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3

2018.06.20

인터뷰

“퇴직 후 3000만 원으로 30년 버티지 않으려면, 3개의 주머니를 차라”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교육포럼 대표

  • 입력2018-06-19 15: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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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30, 40대 직장인에게 ‘노후 설계’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아직은 먼 미래” 혹은 “준비 방법을 모른다”고 답할 듯하다. 젊어서부터 퇴직 후 삶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노후 준비는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교육포럼 대표는 “수중에 몇억 원 쥐고 있다고 노후 준비가 끝난 게 아니다. 인생 후반을 좌우하는 리스크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강조한다. 

    1973년 증권선물거래소에 입사해 대우증권 동경사무소장·상무·리서치센터장, 현대투자신탁운용 사장, 굿모닝투자신탁운용 사장을 거쳐 미래에셋금융그룹 부회장을 역임한 강 대표는 현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교육포럼 대표이자 공무원연금공단 미래설계교육 전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국내에 노후 준비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장수가 곧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설파해온 그는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강의와 연구 활동으로 직장인들에게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그에게 노후 준비의 단계별 요령을 들었다.

    국민연금 월 50만 원 이상 수령자 23% 불과

    과거에 비해 노후 준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은데, 실상은 어떤가. 

    “한 해 강의를 200회가량 하는데, 예전에 비해 노후 준비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간 건 사실이다. 주말 강의에는 30, 40대 젊은 부부가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그들 말고 대부분은 뒤늦게 후회하며 강의를 듣는다. 얼마 전 한 대기업의 퇴직을 앞둔 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강의가 끝난 뒤 한 분이 그러더라. ‘이런 교육을 10년 전 마누라하고 같이 듣게 해줬어야지, 내일 모레 퇴직인데 지금 들으라 하면 어떡하느냐’고. 직장인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미래를 잘 챙기지 못한다. 현재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퇴직 연령은 51세다. 공무원, 공기업 근로자를 빼놓고 대부분이 언제 회사를 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루라도 빨리 노후를 고민하는 게 그나마 살길이다.” 



    얼마 정도 모아야 노후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나. 

    “2년 전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노후파산’과 관련한 특집 방송을 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나 역시 그 전까지 일본은 노인에게는 천국, 젊은이에게는 지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단번에 바뀌었다. 현 일본 60대는 경제적 고성장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 돈을 모으기가 쉬웠다. 무엇보다 연금제도가 우리나라보다 20년 일찍 도입돼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치면 우리 돈으로 월 200만 원가량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독거노인이다. 독거노인 6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이 노후 파산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개인연금 없이 공적연금만으로 월 65만 원 정도 보조받는다. 실제로 방송에서는 한 달 식비가 10만 원밖에 되지 않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노인들을 조명했다. 도쿄 부근에 살고 있는 한 친구 얘기로는 1984년 1억2000만 원을 주고 산 아파트가 1991년 3억6000만 원까지 올랐다 지금은 3000만 원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집값 붕괴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 집 한 채 갖고 있다고 해서 노후 준비를 다했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노후 대비와 관련해 우리나라 국민의 현 상황은 어떤가. 

    “10~15년 뒤 일본처럼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 우리나라 역시 노후 파산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재산 상태를 보더라도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가구당 평균 총자산은 4억5000만 원이다. 여기에 평균 부채차입금 9000만 원을 빼면 순자산이 3억6000만 원이다. 여기에 평균 집값 3억3000만 원까지 빼면 실제로 사용 가능한 돈은 3000만 원에 불과하다. 생계유지를 위해 너나없이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 집값은 또 어떻게 되겠나. 모든 국민이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맘 편히 살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인데,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심지어 국민연금 수령자 비율도 매우 낮다. 1965년생 이상 인구가 680만 명인데 그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35%이고, 월 수령액이 50만 원 이상인 사람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노후 준비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니면 적어도 퇴직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 미국 30, 40대 직장인에게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거의 다 ‘돈을 벌려고’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기에 ‘투자’ 좀 한다는 사람 역시 먼 미래의 삶이 아닌 눈앞의 ‘대박’에만 혈안이 돼 단기 시황에 집착한다. 하지만 노후 설계는 반드시 연령대별로 다르게 구성돼야 한다.”

    장기분산투자로 목돈 만들어 종목별 투자로 이동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 

    “먼저 30대는 ‘3층 연금’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다. 또 통계상 우리나라 직장인은 60세가 될 때까지 평균 6번 정도 직장을 옮긴다. 직장에 다니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주특기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걸 찾는 연습이 바로 ‘인적자본투자’다. 따라서 30대는 ‘3층 연금’과 인적자본투자를 동시에 해야 한다. 40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리스크’ 관리다. 젊은 시절 돈을 꽤 벌었는데도 퇴직 후 남은 돈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은 대부분 40대부터 자녀 교육에 ‘올인’한 경우다. 따라서 무턱대고 교육비를 지출해선 안 된다. 50대 때는 부채를 줄이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몰려 있다면 이를 처분해 금융자산과 부동산 비율을 50 대 50으로 맞추는 게 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는 것이다. 경제활동은 돈과 건강, 고독 등 노후를 힘들게 하는 세 가지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준다.” 

    젊어서 자산은 어떻게 불려야 하나. 

    “크게 주머니를 3개 만들어야 한다. 예금형주머니, 자산형주머니, 트레이딩주머니가 그것이다. 트레이딩주머니는 투자와 투기의 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잘되면 대박이고, 못 되면 쪽박이라 모두가 할 필요는 없다. 만약 한다 해도 재산의 10% 내외가 적정하다. 나머지 예금형은 30%, 자산형은 50%를 배분하는 게 좋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산형주머니인데, 이 주머니를 불리려면 ‘장기분산투자’가 가장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식펀드에 넣어 몇 년 뒤 목돈을 만드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종목별 투자’로 넘어간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포트폴리오다. 투자 성향에 따라 변동성(리스크)을 달리해 ‘하이 리스크’ ‘미들 리스크’ ‘로 리스크’로 나눠 분산투자하는 것이다. 투자 성향을 잘 모르겠다면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만큼을 공격적인 비율로 잡으면 된다. 만약 40대라면 60%를 공격적인 주식형펀드에 넣고, 나머지 40%는 채권, 채권형펀드, 단기금융상품(CMA, MMF) 등 미들·로 리스크 상품에 나눠 투자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수익률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사이 주가가 올라 공격적 투자 비중이 60%에서 70%로 늘어났다면 10%는 팔아 로 리스크에 해당하는 채권형펀드를 추가 매입하는 데 써 전체 비율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을 ‘투자 재조정’이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직장인이 가장 중요한 자산형주머니를 갖고 있지 않다.”

    “단타로 돈 벌기 쉽지 않다”

    직장인이 주로 관심을 갖는 트레이딩주머니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증권맨으로 오래 일했지만 단기 시황에 따라 투자하는 건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펀드매니저들도 주가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장 난감해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단기 주가 전망은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젊은 직장인이 단타를 주로 하는 반면, 미국은 오히려 퇴직자들이 단기 투자를 많이 한다. 물론 대박을 터뜨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트레이딩주머니는 최소한으로 채우는 게 현명하다.” 

    자산형주머니를 위한 적립식 투자에도 요령이 있을 것 같다. 좋은 펀드를 고르는 방법은. 

    “좋은 자산운용사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70여 개의 자산운용사가 있는데, 금융상품을 고르기 전 운용사의 최소 3년에서 5년간 성적표를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 과정을 무시해버린다. 지금까지 ‘펀드에 들었다 다 까먹었다’고 푸념하는 사람에게 ‘어느 운용사 펀드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금융상품을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판매하는 은행이나 증권사만 아는 거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운용사의 수익률과 업계 평판이다. 이런 내용들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FP(재무설계사)에게 돈을 맡겨야 한다.” 

    실력 있는 FP는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나. 

    “FP가 ‘판매대리인’인지, 아니면 ‘구매대리인’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투자 결과도 확연히 달라진다. 전자는 운용사 편에서 판매·운용 수수료가 높은 상품만 팔려고 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고객 처지에서 그 사람의 나이와 경제적 여력, 가족관계 등을 꼼꼼히 확인한 뒤 상품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이다. 둘 중 누구를 더 신뢰할 수 있겠나. 좋은 FP를 만나려면 금융회사에 자주 들러 여러 FP를 만나보고 주변의 추천도 받는 등 적극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강창희 대표가 증권맨에서 노후 설계 교육 전문가로 변신한 계기 역시 ‘투자 교육’에 눈을 뜨면서다. 1998년 현대투자신탁운용(현 한화자산운용) 대표로 있던 그는 자산운용사가 성공하려면 상품 운용에 앞서 투자자가 원칙을 지켜 투자할 수 있도록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일본 증권업계에서도 이에 대한 개념이 확산되고 있던 터라 강 대표는 1998년 국내에 처음으로 ‘투자 교육’을 도입했다. 

    굿모닝투자신탁운용 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회사가 합병되자 그는 부회장직을 마다하고 회사 측에 ‘투자교육연구소장’직을 요구했다. 1년간 투자 교육과 관련해 노하우를 축적한 강 대표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이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박현주 회장에게 직접 자신이 만든 자료를 보내는 열의를 보인 끝에 해당 연구소 소장직을 맡게 됐다. 이후 국내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자 강 대표는 미래에셋금융그룹 부회장으로서 투자교육연구소와 퇴직연금연구소(현 은퇴연구소)를 동시에 진두지휘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일거리’

    강 대표는 “‘행복한 노후’는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넉넉하다고 해도 사회와 단절된 생활은 삶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은퇴 후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일거리’라고 강조한다. 강 대표는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일본 도쿄 서점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지금 일본 서점가는 정년 후 삶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작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중 ‘정년 후’라는 제목의 문고판 단행본이 20만 부 넘게 팔렸고, ‘정년 후의 상식이 바뀌었다’는 특집을 게재한 ‘월간 문예춘추’를 비롯해 월간지, 주간지들도 비슷한 특집을 게재한 바 있다. 일본에서 정년 후 삶에 대한 1차 출판붐이 일었던 시기는 베이비붐 세대(1947~50년생)가 60세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있던 2003~2005년 무렵이다. 당시에는 ‘은퇴 자금’에 대한 문제가 화두였던 반면, 이번에는 ‘정년 후 뭘 하고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퇴직 후 갈 곳이 없어 고민하는 퇴직자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커피숍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공적·사적 연금에 모아둔 자산까지 합치면 먹고사는 데 큰 무리가 없는데도 정년 후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 많은 은퇴자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역 세대는 선배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40대 후반, 늦어도 50대 초반부터 수입과 상관없이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 일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열망은 우리나라 은퇴 세대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난여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퇴직자를 대상으로 수기를 공모했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아 105명의 수기를 읽었는데, 대부분 퇴직 전만 해도 연금으로 큰 걱정 없이 행복하게 노후를 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막상 은퇴하고 나니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중 가장 괴로운 점으로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퇴직 후에도 행복하게 살려면 취미·봉사활동을 비롯해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년에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제2,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창직(創職)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 준비만 잘한다면 노년의 삶이 오히려 더 즐거울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노년층 사이에서도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내 주변에도 해외기업 한국지사장을 하다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분, 베이비시터로 활동하는 전직 국회의원 아내 등 젊은 시절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 특히 고령화 사회가 심각해지면서 젊은 노인이 더 나이 든 노인을 돌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남의 이목이 두려워 일하는 걸 꺼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퇴직 후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는 자괴감, 외로움 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는 게 행복한 여생을 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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