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4

2018.01.31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 종로여관 방화범, 13명 자녀 감금한 美 부부…

“어릴 적 기른 ‘공감 능력’, 최고의 분노·충동 억제제”

타고난 ‘공존’과 ‘나눔’ 유전자, 올바른 양육과 도덕교육으로 잘 키워야

  • 입력2018-01-30 14: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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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여관 방화범 유모 씨가 1월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뉴스1]

    서울 종로구 여관 방화범 유모 씨가 1월 2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뉴스1]

    1월 20일 새벽,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서울 종로구 한 여관을 찾아 주인과 언쟁을 벌였다. 만취한 이 남성은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며 홧김에 불을 질렀고, 그렇게 시작된 불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됐다. 전남 장흥에서 서울 나들이를 온 엄마와 초·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희생됐고, 전날 제주 여행을 취소하고 서울 모임에 참석했다 투숙한 평범한 가장도 변을 당했다. 어처구니없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지은 지 50년 넘은 여관은 매우 낡은 데다 최근 소방점검도 이뤄지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나 화재 경보음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달 전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화재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화재 원인은 방화범이 홧김에 지른 불이었다. 성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고 불을 지르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중년 부부는 자녀 13명을 쇠사슬로 침대에 묶어놓는 등 학대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이 아이들을 구조하러 갔을 때 어머니 루이즈 터핀(49)은 경찰이 왜 집에 찾아왔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여관 방화범도 비록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뉘우치는 기색을 찾기 어려웠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인간 본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善한가, 惡한가

    자녀 감금, 폭행, 학대, 고문 혐의로 체포된 데이비드 터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루이즈 터핀(왼쪽에서 첫 번째) 부부가 1월 18일(현지시각)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자녀 감금, 폭행, 학대, 고문 혐의로 체포된 데이비드 터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루이즈 터핀(왼쪽에서 첫 번째) 부부가 1월 18일(현지시각)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인간은 원래 선(善)한가. 인간 본성은 선하다고 믿고 싶지만, 이러한 사건은 우리의 믿음과 바람을 무참히 짓밟는다. 그러면 인간은 본래 악(惡)한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헌신하고 희생하며 사는 ‘착한’ 사람과 적어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자 존중하고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 많다. 



    그러면 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돈 때문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empathy)’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누군가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을진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집단적인 악행도 포함된다. 나치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고 대학살을 저지른 일이 한 가지 사례다. 자신의 행동으로 유대인이 얼마나 고통받을지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분명하게 예측했을 것이다. 유대인 학살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쩔 수 없다’거나 심지어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한 유대인을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한 만큼 감성적 측면에서 예측 자체를 회피했을 것이다. 자녀 13명을 감금하고 학대한 부모도 자녀들을 인간으로 대하기보다 함부로 처리해도 되는 물건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사이먼 배런코언 영국 케임브리지대 발달정신병리학 교수는 저서 ‘공감 제로’에서 이러한 현상을 ‘공감의 침식(empathy erosion)’이라고 표현했다. 취했다고 해도 여관에 불을 지르면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다칠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욕구를 해소하지 못해 무척 화가 났고, 나를 화나게 만든 사람에게 보복하고자 불을 지른다’는 파괴적인 논리 흐름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불을 지른 행위는 상대방을 때리거나 죽이려는 행동의 대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방화범은 여관 주인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테고, 숙박객들을 여관에 비치된 물건 정도로 간주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길에서 시비가 붙어 타인과 싸우게 되더라도 때리지는 않는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때리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자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모두 내가 가진 공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공감 능력은 나의 분노와 충동을 억제하는 놀라운 효과를 갖고 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어릴 적 형성된다. 심리학자인 독일 슈미트와 미국 서머빌은 2011년 공동연구를 통해 생후 15개월 된 유아도 두 사람 간 공평한 분배를 판단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물건을 내어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 2013년 후속 연구에서는 3~6세 아동이 ‘공정한 나눔’을 다짐할 수 있고, 7~8세 아동은 이러한 다짐을 실제로 잘 실천하는 것을 관찰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은 ‘공존’ 또는 ‘나눔’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문명을 이루고 문화를 만들며 살아온 인류가 ‘우리 모두 잘 사는 것이 나 혼자 잘 사는 것보다 더 이롭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공감과 배려는 ‘내면의 황금 단지’

    공감과 배려 능력은 후천적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중요하게 길러진다. 양육자가 생후 몇 해의 결정적 시기 동안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주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내면의 황금 단지(internal pot of gold)’가 점차 자리 잡는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아이가 부모와 친밀해지고 신뢰하는 관계맺음을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이라고 한다. 영국 심리학자 존 볼비가 제창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서 나온 용어다. 반대로 부모의 사랑이 불안정하거나 일관되지 못하면 부모에게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거꾸로 회피하는데, 이를 ‘불안정 애착(insecure attachment)’이라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한다면 불안정 애착을 넘어 ‘혼란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을 보일 수 있다. 흔히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사이코패스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체로 이런 불안정(혼란) 애착 증세가 나타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공감과 관련된 뇌 회로를 관찰할 수 있다. 이를 ‘공감 회로’라고 하는데 뇌의 다양한 부위가 관여한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올바르게 훈육된 아이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도 긍정적으로 맺는다. 학교에 진학해서도 올바른 인성교육을 받아야 그러한 능력이 더 발전할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의 뇌에 튼튼한 공감 회로가 형성되고, 가슴에는 양심이라는 근육이 굳건하게 자리 잡는다. 이제까지는 양육과 교육을 통해 올바른 인성을 길러왔지만, 앞으로는 뇌과학이 더욱 발전해 관련 뇌 부위의 기능을 강화해줄 획기적인 치료법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 예방만큼 재발 방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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