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0

2018.03.21

국제

트럼프發 관세폭탄 제조자, 나바로

중국과 무역전쟁 불사 주장하는 강경파…“中, 대미 흑자 1000억 달러 줄여라”

  • 입력2018-03-20 13: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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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왼쪽)과 그가 저서 ‘중국에 의한 죽음’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피터 나바로 웹사이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왼쪽)과 그가 저서 ‘중국에 의한 죽음’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피터 나바로 웹사이트]

    군사용어에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것이 있다. 군사작전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음에도 발생한 민간의 인적·물적 피해를 가리킨다. 미군이 중동지역 등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생긴 민간인 피해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자 사용한 용어로, 대의를 위한 행동에 불가피하게 뒤따른 어쩔 수 없는 피해라는 뜻이다. 하지만 부수적 피해가 직접적인 타격의 피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8일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외국산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동맹국들이 상당한 부수적 피해를 입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 제품의 수입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외국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철강과 알루미늄은 자동차, 항공기, 전자제품 등을 만드는 필수 재료이기 때문에 경제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그동안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을 대거 수입해왔다. 실제로 철강의 경우 미국 제조업에 들어가는 1억t 가운데 3분의 1이 수입품이다. 알루미늄도 550만t 가운데 90%가 외국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피해를 입는 국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 동맹국들이다. 철강의 경우 미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10대 국가(지난해 기준)는 캐나다(16.1%), 브라질(13%), 한국(10.2%), 멕시코(9%), 러시아(8.7%), 터키(6.3%), 일본(5%), 독일(3.8%), 대만(3.5%), 인도(2.4%) 등이다. 중국(2.2%)은 미국의 10대 철강 수입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美 10대 철강 수입국서 빠진 中

    중국 컨테이너선이 수출품을 싣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지나고 있다. [위키피디아]

    중국 컨테이너선이 수출품을 싣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지나고 있다. [위키피디아]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들이 이번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자 캐나다와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상대국이라는 이유로, 호주는 우방이라는 점을 들어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처럼 이번 조치는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정교하지 못하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미국 언론은 물론, 폴 라이언 미 연방하원의회 의장과 공화당 의원들, 그리고 대다수 기업인조차 이번 조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온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미국에서 관련 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은 허구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파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미국이 동맹국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은 결국 중국을 도와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조치에 반대하면서 자유무역을 옹호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경제 참모인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사임하기도 했다. 미국의 114개 알루미늄 제조업체를 대변하는 알루미늄협회는 “모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로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조치로 교역 상대국의 대응에 따라 미국은 최소 5만~6만 개에서 최대 15만 개까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지만 고용은 1만~1만5000개밖에 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소비자물가도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뜨린 이른바 ‘관세폭탄’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의 작품이다. 나바로는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제품에 어떤 국가도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나바로는 동맹국과 미국 제조업의 부수적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중국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잉 생산된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이 세계시장에 범람해 미국과 다른 나라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우리의 임무는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위해 우리의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바로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교역에서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752억 달러(약 400조 원)로 2016년(약 3470억 달러)에 비해 8%나 증가했다. 나바로는 “값싼 중국산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중국의 환율조작 탓에 미국 부채가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 경제성장률도 둔화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 공장 7만 개 이상이 문을 닫았다”면서 “미국 중산층의 평균 가계소득은 하락했고 중국에 수조 달러 빚을 지게 됐다”고 밝혔다. 나바로는 미국 무역적자의 핵심 원인으로 중국을 꼽아왔다. 그가 집필한 ‘다가오는 중국과의 전쟁들(The Coming China Wars)’ ‘웅크린 호랑이(Crouching Tiger)’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 등의 저서는 모두 중국의 경제 패권주의를 질타하고 있다.

    다가오는 중국과의 전쟁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 [백악관]

    이런 책들을 읽어본 적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8월부터 나바로를 선거캠프의 경제정책자문위원으로 합류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한 후 나바로를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나바로의 과격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콘 위원장 등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백악관 참모들이 강력하게 견제했다. 결국 지난해 8월 백악관 조직개편 때 국가무역위원회가 무역제조업정책국으로 바뀌었고 콘 위원장이 맡은 NEC 산하로 편입됐다. 사무실도 백악관 웨스트 윙(West Wing)에 있는 대통령 참모들의 공간과 떨어진 별도 행정동에 마련됐다. 나바로는 지휘 계통상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도 없었다. 

    찬밥 신세가 된 나바로는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UCI)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샌디에이고 시장, 하원의원 선거를 포함해 세 번 출마했다 모두 낙선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외골수형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는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정책을 전하려고 웨스트 윙의 대통령 집무실 밖에서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2일 나바로를 집무실로 불러 정부 무역정책이 왜 더 공격적이지 않은지를 물었다. 당시 나바로는 제조업 부활이라는 대선 공약을 지키려면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때부터 나바로의 조언을 경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 켈리 비서실장을 불러 무역제조업정책국을 NEC에서 분리해 독립성을 갖게 하라고 지시했고, 대통령 보좌관으로 승진시키도록 했다. 

    나바로는 중국 정부에 대미 무역흑자 1000억 달러(약 106조 원)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등 중국과 무역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나바로는 앞으로 더욱 과격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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