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국제

마크롱, 프랑스병 고칠 수 있을까

노동법 개정안 놓고 노조와 건곤일척 대결 중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9-12 1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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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노조의 철밥통을 깨뜨리겠다는 집념을 보이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핵심인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한 마크롱 대통령은 9월 말까지 노동법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반면 프랑스 제2노조이자 강경파인 노동총동맹(CGT)은 9월 12일과 23일을 총파업의 날로 선포하고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말 그대로 마크롱 대통령과 노조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셈.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도 노동개혁을 추진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매번 실패한 바 있다. 중도우파인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부터 중도좌파인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까지 저성장-고실업이라는 이른바 ‘프랑스병(病)’을 고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프랑스는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제도를 자랑해온 국가다. 미국, 영국과 달리 일단 취업하면 평생고용이 유지되는 등 고용보장 장치가 잘돼 있다. 하지만 이런 고용보장 장치 때문에 프랑스 기업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해외로 떠났다. 그 결과 프랑스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로 중병을 앓아왔다.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만든 각종 고용보장 장치가 프랑스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대국이지만 경제성장은 가장 정체되고, 재정적자는 크게 늘었으며, 실업률은 높은 삼중고에 빠져 있다. 프랑스는 2007년부터 급증하는 지출을 통제하지 못해 국가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6%에 육박하는 등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 평균보다 7%p, 독일보다 30%p 이상 높은 수치다. 프랑스 실업률은 이사분기 말 기준 9.5%로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을 2배 이상 웃돌고 있다. 또 25세 미만 청년실업률은 25%를 기록하는 등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마크롱 대통령은 2014년부터 3년간 올랑드 사회당 정부의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경제회생을 위해 추진하던 노동법 개정안이 좌절되는 쓰라림을 맛봤다. 당시 그의 법안에 대해 여당인 사회당은 우파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고, 야당인 공화당은 정치 구도 탓에 지지하지 않았다. 좌우 양당 견제에 염증을 느낀 마크롱은 지난해 4월 중도 정치운동단체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만들고,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따라서 올해 5월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처지에선 노동법 개정이 정치를 시작한 이유이자 명분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200쪽에 달하는 노동법 개정안은 기업이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복잡한 노동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임금과 수당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먼저 중소기업과 노동자 교섭에서 노조를 배제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앞으로 노동자들과 교섭할 때 노조 의견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전체 95%에 달하는 노동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 대표가 고용주와 직접 교섭해 합의할 수 있다. 노동자 20명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들이 선출한 대표 없이도 고용주는 노동자와 직접 교섭할 수 있다. 고용주와 노동자는 이 방식으로 교섭할 때 임금, 근로시간, 조직 구성 등 직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산별노조 등이 주로 결정하던 근로조건을 개별 사업장에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둘째, 고용주는 엄격한 규제 대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노조 개입 없이 퇴직 대상 노동자와 직접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 기존 노동법은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다른 국가보다 높은 고용안정성을 유지해왔지만, 경기침체와 시장 수요 변화에도 쉽게 해고하지 못해 기업이 고용 자체를 신중하게 해왔다.

    셋째, 부당해고에 대해 노동법원이 정하는 손해배상액 상한제를 도입한다. 금액은 노동자의 연공서열(학력, 근속연수 등에 따라 노동자 임금과 인사이동을 결정하는 체계)에 따라 달라지며 세전 월급의 20개월분을 초과할 수 없다. 이 액수도 근속연수 29년이 넘은 노동자에게만 해당한다. 노동자가 기업을 부당해고로 제소할 수 있는 기간도 2년에서 1년으로 줄어든다. 또 노동법원은 해고의 적법성을 따질 때 국내 경제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국정운영 동력 좌우할 승부수

    노동단체들은 노동법 개정안에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감추지 않았다. 프랑스 최대 노동단체이자 제1노조인 민주노동동맹(CFDT)은 “이번 개정안으로 정부가 노사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제3노조인 노동자의 힘(FO)도 “일부 조항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럼에도 두 단체는 CGT가 주도하는 총파업에는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마크롱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필리프 마르티네즈 CGT 위원장은 “모든 우려가 현실화됐다”며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정안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극좌 정당인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도 “노동권을 지키겠다”며 반대 투쟁에 앞장서겠다는 의견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 노동법 개정을 설득하려고 노동단체들과 줄기차게 대화를 해왔다. 노동법 개정안은 의회의 심의기간을 단축하고자 일반 법률이 아닌 대통령의 ‘법률명령(Ordonnance)’으로 추진해 의회에서 이미 통과된 상태다. 프랑스에선 헌법을 제외한 최고위 법령인 법률과 달리 법률명령은 대통령의 위임입법 형식으로 마련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며, 의회의 사후 승인을 거치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 집권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가 하원 전체 577석 가운데 350석(60%)을 차지하고 있어 의회 승인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민심이다.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월 말 43%에서 8월 말 30%로 폭락했다. 이처럼 낮은 지지율은 마크롱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리더십과 소통 부족에 따른 것이라고 프랑스 언론들은 지적한다. 그런데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선 52%가 고용이 증대되고 기업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등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선 여론이 노동법 개정안에 호의적이면 노동단체들의 투쟁 동력이 떨어져 노동개혁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 성패 여부는 프랑스 경제재건과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승부수가 전체 임기를 좌우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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