우 ‘말하는 횟수’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씨는 “단체채팅방에서 의원이나 보좌관이 질문을 하면 내 담당 업무가 아닐 때도 ‘뭔가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넌 왜 아무 보고도 없느냐’는 식으로 눈치를 줬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나도 채팅방에 열심히 참여 중’임을 메신저로 표현하다 보니 서로의 업무가 섞이고 온·오프라인 대화를 오가면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업무 의사소통이 지나치게 메신저 중심으로 돼버려 어쩔 수 없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인터넷 안 되는 곳으로 출장 갔으면 좋겠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직장상사의 경우에는 부하직원에게 연락할 때 전화보다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대기업 부장 황모(53) 씨는 “아주 급한 연락이 아니면 대부분 메신저를 사용한다. 저녁 늦게 또는 휴일에 업무 상황을 물어보고 싶은데 부하직원의 당황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전화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고 아랫사람이 대답을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으며 e메일보다는 연락이 빨리 닿아 좋다”고 말했다. 황씨는 “모바일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예전보다 업무 연락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늦은 밤에는 통화하는 것보다 덜 미안해 자꾸 쓰게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 전문가는 “(업무 관련 의사소통 시) 모바일 메신저는 전화보다 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진보래 서울미디어대학원대 뉴미디어경영학과 교수는 “전화는 커뮤니케이션의 동시성이 있고 목소리에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어 전화를 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스럽다. 하지만 모바일 메신저는 비동시적인 데다 정보 종류가 문자·기호로 제한돼 있어 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진 교수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이 주는 스트레스, 즉 ‘부담과 피로감’ ‘확인에 대한 의무감’ 등을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자·기호를 통한 의사전달은 받는 사람 처지에서 해석이 모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문자와 기호만으로는 상대방이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얼마나 빨리 응답하기를 바라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성실한 직원이 상사의 모바일 메시지에 늘 즉각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이 암묵적인 규범(norm)이 돼버린다. 특히 즉각적인 응답에 만족한 상사는 그것을 규범이라 생각하게 되므로 직원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퇴근 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업무 연락도 업무의 연장인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회사 상황이나 팀원의 안부를 물을 때 이것이 업무인지, 사적 질문인지 판단하기 모호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메신저 스트레스’가 늘어남에도 이를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것이 단점”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프랑스의 일부 업종에선 저녁 6시 이후 업무용 e메일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모바일 메신저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확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5.12.02 1015호 (p38~40)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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