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0

2018.03.21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인간에게 권력은 무엇인가

“中 시진핑 ‘셀프 종신제’ 개헌 … 권력 속성 간파한 자유민주주의 되새겨야”

  • 입력2018-03-20 13: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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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안이 3월 11일 중국 양회(兩會 ·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통과됐다. 주석이 겸직하는 중국 공산당(중공) 총서기와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연임 제한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2회였던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이 이번 개헌으로 풀렸다. 시 주석은 당(黨) · 군(軍) · 정(政) 모든 권력을 장악했기에 황제로 등극한 셈이다. 이번 ‘셀프 개헌’ 혹은 ‘종신제 개헌’이 결국 절대권력의 부패로 이어져 중국이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반면 중국의 정치 · 사회적 특성상 앞으로도 발전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 역시 나온다. 중국 역사에는 강력한 왕권국가도 있었고, 강력했지만 독재적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 일도 있었다. 필자는 시 주석의 권력 연장 시도를 보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과연 권력이란 무엇인지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인간에게 권력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일반인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그저 힘없는 평범한 국민일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권력에 국한된 대답이다. 현실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어느 정도 권력을 갖고 있다. 예컨대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결과를 확인하며, 평가하는 것도 권력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성실하게 수업에 임할 것을 지시하고 평가를 내리는 것도 권력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할 것을 가르치고, 잘못한 행동에 벌을 내리는 것 역시 권력이다. 권력이란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권력이라 하지 않고 위계(또는 계급), 교육, 훈육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열등감 극복과 권력 의지

    권력은 원래 공인된 힘이라 할 수 있으나 비공식화된 형태로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다섯 살배기 아이 3명이 놀 때 놀이를 주도하며 친구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따르게 만드는 1명을 발견할 수 있다. 유아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고, 아동이 되고 청소년이 되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 간 권력관계를 구분 짓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신체적 힘, 운동 능력, 지능, 성적, 집안 배경, 외모, 성격 등이다. 권력은 또한 변화한다. 초등학생 때 공부 잘하고 친구가 많았다면 또래 권력 구조의 상부에 있었겠지만 고등학생 때 성적이 뒤처졌다면 하부로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권력 획득, 유지, 분배, 상실 등에 익숙해져 있다. 사적 모임에서도 어느 좌석에 앉는지가 권력 서열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를 강조했다. 다른 철학자들은 인간의 행위 동기를 주로 ‘쾌락 욕구’로 설명한 반면, 니체는 ‘힘과 권력을 향한 욕구’로 설명했다. 니체는 인간이 권력을 얻으려고 고통까지 감수한다고 했다. 그는 권력에의 의지를 타인을 지배하려는 의지로 여기지 않았음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실제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권력자는 타인을 지배하고 조종하며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과 가치관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존경이나 복종을 얻어낼 수 있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정신을 지배하는 두 가지 성향으로 ‘공동체감’과 ‘권력 욕구’를 들었다. 특히 권력 욕구는 개인의 열등감에 대한 보상 의지로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권력 의지는 어릴 적 경험하거나 내적으로 형성된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데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발달과 성숙을 위한 긍정적 측면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 권력을 추구하느냐다. 즉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느 정도 권력을 쥐고 있는지로 가늠하는 것이다. 

    둘째, ‘권력은 중독되는가’ 하는 문제다. 권력은 물질이나 행위가 아니다. 권력은 하나의 가치로 존재하지만 여러 물질과 행위가 수반될 수 있다. 권력이 주는 경제적 이득이나 풍요로움은 물질 형태로 제공될 것이고, 사람들의 극진한 대접은 행위로 다가온다. ‘권력 중독’이라는 공식적인 병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은 분명 중독성을 갖고 있다. 

    중독성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하나는 ‘내성(tolerance)’이고 다른 하나는 ‘금단(withdrawal)’이다. 내성이란 동일한 만족감을 얻고자 점점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작은 권력에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 느꼈던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권력을 필요로 한다. 시 주석도 젊었을 때는 작은 권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느꼈던 만족감과 국가주석이 된 다음에 느끼는 만족감의 주관적 차이는 생각보다 별로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 기반을 다졌으니 당분간 ‘내성’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권력과 중독성의 상관관계

    금단이란 원하는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견디지 못하고 심적으로 불편이나 괴로움을 느끼는 현상이다. 시 주석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최고 정점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많은 정치인은 이 같은 금단현상을 경험했다. 오랜 기간 국회의원을 했던 사람이 낙선하면 불안하고 침울해지며 화가 나는 금단증상을 겪는다. 그러면서 다시 권력 욕구가 치솟고, 금단증상을 치유하고자 권력에 재도전한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임기가 정해진 경우 임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현실이 된다. 

    셋째, ‘권력은 불안을 동반하는가’ 하는 문제다. 권력은 유한하므로 불안하다. 게다가 권력은 역동적이고 가변적이다. 경쟁자가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 불안하다. 권력을 잡은 초기에는 쟁취의 기쁨 덕에 불안증상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쁨은 점차 줄고 권력 유지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든다. 시 주석은 아예 임기를 없애 불안의 근원을 제거하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다면 친구, 선배, 후배, 가족 등 어떠한 형태로든 ‘나와 연결된 사람’, 즉 내 편이 계속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권력을 상실한 뒤 보복이나 불이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나약한 개인의 인지상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넷째, ‘권력은 조절의 대상인가’ 하는 문제다. 점차 많은 권력을 갖게 되면 한편으로는 권력의 속성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 예상보다 더 엄청난, 때로는 극단적 결과가 초래돼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상처를 입는다. 나의 지배력을 확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 어떤 사람은 나를 경계하고 무서워하며,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원수로 여긴다. 따라서 여론 향방이나 권력 상태에 따라 권력의 완급을 조절한다. 독재자는 권력이 최고 정점에 이른 다음에 너그러움을 보일 것이다. 그러한 너그러움으로 절대권력에 약간의 균열이라도 보이면 다시 잔혹하게 권력을 휘두른다. 

    이 같은 권력의 속성은 이미 역사적, 사회적으로 입증됐다. 그래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한 지난한 노력 끝에 현재의 자유민주주의가 탄생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이 유한하다. 여러 사람 혹은 기관이 권력을 분점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세계사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삼대(三代)세습의 권력을 이어오면서 역행한 지 오래다. 권력의 속성에 너무나도 충실한 북한과 그것을 따라가려는 중국의 앞날은 어쩌면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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