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5

2015.12.02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이 뿔났다

영진위,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폐지…감독들, 지원작 공모 신청 거부 선언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2-02 10: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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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이 뿔났다

    REX

    서울 북촌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코드 선재가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씨네코드 선재는 매달 1500만 원가량 하는 임대료 부담과 누적된 9억 원대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폐관을 결정했다. 씨네코드 선재를 운영해온 영화사 진진은 “건물주인 아트선재센터 측과 건물 전체 리모델링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건물주와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독립예술영화관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2006년 이후 서울 종로 씨네코아, 일본영화전용관 CQN 명동, 스폰지하우스 압구정, 명동 중앙시네마,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등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지난해 10월에는 거제아트시네마가 문을 닫았다. 여기에 7월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세훈·영진위)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시행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폐지하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새로 시행하면서 독립예술영화관의 활로가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진위에 따르면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공급자(극장) 지원 중심에서 관객 중심으로 개편한 사업이다. 기존 사업이 20개 내외 예술영화전용관에 운영 보조금을 지급했다면, 신사업은 영진위가 선정한 국내 예술영화의 상영관 확보 비용과 일정 홍보 비용을 배급자에게 지원해준다.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올해부터 서울을 포함한 지역으로 확대해나가고 있고, 기존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으로 개편해 진행하는 겁니다. 일부 극장이 지원금을 극장 운영비 위주로 사용하는 등 ‘극장 연명책’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예술영화 유통과 상영, 영화 소비패턴 등의 트렌드가 과거와 달라져 이를 반영했습니다. 예술영화전용관들이 연간 219일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발전기금 납부를 전액 면제받아왔는데, 정작 국내 영화는 좋은 시간대에 관객을 만나기 어려웠기에 이런 부분을 개선코자 시행한 사업입니다.”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극장 연명책?

    그러나 이 사업은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은 10월 8일 성명을 내고 “영진위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독립예술영화의 유통배급 활성화를 위해 근본적인 사업 수립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박광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프로그래머는 “업계에서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지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1년에 영진위 위탁업체가 선정한 영화 48편 중 24편을 꾸준히 상영하면 좌석점유율에 해당하는 돈을 극장에게 준다는 것인데 결국 대관료 지급 개념일 뿐 지원이라고 볼 수 없다”며 “평일과 주말 프라임타임을 영진위 선정 영화에 할애하면 다른 영화들은 낮 시간대에 상영해야 해서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한다는 명분도 없어진다. 선정된 위탁업체 또한 영화 개봉, 배급 업무를 해온 곳이 아닌 걸 보면 사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사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영화시장에서 멀티플렉스가 95% 이상 스크린과 98% 이상 관객을 가져가고 배급까지 한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예술영화관의 자립이 가능하겠는가. 현재 다수 극장이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는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예술영화관의 자생이 어려워졌다. 멀티플렉스도 예술영화가 돈이 되는 먹거리라는 생각으로 상영하다 보니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예술영화관이 문을 닫는 일은 국내뿐 아니라 파리, 도쿄, 런던, 뉴욕 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국가가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런데 해당 사업을 폐지함에 따라 시장 경쟁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예술영화관들은 공공기금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영진위의 새로운 사업 추진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등 정치색을 가진 작품에 상영관을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원 이사는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검열 사태가 많이 벌어졌다. 두 작품을 상영한 영화제나 영화관이 올해 들어 지원금이 삭감되는 등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프로그래머는 “특정 성향의 영화를 상영한 곳이 모두 예술영화전용관이었고, 대부분 영진위의 기존 사업 지원을 받던 곳이었기에 제재를 가한 것이라 본다”고 주장했다.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이 뿔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폐지하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동아일보


    감독들의 영진위 신사업 보이콧

    독립영화감독들은 영진위 사업을 보이콧하고 있다. ‘혜화,동’과 ‘어떤 시선’ 등을 연출한 민용근 감독은 11월 9일 “한 해 수백 편의 독립예술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위탁단체가 정한 소수 영화를 독립예술영화관 지원의 근거로 삼는다는 전제부터 이해할 수 없다. 선정 기준도 의문이고 선정되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받을 역차별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독립예술영화관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이 저해받으면 관객의 영화선택권을 비롯한 다양성은 무너진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나 주제를 다룬 영화는 관객과 만나기 어려워질 테고,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검열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영진위 위탁업체에 내 영화를 보내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은 사전 검열, 다양성 침해 혹은 사회적 쟁점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게 하는 사업이 아닐뿐더러 이는 사업구조상 불가능하다. 작품 선정은 별도 구성되는 전문 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지는 만큼 전문성과 자율성은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위탁업체로 선정된 한국영화배급협회는 10월 15일부터 29일까지 지원작 공모를 받았는데, 공모 도중인 10월 21일 ‘접수 편수가 선정 편수에 현저히 미치지 못할 경우 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영화 중 작품선정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선정할 수 있음’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 때문에 영진위가 지원작이 부족하자 공모요강을 바꾸면서까지 사업을 강행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김조광수 감독은 11월 13일과 14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영진위는 정말 답이 없다. 감독들이 ‘지원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니 ‘너희가 신청하지 않으면 우리가 신청해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30명 정도의 감독이 신청 거부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는데, 더 많은 감독이 지원 신청을 거부하도록 독려하고 감독과 제작자 동의 없이 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진위 관계자는 “해당 내용이 추가된 건 공모 신청작이 적어서 생긴 단서조항이 아니다. 당초 위원회(영진위)는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사업과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을 통합할 예정이었으나 당장 통합하면 지원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사업을 유지하되 두 사업 중복 지원이 불가한 만큼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에 추천권한을 부여해 작품 선정 대상을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탁업체인 한국영화배급협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절차에 맞게 심사, 검토한 뒤 선정한 사업자다. 국내 메이저 배급사를 포함한 많은 배급사가 가입된 단체로 전문성 활용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외부에서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작품을 제출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는 누가 사업을 수행하더라도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수탁자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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