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사회

대를 이어 ‘입시 모르모트’ 되나

중2가 새 대입제도 첫 대상 … 그들의 부모는 급격한 입시 변화 겪은 94학번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9-12 10: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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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시를 늘려주세요. 내신지옥입니다.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갖게 해주세요. 내신 혹은 학생부 준비를 잘 못했더라도 차후에 자신이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수시 비율이 높아지고 나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에 더 기대는 것 같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준비가 가정형편에 따라 정말 다릅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제발 모든 학생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문·이과 통합 1세대인 현 중3 학생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새 교과로 내신공부를 하는 부담을 지면서도 수능은 기존대로 치러야 해 어려움과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중략) 아이들은 실험용 쥐가 아닙니다.’

    -‘현행 입시제도는 내신 한 학기 말아먹으면 ‘SKY’ 꿈을 접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현행 제도는 사실상 대학의 ‘돈장사’와 ‘고교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지, 실질적 주인공인 ‘학생’을 배려한 제도가 전혀 아닙니다. (중략) 학생부, 생기부에 목매달고 사는 학생들에게 내신은 지옥불입니다.’

    -‘정시 비중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 대학을 잘 가는 게 좋은 사회 아니겠습니까.’





    중3 문제가 중2로 확대

    최근 교육부가 현 중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적용할 예정이던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안 결정을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하자, 교육부 인터넷 블로그(blog.naver.com/moeblog)에 올라온 댓글들이다.

    교육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 절대평가 확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수능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1년 유예로 한 발 물러섰다. 당초 교육부가 검토한 안은 두 가지. 하나는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일부 확대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이었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 결정을 유예한 주된 이유는 절대평가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수능이 변별력을 잃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같은 다른 대입 전형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입시를 바로잡아달라’고 교육부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는 대부분 정시 모집 확대를 요구했다. 수능을 통해 실력에 맞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넓혀달라는 요구였다. 수시와 정시 비율을 최소 50 대 50으로 균형을 잡아달라며 구체적으로 수치까지 제시하는 이도 적잖았다.

    수능 개편안 결정 유예로 표면적으로 중3 학생은 한숨 돌렸지만, 그 불똥은 새 대입제도의 첫 대상이 될 중2 학생들에게 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3에게도 1년 유예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입시제도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라졌지만, 2015년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고교 진학 후 바뀐 교육과정으로 배우고도 시험은 예전 방식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새 대입제도의 첫 대상자가 될 중2의 경우 개편된 수능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그만큼 줄게 됐다. 교육 전문가들이 “교육부의 수능 개편안 결정 1년 유예가 중3의 문제를 중2로까지 확대시켰다”고 지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현재 중3 학생들이 응시할 2021학년도 수능 개편을 지난해 3월부터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촛불정국과 대통령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국정이 장기간 표류하자 교육부 역시 수능 개편안 마련에 손을 놓고 있었다. 결국 5월 새 정부가 출범하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가 7월 초 취임한 이후에야 수능 개편 시안을 부랴부랴 마련해 8월 10일 두 가지 안을 발표했다.



    눈치 교육행정의 산물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여론을 수렴한 교육부는 공청회에서 수능 개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자 1년 유예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김 장관은 수능 개편 1년 유예 발표에 대해 “국민 목소리를 듣고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기 위한 결정”이라며 “ ‘불통의 교육부’가 아니라 ‘소통의 교육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수능 개편안 결정 1년 유예로 중2 자녀를 둔 94학번 부모는 자신들이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새 입시제도를 치렀던 것처럼 자녀 역시 새 대입제도의 첫 대상자가 될 운명에 처했다. 모르모트(실험용 쥐)처럼 달라진 대입제도를 대를 이어 겪게 된 것이다. 중2 자녀를 둔 94학번 학부모 권모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 결정을 1년 유예했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입시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외국어고교(외고)나 과학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을 거쳐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수능 개편 유예로) 가장 혼란스러울 것 같다.”
    고교 교사를 지낸 권씨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20여 년이 지난 현 대학입시제도 아래서 명문대 진학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과거보다 수월해졌다. 대학에 갈 방법도 훨씬 다양해졌고…. 그런데 명문대 입시는 과거보다 더 까다로워졌다. 과거에는 시험만 잘 보면 됐지만, 지금은 목표로 한 대학에 맞춰 일찌감치 진학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착실히 준비해야 입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형 방법이 다양해져 선택권은 넓어졌지만, 갈 길을 정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더 커졌다는 얘기로 들렸다.

    1994년도 수능 첫 세대인데, 갑자기 바뀐 입시제도로 혼란을 겪지 않았나.
    “문제 유형이 달라져 그에 맞춰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공부를 꾸준히 해왔던 학생이라면 큰 혼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문제 유형이 바뀌어 재수생이 수능을 꺼렸고, 이것이 재학생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중2 자녀의 진학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1년이라는 시간이 생겼으니 다시 생각해볼 참이다. 일반고에 힘을 싣겠다는 방향은 제시된 것 아닌가. 아이를 기를 쓰고 외고에 보내 고생시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고에 보내 (아이의) 소질과 적성에 맞게 준비하다 보면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권씨는 아들을 둔 학부모와 딸을 둔 학부모의 입시 전략에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중2 아들을 둔 권씨는 “내신을 생각하면 남녀공학보다 남고 진학을 더 선호한다”며 “수시는 내신 위주인데, 고교 진학 후 여학생이 내신을 거의 독식하기 때문에 남학생이 어려서부터 준비가 잘돼 있지 않으면 입시를 치르기도 전 좌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안 결정을 1년 유예한 뒤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외고나 자사고 대신 일반고 진학을 모색하는 중2 학부모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A변호사도 그중 하나다. 고2, 중2 자녀를 둔 A씨는 중2 자녀의 진학 계획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사고에 다니는 큰아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그에 비해 중2는 학업 성적이 썩 좋지 않다. 무리해 특목고에 진학시키기보다, 일반고에 보내 소질과 적성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A씨는 서울 청담동 한 입시컨설팅 학원을 찾아 상담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기당 300만 원가량 들이면 목표로 한 대학에 맞춰 입시를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돈으로 자녀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지만, 명문대 진학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하니 시도해볼 참이다.”

    재경 지방검찰청 부장검사 B씨도 중2 자녀를 뒀다. B씨 역시 자녀 교육 때문에 고민이 많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사교육을 충분히 시킬 수 없기 때문. 연수원 동기와 선후배 검사 중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일찌감치 사표를 쓰고 변호사로 개업한 이도 적잖다. B씨는 “실력보다 재력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점에서 대학 입시가 꼭 로스쿨(법학 전문 대학원)처럼 돼가는 것 같다”며 “사법고시 폐지로 법조계도 그러한데, 대학 입시도 갈수록 개천에서 용 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과에 승복하기 힘든 입시제도

    C씨는 두 자녀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의사 부부인 C씨는 두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몇 해 전 서울 강남으로 이사했다. 아직 입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C씨는 “현 입시는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형상 대학 입학의 문호는 넓어졌는데, 정작 모두가 원하는 명문대 진학의 문은 더 좁아졌다”고 덧붙였다. 학력고사 세대인 C씨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성적에 맞게 대학에 입학한 세대는 어쨌든 입시 결과에 승복했다. 그런데 현 입시제도는 결과에 승복이 잘 안 되는 구조다. 노력과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요령이 부족했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로 외아들을 사립초교에 보내고 있는 D씨는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아질수록 아이도, 부모도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된다”며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겨루는 소모적 경쟁구조에 빠져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D씨는 “수능 개편안 결정 유예로 앞으로 내신 산정 기준과 대입제도가 어떻게 변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아이가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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